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쉐 영국연수기_15] 메르카토 메트로폴리타노 2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화창한 오후 본격적으로 Mercato Metropolitano (이하 MM) 투어를 시작했다. 입구부터 많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즐기고 있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넓은 면적에 작은 공간들이 이리저리 이어지니 골목 사이를 걸어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식료품 가게와 펍, 푸드코트 등 다양한 형태의 공간이 프랑스 와인과 칵테일, 독일의 맥주 양조장, 이탈리아의 요리 등 지역별 음식을 테마로 구획되어 있어 음식을 따라 여행할 수 있는 구성이다. 우리는 빠른 걸음의 알레씨오Alessio를 놓칠까 봐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앞서 말한 대로 MM은 공간 전체에 플라스틱 용기를 금지하고 있다. 플라스틱 프리는 런던의 새로운 트렌드로 정착되어 가는 중이라고 하는데, 런던 파머스마켓들에서 만난 사람들도 이런 흐름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친’ 환경을 넘어 ‘필’ 환경의 시대라는 지금, 런던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비건과 제로 웨이스트 물결이 점점 더 크게 일고 있는 것을 마르쉐 시장에서 생생하게 만나왔다. 쓰레기 없이 장보는 즐거움과 채소 자체의 맛을 알고 찾는 손님들을 만나는 건 반가운 일이다.
마르쉐는 일회용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2012년 첫 시장부터 일회용기 대신 다회용 그릇을 빌려주고 설거지해서 다시 쓰는 아주 불편한 방식을 선택했다. ‘대화하는 농부시장’을 만들고 싶은데, 쓰레기를 마구 만들어내는 공간에서는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현수막 대신 칠판 게시판을 만들어 시장의 안내사항들을 전하고 커다란 현수막 배너들 대신 높다랗게 휘장을 쳐서 이곳이 시장이 열리는 곳이라고 알렸다. 참여하는 생산자들에게는 비닐봉지 대신 종이봉투를, 플라스틱보다 종이나 유리 등 재활용 가능한 포장용기들을 권장했다. 쓰레기를 최대한 줄이고 싶어서 분리수거대를 설치하고 시장이 끝난 후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점검하며 재활용 쓰레기들과 일반 쓰레기를 분리 배출했다.
해를 거듭하며 이런 약속들에 참여하는 생산자들과 소비자들 덕분에 마르쉐 안에서의 환경 정책들이 조금씩 살을 붙여갔다. 직접 장바구니와 개인 식기를 가져오도록 권장하니 손님들도 기꺼이 그런 시장문화를 즐겼다. 장을 보러 오면서 집에 안 쓰고 쌓여있던 종이가방들을 모아 오고, 여름에는 아이스팩을 모아서 불룩하게 들고 온다. 음식을 사 먹고 난 재활용 유리 용기들을 깨끗하게 씻어 생산자들에게 되가져다 준다.
굳이 이런 수고로운 일을 하는 이유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손님들께 고마움의 마음을 담아 생산자들은 덤을 더 주기도 하고 가격을 조금 낮춰주기도 한다. 생산자들 또한 환경을 생각하는 시장에 함께 한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 덕분에 대화거리가 늘어나고 한번 더 만나니 한번 더 서로를 기억한다. 조금씩 관계가 쌓이고 이어진다.
모두가 불편하고 번거롭지만, 그런 불편함이 이제는 마르쉐 시장의 풍경이 되었다. 커다란 장바구니와 바퀴 달린 수레에 채소들을 넣고, 집에서 준비해온 다양한 다회용 포장 용기에 먹거리를 담는다. 서로 더 수고롭지만 더 가벼운 마음으로, 텀블러를 한 손에 들고 시장 곳곳에서 서로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흐뭇하게 즐긴다.
농부시장이 단지 먹거리 거래가 일어나는 곳만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입구부터 플라스틱을 들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입장을 제한하는 MM에 많은 손님들이 기꺼이 동참하고 즐겨 찾는 이유도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스틱뿐만 아니라 글로벌 대기업 상품의 반입도 금지하고 있는데, 안에서는 포장과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한 먹거리만 판매하는 ‘지속 가능한 바(Sustainable Bar)’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MM의 모든 포장 용기는 생분해 재질 용기만 사용하며, 푸드마켓의 모든 음식들은 기본적으로 소규모 장인들이 만든 것이고, 재료의 90%는 유통 체인 밖의 생산자들 재료를 사용한다고 한다. 특히 코카콜라, 하인즈 등 대형 체인의 식재료도 쓸 수 없다고 한다.
MM은 이곳에서 다양한 먹거리 스타트업들이 성장해서 외부로 확장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푸드마켓에 새롭게 출점하는 소규모 로컬 사업체들이 우선 4주 동안 팝업 레스토랑을 운영해볼 수 있게 하고, 이 기간 동안 배치 및 디자인도 컨설팅해준다. 이후 평가를 통과한 팀은 상시 출점팀이 되는 방식을 통해 지역의 소규모 먹거리 생산자를 발굴 및 지원한다.
