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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Jan 31. 2024

지금도 충분해

5주간 브런치에 처음으로 연재를 해보았다. 수요일 금요일 주 2회로 정하고 여행에 관련된 글을 적어나갔다. 처음에는 규칙적인 글쓰기 생활을 하게 된 것에 대해 낙관적인 기분이 우세했다. 의자에 앉아서 매일 쓰는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도 분명 다이어리나 독서기록 노트, 블로그, 인스타 등등에 짧은 기록들을 해왔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하루에 a4 세 페이지가량의 글들을 적으면서 쓰기의 근육이 붙는 게 느껴졌다.

이런 이점에도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적고 고치고 다시 쓰고를 반복하다 보니 주 2회임에도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독자와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어떻게든 글을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점점 나를 옭아맸다. 

수요일 연재를 끝내면 바로 다음 금요일 연재를 시작해야 했고, 금요일 글이 완성되어도 다음 주 수요일 글을 생각하면서 주말 내내 하얀 화면을 두들겼다. 주말에도 서재에 앉아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고, 집안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정리가 되지 않고 쌓여만 갔다. 카톡에 답 보낼 작은 시간마저 내지 못했다. 

그러다 연말이 다가왔고 연말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금요일 저녁 조리원 동기들과 만남이었다. 즐겁게 만나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4시간 정도 지나고 밤 11시가 넘어서 집으로 향했다. 연말이라 택시 잡기가 쉽지 않았다. 방향이 비슷한 동생과 택시를 같이 탔다. 아파트 입구까지 가는 대신 대로변에 내려주었다. 괜찮다며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계속 눈에 밣혔다. 몹시 추운 겨울밤이었다. 밖은 어둡고 깜깜했다. 하지만 택시 기사님에게 '좌회전해서 그의 아파트 입구까지 가주세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몇 분만 내가 내려놓았으면 그는 더 편안하게 따스하게 집에 갈 수 있었을 텐데. 그 몇 분의 여유조차 없는 나의 모습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리고 요 근래의 시간들을 침대에 누워 술이 취한 채 돌이켜 보았다. 

괜찮겠지 싶은 어정쩡한 추축으로 이틀 연속 나를 빡빡한 일정 속으로 구겨 넣었었다. 가정보육에 첫째, 둘째 따로 엄마들 모임에, 키즈카페에, 마트에 장까지 보고, 연재까지 완성해야 했다. 

그날 나는 반가운 얼굴들을 보고 기분이 좋았지만 실은 무척 피곤했었다. 잠까지 설치면서 3시간밖에 자지 못했기에. 단 몇 분이라도 빨리 집에 가서 뻗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 2회 연재를 1회로 수정했다. '주 5회 연재하는 이들도 있는데... 나는 주 2회도 못해서 이렇게 중간에 바꾸다니...'라고 자책을 하면서. 그랬다. 나는 남과 나를 비교하고 있었다. 부지런히 자주 연재를 하면서 글을 써가는, 자기만의 일을 뚜렷하게 쌓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분명 처음 연재를 할 때부터 나는 내 속도를 알고 있었다. 나에게 맞는 속도와 내가 적정하게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을 분명 알고 있었다. 주 1회였다.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나를 몰아세웠다. 내가 나 자신을 말이다. 어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여파는 신체의 리듬을 앗아가는 형태로 일상에 찾아왔다. 5주간의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마음에 그리고 몸에도 부작용을 내었고, 회복하는데 3주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며칠 전 p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을 준비하면서 디자인을 의뢰하기보다 직접 해보고 싶은 마음에 디자인 학원을 다녀왔다고 했다. 집에서 차로 왕복 1시간 거리인 학원에 상담을 하고 주 5회 3시간 오프라인 수업의 강의를 등록했다는 말에 나는 바로 환불을 하라고 했다. 그는 이미 환불을 했고, 온라인 수업으로 변경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제야  그가 왜 이 이야기를 나에게 꺼냈는지 알 것 같았다.  

비슷한 나이대의 어린아이들을 셋이나 키우고 있는 그가 듣고 싶었던 말은 지금으로도 충분해.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결혼 전 큰 기업의 md로 일했던 그는 육아를 하게 되면서 일을 그만두고, 5년간 엄마로만 지내다가 이제 막 다시 자기만의 일을 시작하려 한다. 한때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던 그가, 누구보다 일에 대한 열정도 욕심도 많았을 그가 새로 품은 출발에서 다시금 내려놓아야 했던 마음의 무게가 느껴졌기에. 

전화를 끊고서 그에게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의 모습이었다. 엄마이지만,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만, 동시에 나이기도 하고, 꿈을 계속 꾸고 있는, 하고 싶은 일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을. 

나를 포함한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속도가 있고,

허용할 수 있는 각자의 체력이 있다.

우리에게는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능력만큼만 해내도 괜찮다고.

이미 충분이 잘해내고 있다고.


아이들이 둘 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연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어린아이들에게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값지고 의미 있는 축복의 시간임을 되뇌면서, 틈틈이 자유롭게 발행 가능한 매거진에 글을 쓰려한다. 이렇게 마음먹자 다시 하얀 화면이 편안해졌다.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속도와 엄마의 역할 사이에 균형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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