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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Mar 12. 2024

집이 좋다

사진첩을 정리하다 사진 속 달리진

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 아이가 자라듯

집도 그때그때 변화해 갔다.

집 속에 우리 가족의 삶도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사진첩 속 변화해 가는 집의 사진들,

지금 곁에 있는 집의 사진까지.

돌아보니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니 어렸을 때부터  나만의 공간을 

갖길 원했으니까 실은 더 오랜 기간이 

걸린 셈이다.

어렸을 때 항상 언니와 같은 방을 써왔고,

어느 것 하나 나의 취향을 반영할 수 없었고

그저 부모님이 주시는 데로, 꾸며놓은 데로 

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랬기에 나만의 공간, 내가 꾸미는 공간에 

살고 싶은 마음이 내가 자라면서 함께 자라났다.



결혼과 동시에 책 속 사진 한 장과 만남이 발단이었다.

거의 비어있는 심플한 방이 건네는

가벼움과 홀가분함에 매료되어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했고,

나도 그런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자리했다. 

그렇게 4년 정도 물건을 비우는 생활을 이어왔다.

어느 날 집 곳곳을 바라보니 4년 전 내가 원하던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공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작 원하는 공간에 살게 되었지만

왠지 '우리', '나의 '이라는 수식어는 

그곳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깨끗한', '심플한'같은 형용사만 생각날 뿐이었다.


깨끗하고 심플한 공간을 보고 생각했다.

'내가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고,

4년간 이어온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간단했다.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

가족과 행복할 수 있는 공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비우기 위해서만 비움을 해왔다는 것을,

정작 무엇을 남기고,

무엇이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지에 대해,

비운 자리에 어떤 것으로 채울지에 대해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끗이 비우기'에서

'잘 남기기, 잘 채우기'로 변환점을 맞이했다.

9년 차가 된 지금의 미니멀라이프는 나에게 내가,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것만

남기기. 쓸모없는 것을 비워낸 자리에 

나의,우리의 취향을 하나씩 늘려가기로 변화해가고 있다.




거실에는 내가 좋아하는 하얀 쉬폰커튼이

달려있다. 햇볕을 적당히 투과하면서 적당히 아침

의 눈부신 햇살을 막아주고 바람에 산들 거리는 

하얀 커튼이 있는 거실이 좋다.





원형식탁을 비운자리에 쇼파와 낮은 아이들 책상을 두었다.

위에 베이지 린넨 식탁보를 깔아 편한 쇼파에 앉아 아이들과

책도 함께 읽고, 가족들과 즐거운 식사시간도

쌓여간다. 가구를 추가로 사지 않고 예전부터 원하던 북카페 거실을

얻었다.






김치냉장고와 펜트리를 비워내어 책꽂이를 넣고

내가 좋아하는

가족들이 좋아하는 책들을 하나씩 채워 넣어

책들에 둘러싸인 집이 되었다.



욕조 옆에 좋아하는 베쓰솔트를 구비해

언제고 지친 몸을 회복시켜 주는 반신욕이

필요할 때 욕조에 물을 채운다.



바닥면이 비어있는 부엌에 향초를 두어

은은한 향을 즐긴다.






먼지를 관리할 수 있는 침구의 침대에서 

 새하얗고 사각거리는 포근한 이불을

덮고 매일 호텔에서 자는 기분을 즐긴다.


무조건 비워냈을 때보다

비워낸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

하나씩 늘어갈 수 록 

비로소 나의 집에 있는 기분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 산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집에 산다는 것은

어렸을 적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는

소박하지만 더 근사하고 

멋진 일이라는 걸.







76p. '충분히 갖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부자다'라는 티베트 속담이 있다. 당신이 진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즐겨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삶이 지금의 모습과 다르기를 바라는 소망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행복을 위한 열쇠는 쟁취한 것을 즐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비록 그것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초라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_<단순하게 살아라>_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



비움을 계속하다 보니 무엇으로

인생을 채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외부적인 요인보다 내가,

우리 가족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본질적인 요소들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오늘 하루에

더 다가가자 그 시간을 채우는 대부분의 배경이

되는 집이 중요해졌다. 

집에 애정을 기울이고 가꿀수록 집이 더 좋아지고

그 집 속에서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다정히 나를,

우리 가족을 감싸온다.

단정하지만 포근한 우리 집을 보고 있으면

충분히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음이 부자가 되는 기분이 든다.

이런 우리 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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