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다는 '반드시 요구되는 바가 있다'
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반드시 요구된다는 것은 그것을 꼭
소유해야 함을 뜻한다.
꼭 있어야 하는 것,
꼭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을 때
우리는 필요하다는 표현을 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필요'의
개념을 사회로부터 받아들이게 된다.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면 괜찮지만
무의식적으로 우리 통념 안에 스며들어
함께 자라난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굳어져 고정관념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기 쉽다.
한 번의 유산으로 좌절을 경험한 뒤
결혼 2년 만에 찾아온 건강한 아기와,
남편의 빠른 승진까지 더할 나위 없는
시기였지만, 매일 주말도 없이 이어지는
야근으로 행복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함께할 시간이 '필요'했고,
간절했기에 평일이 있는 삶을 선택했다.
이 '필요'가 있는 삶을 위해
우리는 '다른 필요'들을 내려놓았다.
평일이 있는 삶을 위해
높은 연봉이 있는 수도권의 삶을 내려놓았다.
바닷가 마을에서 1년 살기 여행을 한지
벌써 6년 차가 되었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니
바닷가 마을에서의 평일이 있는 삶을 위해
우리가 내려놓았던 필요하지만 필요 없는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신용카드
이곳으로 이사오고 얼마 안되어
정수기 렌탈을 하면서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5000원 할인을 받기위해서였다.
이를 위해서 전월 실적 30만원이상이
필요했고, 이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부지런히 사용했다.
그 달 사용내역을 정산하다보면 늘
30만원 이상의 금액이 찍혀있었다.
결국 15000원의 할인을 받기위해
그 이상의 소비를 하고 있었다는것을
깨닫고 , 신용카드를 잘랐다.
다시 예전처럼 쪼개진 통장의 체크카드들을
사용하니 지출이 온전히 통제되었고,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게되었다.
소비를 위한 소비
거의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나로서
백화점이 없는 곳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서울에 살았다고 해서 물론 매주 백화점에
가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갈 수 있어서
안 가는 것과 없어서 가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컸다.
아이가 어릴수록 이런 복합쇼핑몰의
편리함은 유용하다. 날씨의 영향받지 않고
4계절 어느 날이고 안락하고 편하게
유모차를 끌고 식사를 하고 아이쇼핑을
할 수 있으니까.
처음에는 많이 허전해서 서울 본가에 갈때마다
꼭 코스처럼 대형쇼핑몰에 들렸다 왔다.
그러다가 점점 그 횟수가 줄어들고
이제는 들리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게 되었다.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맞았다.
쇼핑몰에 자주 가지 않으니 쇼핑을 자주하지
않게 되었고, 쇼핑욕구가 줄어들면서
소비욕구도 줄어들어갔다.
수도권에 살때면 월급을 많이 받는대신
그만큼 일에 쏟는 시간도 많았고,
이만큼 일했으니까 이정도는 써도 괜찮겠지!
라는 보상심리가 있었던것 같다.
이제 더이상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적게벌고 적게 쓰고 있다.
소비대신 여유시간을누리고 있다.
핫딜
예전에는 핫딜이 뜨면 알림까지
설정했다가 부지런히 대량으로 구입해
냉장고와 팬트리에 가득 쌓아두었다.
그때는 분명 싸게 사서 이득이라고
여겼는데 핫딜을 끊고 나서야
소비를 위한 소비를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냉장고와 냉동고에 음식이 가득 차지하고
있으면 냉장고 지도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중복으로 사기 쉽고,
시기를 놓쳐 버리게 되는 음식도 있고,
공간도 많이 차지에 항상 포화상태로
정신도 없다.
핫딜로 쟁여두기와 대형 마트에서 1주일치
몰아 장보기를 그만두고, 주 4회 정도 가까운
작은 마트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것만
소량으로 장을 본다. 오히려 그때보다
식비가 현저히 줄어들고
냉장고도 한눈에 들어와
'오늘 뭐 먹지?'고민도 하지 않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것을
제외하고 집밥을 해 먹기에 가족 건강에도
가계 건강에도 긍정적이다.
