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하 Mar 14. 2024

나를 돌보기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오후의 저무는 햇살이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고,

텅 빈자리들에서 방금 떠난

사람들의 소리와 온기가 맴돌고 있다.


결혼 전에는 결혼을 하면

다른 날은 몰라도 내 생일 때는

꽃 선물을 받을 줄 알았다.

나는 꽃을 좋아했고,

생일날 선물로 받으면 더 행복할 것 같았기에.

결혼 9년 차가 되어 보니(실은 더 일찍 깨달았지만

내려놓지 못했다)

이 생각이 쉽지 않은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회사일도 하고

퇴근하고 아이 둘 육아도 함께 하는 남편에게

꽃 선물까지 바라는 건 사치가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남편의 선물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까먹을

때가 더 많다.

이제는 내려놓기로 했다.




꽃집 사장님이 물으셨다.

"어떤 용도로 구입하시려고요?"

"생일 선물로요. 오늘 제 생일이거든요."

사장님이 "생일 축하드려요" 환하게 웃으시며

축하해 주시고 꽃도 서비스로 더 많이 주셨다.


가족들에게 선물로 받은 한우와 케이크로

생일 파티를 하자고 건넨 남편의 제안에

잠시 고민했다.

그것도 너무 좋은 그림이지만,

난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생일파티 대신 혼자

단골카페에 앉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지금 왜 혼자 여기 앉아 글을 쓰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7일간 아이 둘이 40도를 넘게 찍고,

물수건으로 몇 시간이고 닦아주고,

시간마다 약을 먹이고,

수시로 체온 체크를 하고,

종일 아이들의 건강을 신경 쓰다 보니,

나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목요일이었고

이제 금요일 하루만 더 버티면 되었지만

나는 남편에게 나의 힘듦을 고백했다.

"나 너무 힘들어... 너무 힘들어...."

나의 힘듦을 상대방에게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알아줄 것 같아도 상대방은 모를 수 있다.

직접 표현하고 나의 감정을 보여주어야

잘 알게 되고, 남편도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게 된다.




힘들어 하는 나를 위해 반차를 쓰고

2시쯤 집에 와준 남편. (소아과를 데리러

가는 모습)

표현한 덕분에 남편으로부터

최고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반 하루 동안의 자유를.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생일은 그날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일이라 하여도

육아에 매여있으면 주인공이 되기 쉽지 않다.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생일'이라는

수식어가 아닌, 내가 나를 돌보는 마음임을 알게 되었다.


기다리지 않고 좋아하는 꽃을 나에게 선물하기.

달기만 한 커다란 케이크 대신,

담백하고 맛있는 한 조각의 케이크 먹기.

힘들었던 시간을 돌아보고 나를 다독여주기.

힘듦을 힘들다고 상대방에게 솔직히 표현하기.

오롯이 나를 위해 혼자 만의 시간 보내기.

좋아하는 작가 책 읽으며 즐거워하기.


내가 먼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나를 돌봐주는 이는 없다.

엄마이기 이전에

나 자신인

나를 위해서도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돌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