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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Mar 18. 2024

하지 않는 삶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상대방이 좋아하는 행위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것,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음에 있다.


몇십 년을 함께한 부부 사이에

가장 빈번히 부딪히는 빈도수는

신혼 초에 분포되기 쉽다.

서로 함께 사는 것도 처음이고

연애때와 다른 실질적인

생활을 함께 하기에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는 과정이기에

부딪힘은 필연적일 수 있겠다.


나와 남편 또한 그런 일련의 정련과정을

겪고 이제는 서로를 위해 하지 않는 행동들이

생겼다.

나의 경우 결혼 초에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서두르는 경향이 있었다.

눈앞에서 놓치면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문이 다치기 전에 급하게 타려고 했었다.

남편과 외출 시 이런 행동들을 몇 번 보고

확 싫어하는 표정을 보여주었다.

느긋하고 여유 있는 것을 좋아하는 그에게

나의 그런 행동이 보기 싫었으리라.

나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가 언급하지도 않았지만

그 행동을 더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의 경우 행동으로 잘해주면서 그전에 말로는

툭툭 내뱉을 때가 있었다. 이미 그의 말로

나는 기분이 상해서 그가 다정한 행동을 해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런 나의 마음을 그에게 표현했고,

장난이었다는 그의 재미없는 장난은

점점 사라졌다.


결혼 9년 차, 이제는 서로에게 하지 않는 행동들이

있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싸울 일이 거의 없다.

사람에게는 관계에 줄 수 있는 적정 한도치가 존재한다.

싫어하는 행동이 계속 쌓이면

그 관계는 깨지게 된다.


이는 관계뿐 아니라 삶에도 반영이 된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

우리가 꼭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지 말아햐 할 일들을 하지 않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하지 않아야 되는 일들이 삶에

계속 쌓이다 보면

삶은 길을 잃고

빛을 잃고

계속 바닥 밑으로 끌어당긴다.


삶을 보다 안전하고 탄탄하게

직조하기 위해 Not to do list가

필요하다.



Not to do list


1. 무조건 비우지 않는다.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고 몇 년간 비움에 중독된 시절이 있다. 물건들을 비울수록 집에서 빈 공간은 늘어가고 그럴수록 마음도 가벼워지고 집도 넓어 보였다. 그 여백과 가벼움이 주는 즐거움에 취해 좋아하는 책까지 비우기 시작했다.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생겨났다. 몇 권 남기지 않고 소장한 책들을 정리한 뒤, 얼마 후 또 그 책을 필요해 도서관에 검색했을 때 대출 중이거나, 재대출에 재대출을 해도 계속 찾게 되는 책 들이라든지, 아니면 두꺼운 벽돌 같은 책이 읽고 싶어질 때는 난감했다. 한 번에 5권에서 7~8권까지 빌릴 때도 있는데 벽돌 책까지 빌리려니 그 무게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고 나서 인정하게 되었다. 책은 나에게 비울 수 있는 카테고리가 아니구나.

물론 구입한 뒤 후회되는 책 들이나 더는 안 읽을 것 같은 책들은 주기적으로 바이 백 등을 이용하여 정리한다. 하지만 예전처럼 장서에 제한을 두거나 하지는 않는다. 거실 가까이의 책장에 언제든 손만 뻗으면 읽고 싶은 책들이 즐비하다는 것은 그만큼 내 영혼에 기쁨과 안락함을 전해주기에.

미니멀라이프라고 해서 뭐든 비울 필요는 없다. 뭐든 다 비운다면 어느덧 나를 비춰주던 취향과 색깔마저 사라진 무채색 공간만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2.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지 않는다.

20대 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의류 쇼핑몰을 운영할 정도로 옷을 좋아했다. 미니멀에 입문하기 전까지 옷 쇼핑을 즐겨했다. 그때는 비싼 아이템을 몇 개 사는 것보다 가격도 착하며 자주 살 수 있는 쇼핑을 했다. 즉 소비를 위한 소비였다. 옷을 사기 위해서라기보다 소비를 하기 위해서.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쇼핑을 했다. 쇼핑을 하면 즉시 마약과 같은 즐거움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 기쁨은 옷의 새 냄새가 가시기도 전에 금세 휘발돼 버린다. 새 옷의 기쁨도 잠시 옷장 속만 비좁아지고 더 참담한 문제는 항상 옷이 가득하지만 정작 입고 나갈 옷이 없다는 데 있었다. 돈은 돈 데로 나가고, 옷장만 좁아지고, 철마다 그냥 버리는 옷들을 보며 뭔가 잘못됨을 느끼면서도 그때는 몰랐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고 해마다 옷장을 비워갔다. 이제는 집안에 옷장까지 없고 작은방에 붙박이장 하나와 안방에 드레스룸 하나에 네 식구 옷과 이불을 다 보관하게 되었다.