남의 시선
어렸을때부터 옷을 좋아했었고,
지금도 예쁜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 기분이 휘발성이라는 것도 알기에
그보다 더 나를 오래 기쁘게 하는 즐거움에
돈을 쓰는 게 좋아졌다.
예쁜 옷을 사는 것도 좋지만 예전처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쇼핑몰에 들릴 때마다, 예쁜 옷을 발견했을 때마다 같이
수시로 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나에게 어울리는 베이직 아이템 하나를
잘 사고, 계절이 바뀌었다고 구입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옷장의 옷은 줄어들고 공간은 늘어나고,
선택의 시간도 줄어들었다. 정말 좋아하는 옷들로만
채워진 옷장이기에 옷 고르는 일이 언제나 즐겁고
가뿐하다.
옷장에 옷이 많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시간이 많음을 뜻한다.
'이렇게 매일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니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처음에는 이런 생각들이 따라다녔다.
옷 쇼핑을 줄이고 지낸 지 1년이 지난 뒤
이 모든 생각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었다.
내가 어제 무슨 옷을 입었는지, 저번과 같은 옷을
입었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와 함께 그동안 옷을 주기적으로 구입해 왔던 게
옷을 좋아함도 있었지만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마음 때문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최근 N과 이야기할 때 그의 친구가
벤츠를 타고 다니는 이유에 대해
'하차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했다.
'내릴 때 하차감이 좋더라!'
차에서 내릴 때 남들의 시선을 즐긴다는
의미일 테다.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에
초등학교 이야기가 나왔는데,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엄마들이 차를 많이 바꾼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초등학교 아이 픽업을 가면 차들이 좋은 차가
많이 보인다고 했다.
이 또한 '남의 시선'을 중시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좋은 차를 타면 승차감이 좋겠다.
진동도 덜할 테고, 승차감도 좋고,
내부도 쾌적하고 모든 더 편리하겠다.
그럼에도 나는 '남의 시선' 때문에
차를 바꾸지는 않겠다.
지금 11년 된 빠방이도 건강하고 튼튼하다.
물론 진동도 있고, 핸들은 손톱에 갉힌 자국이
있고,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나의 차가 자랑스럽다.
오랜 세월 건강하게 잘 다녀주었고 우리 가족 모두
항상 건강하게 지켜주기에. 함께한 추억도 11년이란
시간만큼 쌓여있기에.
차를 바꿀 때가 온다면 '하차감'때문이 아니라
'승차감' 때문이고 싶다. 나의 생각, 빠방이의 건강
, 가족의 필요 등등 만으로 기준을 삶고 싶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가벼운 생활로 이어진다. 삶의 기준이 외부에서
내부로 옮겨지고, 나의 삶을 우리 가족의 삶을
결정짓는 요소들이 나와 우리 가족 안에서
나오기에 삶은 보다 편안해진다.
사교육
얼마 전 신문 기사에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로
높은 사교육 비용이 제시되었다.
수도권에 사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초등학교 저학년임에도 한 명당 백만 원 정도
들어간다고 했다. 아이가 두 명이면 2백만 원인셈이다.
문제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비용은
높아질 것이고 부모에게는 분명 큰 부담일 것이다.
맞벌이는 기본이고 함께 열심히 벌어도 높은 사교육
비용을 부담하고 나면 노후준비도 힘들다고 한다.
결혼 전에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때부터 여러 학원을 다니며
사교육에 매여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내가 아이를 낳으면 학원에 보내지 말아야지.라고
말이다.
그 대신 아기 때부터 책과 친해지는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책과 좋아하는 장난감처럼 친해졌다.
가까운 바다와 자연에서 뛰 놀며 자라고 있다.
독서의 힘을 믿기에 아이들이 자라도 쭉 다양하고 폭넓은
독서를 하고 함께 토론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길 원한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아이 스스로 사고하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삶이길
바란다.
학원비를 안 쓰는 대신 돈을 모아 두었다가,
아이들이 20살이 되었을 때
하고자 하는 것에 지원해주고자 한다.
내가 결국 비운 것은 '필요하다'는 고정된 관념이었다.
내게 필요하지만 필요 없는 것들이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던 것들이
내려놓고 보니 없어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필요'들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사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