인생에도 구글맵이 있다면
나는 지독한 길치다. 늘 가던 길도 잠시 딴생각을 하면 길을 잃고 만다. 백번도 넘게 다닌 친구집을 헛갈려서 헤맨 때는 너 같은 애 처음 본다며 친구가 혀를 찰 정도였다. 그러니, 중요한 미팅이나 약속에 길을 못 찾아 곤란을 격은 일은 셀 수 없을 정도다. 내가 길치인건 살면서 스스로 인정하게 된 나의 약점 중 하나다. 처음 밴쿠버에 왔을 때, 구글맵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은 캐나다는 인터넷이 다운되는 일이 흔한 일이다. 그러니 집을 나설 때마다 나의 불안감은 그야말로 극에 달한다. 그렇게 와이파이 사정에 따라 그날 나의 운전량이 결정되는 나날이 지나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다운타운에서 그래픽디자인 수업을 등록해 듣던 나는, 그날도 수업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늘 그렇듯 1시간 정도 여유 있게 출발했다. 다운타운으로 들어가는 다리에 이르러 갑자기 구글맵이 먹통이 되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필 지금 먹통이 되다니. 다리 위라 차를 세울 수도 없고, 급한 대로 운전대를 잡고 다리 건너 길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그래, 사거리가 나왔고 좌회전 그다음 우회전. 아니, 좌회전 직진 우회전이었나? 그러는 사이 다리를 건넜고, 일단 좌회전을 했다. 아, 하나 다음이었구나! 턴을 하는 순간 깨달았다. 아차 싶었지만 한편으로 안도가 되었다. 이제 여기가 아니고 다음인 건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여유시간 중 40분을 꼬박 쓰고 학교 주차장에 도착했다. 꽉 잡은 핸들로 손가락이 저릿저릿했지만, 뭔가 여기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을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날, 내게 이상형을 물었고, 나는 주저 없이 ‘길 잘 찾는 사람’이라고 했다. 남편은 자기 별명이 ‘택시기사’라며 너스레를 떨었고, 그렇게 우린 만났다. 결혼식 때, 사회자가 신랑에게 소감 한마디 하라는 말에 남편은, “오빠만 믿고 따라와 줘” 라며 호기롭게 말했었다. 그렇게 나의 법적 오빠는 그 후 15년을 달렸고, 나 역시 그를 따라 달려왔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은 당연히 평탄치 않았다. 수많은 다툼과 화해를 거치며, 사랑보다 연민이 깊어지는 우리는 중년의 나이를 넘어서고 있다. 남편의 등 뒤에서 세상을 모르고 예쁘게만 살고 싶던 마음이 언젠가부터 함께 거친 바다를 항해한다는 동료애로 변했고, 지금은 네 뒤에 내가 있다는 마음이 되었다.
얼마 전, 남편이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을 겪었다. 언제나 길을 잘 찾아내던 사람이라 그런지, 지금의 헤맴을 더 낯설어하는 것 같다. 결혼 6-7년쯤인가, 남편과 사이가 매우 안 좋았던 때가 떠올랐다. 끝도 없는 망망대해를 작은 쪽배에 의지해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두 딸아이를 양쪽 어깨에 한 명씩 둘러업고서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길치로 살아오고 이제 와서 길이 안 찾아진다고 걱정할 일인가? 나는 늘 길을 잃었고 늘 불안했지만 결국엔 도착했었다. 조금 돌아간다고 못 가는 건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 후로 표류하는 기분도 사라진 것 같다. 지금 남편이 그런 기분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우리 인생에도 구글맵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먹통이 되어도 무사하려면 좀 헤매봐야 한다. 그렇게 길이 익고 방향이 보이고 마침내 도착할 것이다. 오늘도 남편과의 통화에서 나는 위로도 책망도 아닌 농담을 한다. 길 좀 잃어본 내 경험을 말해 주고 싶은 마음도 꾹꾹 눌러 참는다. 택시기사라도 낯선 동네 가면 길을 못 찾을 수 있다. 그럴 땐 동네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2주 뒤 남편이 오면 ‘여기 사람’ 답게 잘 데리고 다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