옷을 하나 사도 유행 타지 않는 질 좋은 베이직 아이템으로 구입한다. 그래서인지 만족도도 높아가고 옷도 많지 않지만 언제나 입을 옷을 찾기 쉬워졌다.


3. 남을 따라 하지 않는다.

바닷가 마을에 이사 오고 첫 식탁을 구입하기 위해 시장조사를 할 때였다. 인스타그램에 #식탁 #거실테이블 #테이블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하나같이 하얀 식탁이 가득했다. 그것도 하얀 원형 식탁이. 1시간 정도 그 사진들을 보고 나니 초록 검색창에 하얀 원형 식탁의 가격을 알아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하얀 원형 식탁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나도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검색하다가 생각에 잠겼다.

"하얀 원형 식탁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맞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아니었다. 나는 하얀색 식탁보다 나뭇결이 살아있는 원목식탁에 더 끌렸다. 바로 결제하지 않고 생각해 보길 잘했다. 내가 정말 하얀 원형 식탁이 마음에 들어 구매하면 별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는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가려 했다. 정작 내 마음이 어떤지도 모르고서 말이다. 이 일을 계기로 물건을 살 때 기준점을 외부의 유행보다는 내면에 나의 욕구와 기준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4. 낡았다고 버리지 않는다.

미니멀라이프 이전에는 소비가 쉬웠기에 그만큼 버리는 것도 쉬웠다. 이후에는 남겨진 물건수가 줄어들수록 물건 하나하나가 더 가치롭고 소중히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낡았다는 것만으로 물건을 버리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7년째 쓰고 있는 양산은 이제 걸을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나고 군데군데 해져있다. 첫째에게 물려받은 둘째 아이의 애착 인형은 두 번이나 다리 이음 부분이 해져서 바느질로 꿰매주었고 남편이 결혼 전 중고로 구입한 자동차는 연식이 11년 차로 이 녀석도 양산과 마찬가지로 익숙한 진동과 소리가 난다. 핸들 가죽은 오래돼서 가끔 가루가 손톱에 박히고 여기저기 외부에는 내가 가볍게 긁어먹은 흔적까지 있지만, 그럼에도 나의 오래된 물건들, 가족의 오래된 물건들이 좋다. 불편한 것도 있지만 나의 오래된 피부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안온함을 준다. 무엇보다 이렇게 오랜 친구 같은 물건들이 있다는 것은 물건 하나하나의 가치에 보다 집중하게 해 주어 함부로 새 물건을 들이는 것을 지양하게 해 준다.



5.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일에 대해, 지난 과거에 대해 후회하기 쉽다. '그때 이랬다면.... 그때 ~~ 을 하지 않았다면...'

같은 가정법의 문장들을 늘어트리며 과거에 자신을 옭아매게 된다. 20대 때까지 내가 그랬다.

큰 사건뿐만 아니라 친구와 만남 후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작은 후회들이 항상 따라다녔다.

문제는 이런 회환의 감정을 곱씹을수록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흠만 더 커진다는데 있다.

나 자신을 원망하고, 지난 일에 그러지 않았을 때, 이어졌을 새로운 미래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는 정말 피곤한 일이다. 영혼을 점점 갉아먹고 현실에 대해 만족도를 떨어트리는 배경이 된다.

항상 과거에 머물게 되고 지금 현재를 제대로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곤 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인지하기 시작하고부터 서서히 과거를 놓아주기 시작했다.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현재의 나를 바라보자 과거 속을 헤매던 후회가 더는 현재를 떠다니지 않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가끔 '그때 만약 ~~ 했더라면'이라는 문장은 따라다닌다.

그럴 때면 나에게 이야기한다. '괜찮아, 이미 지난 일이잖아. 지금도 괜찮아.' 하고 지금의 이 순간을

받아들여본다. 그러면 답답했던 숨이 부드럽게 넘어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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