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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수리 May 17. 2023

밴쿠버의 밤거리

기준과 우선순위

    내가 사는 캐나다 노스밴쿠버 딥코브는 해가 지면 거리가 매우 어둡다. 차들이 다니는 대로를 제외하곤 우선 가로등이 별로 없다. 그나마 차도에도 아주 띄엄띄엄 낮은 조도의 등들이 있을 뿐이다. 서울이나 뉴욕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동남아 시골도시 정도라고 할까. 그래서 난 해가 지면 무서워서 외출을 잘 안 한다. 의아했다. 선진국에 속 하는 캐나다의 3대 도시 밴쿠버는 왜 이리 등을 안 켤까? 전기료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싸다는데 말이다. 에너지 절약도 좋지만, 겨울이면 5시에 해가 지던데 집집마다 개를 키우는 이 나라에서 산책은 어떻게 하나 말이다. LED 밝은 가로등이 비추는 서울의 거리가 그립다. 밤 12시에도 무서워하지 않고 걷던 때가 생각났다. 아파트 앞에 24시간 밝게 켜진 편의점 간판이 떠올랐다. 

    겨울이 왔다. 아무리 해도 5시 이후에 집에만 있기엔 무리였다. 특히 우리 강아지들이 가장 사랑하는 저녁 산책을 거른다는 건 정말 안 될 일이다. 매일 아이들과 신경전을 벌였다. “어제 엄마가 했으니까 오늘은 너네가 애들 산책 좀 시켜.” “싫어요. 너무 무서워요.” “뭐가 무서워! 그럼 핸드폰 키고 조기 앞에 까지만 갔다 와!” 그러다 결국 모두 같이 가는 걸로 합의를 봤다. 신나서 펄쩍펄쩍 뛰는 몽이와 키키를 데리고 컴컴한 도로를 나 섰다. 강아지들이 빨리 볼일 보기를 바라며 집 앞 도로에 서성일 때였다. 멀리서 작은 불빛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 다. 노랗고 하얀 작은 불빛들이 위아래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바닥 쪽에서는 빨갛고 파란 색색의 링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신비롭고 예뻤다. 아이들과 나는 잠시 넋을 놓고 불빛을 바라봤다. 불빛들은 점점 가까워졌다. 강 아지들을 산책시키는 이웃이었다. 

    캐나다는 70년대 초에 거리설비에 대해 기준을 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밴쿠버는 안전, 에너지효율, 생태계보호를 우선순위로 하기 때문에 가로등도 이 기준대로 세워진다고 한다. 숲이 많은 우리 동네는 야생동 물들이 잠을 잘 잘 수 있게 조도를 낮게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워온 내용이다. 곰이나 사슴이 잠을 잘 잘 수 있게 불을 덜 키자니, 그럼 사람들이 불편한 건 괜찮단 말인가? 괜찮단 말인가 보다. 대신 조명상품이 다양하게 있다. 플래시 조명이 달린 모자, 재킷, 팔찌 등은 물론 강아지들을 위한 야광 목줄, 목걸이 등도 많다. 조깅이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은 플래시를 머리에 쓰거나 옷에 달고 다니고, 강아지들은 목에 형광빛 목걸이를 걸고 산책 을 한다. 캄캄한 밤에 반딧불이처럼 여기저기 작은 불빛들과 붉은색 파란색 형광링들이 돌아다닌다. 하늘엔 별들이 쏟아질 듯하다. 24시간 편의점과 새벽배송의 편리함은 없지만 여기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 나라에 처음 왔을 때 첫인상은 ‘불편하다’였다. 재활용부터 쓰레기수거, 운전, 병원, 택배 등 뭐든 배달기사 아저씨가 척척 알아서 해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엉성하고 내 손으로 해야 하는 게 너무 불편했다. 폭우, 폭 설이면 길이 마비가 되고 이틀은 꼼짝 못 했다. 여기 사람들은 이런 걸 어떻게 참고 사나 싶었다. 국민성이 수더 분한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솔직히 좀 답답했다. 영리하고 손이 빠른 우리 국민 세 명만 있으면 이런 건 반나절 일감인데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이런 걸 왜 국민청원, 촛불시위도 안 하고 넘어 가는지 이해 안 가 는 것도 많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기준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합의한 기준과 우선순위. 그것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불편해도 서로 이해가 되고 동의가 되는가 보다. 

    아이들과 마주 앉아 우리 집의 기준을 이야기해 보았다. 이제까지는 공부 열심히 하기, 부모님 말씀 잘 듣기 정도였다면, 지금부터는 명확한 기준과 우선순위를 정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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