전에 스트라우드그린파머스마켓 편에서 언급했던, 지역 의회에서 승인하는 먹거리 위생 점수(Food Hygiene Rating) 스티커를 MM 입점 업체들에서도 대부분 볼 수 있었다. HACCP의 복잡한 절차를 따르기 어려운 소규모 먹거리 생산자를 위해 정부에서 제공되는 ‘Safer Food Better Business’ 패키지는 이러한 스타트업들이 시작 할 때에 유용한 인증 방식일 것이다.
판매공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커뮤니티 키친에서는 지역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요리교실이 각각 열리며, 먹거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살피는 교육 과정을 통해 먹거리의 중요성을 전달한다. 이외에도 난민, 노인, 저소득층, 지역 공동체를 대상으로 다양한 소셜다이닝, 포럼 등의 이벤트를 다수 진행하여 지역 재생 및 공동체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농업 혁신 스타트업 Rootlabs과 협업하여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는 수경재배 및 수기경재배로 기존 농법보다 물 사용량은 줄이되 공간 활용도는 높이는 다양한 도시농업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관련하여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도시농업 교육 워크숍을 열고 있다고 한다.
둘러본 곳들 중에 나는 독일 양조장 German Kraft Brewery이 가장 흥미로웠다. 독일에서 비법을 전수받아 6주 동안만 보관되는 신선한 맥주들을 영국 재료로 만드는 곳인데, 첨가제 없이 만들어 캔이나 병에 넣지 않고 생맥주로만 판매한다고 한다. 이곳의 정화 기술을 사용해서 정수한 물을 MM Water로도 판매하는데, 영국의 물에는 석회가 많기 때문에 좋은 물을 원하는 이들이 있어서 유리병 용기와 함께 물을 판매한다고 한다. 대량의 플라스틱 용기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식수 산업의 대안으로 하고 있는 이 판매의 수익금은 지속 가능한 수자원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Aquiva 재단에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알레씨오는 무엇보다 이 물이 정말 맛있다며 자부했다. 우리에게도 맛보라며 유리컵에 담은 물을 전해주었는데, 잘 정수된 맑은 물은 깔끔하고 맛있었다. 이 물로 만든 맥주는 또 을~~~ 매나 맛있을꼬…… 순간, 사람들이 앉아서 맥주를 즐기고 있는 공간 쪽으로 세 발짝쯤 뒷걸음질쳤다가,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고 알레씨오를 쫓아갔다.
공간 한쪽에서는 맥주의 홉도 직접 길러, 소량이지만 MM브루어리에서 이용하고 있다. 브루어리에서 사용하고 남는 침전물 등과 카페에서 나오는 커피 찌꺼기 등은 도시농업 공간에서 버섯 재배에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MM은 이처럼 공간들을 최대한 활용하며 로컬에서도 이 안에서도 서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을 노력하고 있었다.
우리는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좀 더 들었다.
MM은 우리가 둘러본 것처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한 먹거리를 제공하며 지역 장인과 커뮤니티를 발굴하고, 지역 공동체, 음악, 혁신적인 농법, 순환경제 모델과 세계의 다양한 먹거리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차원의 푸드마켓을 만들고자 한다.
MM의 핵심 가치는 미래 세대를 포함한 모두가 자신의 문화권에 맞는 좋은 먹거리를 누릴 권리, 모든 개인의 먹거리 자주권, 환경과 더불어 생산하는 환경 보호, 첨가제 없이 5가지 이하의 식재료로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먹거리, 좋은 먹거리가 만드는 좋은 공동체, 소규모 장인과 생산자들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만드는 작은 것의 아름다움 이렇게 6가지라고 한다.
내내 미소를 띠고 설명해주던 알레씨오는 “어디서든 먹거리를 살 때 그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 중 당신의 할머니가 이해 못하는 재료가 있다면 사지 마라”는 것이 MM 대표의 철학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세계적인 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된 이탈리아 사람다운 말로, 그만큼 단순하고 건강한 먹거리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곳이다.
MM은 이러한 철학으로 지역의 사람들에게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게 중심 가치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이곳의 모든 직원들은 프랑스, 벨기에 등을 다니며 먹거리와 농업에 대해 배우고 있다는데, 그 이유는 직원들이 농업 등을 제대로 알아야 이 곳을 다른 곳과 다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알레씨오 또한 지속가능성 관련 학위 과정을 하고 있는데, MM은 직원들을 여러 분야로 교육시켜서 이런 도시재생, 지속가능도시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여러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도 사업 제안을 받아 구상 중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작은 농부시장을 운영하는 우리로서는 그 규모와 속도가 놀라웠다.
런던의 파머스마켓들에서 버로우 마켓에 이어 MM까지 보고 나니, 저마다의 역할이 분명 있다. 먹거리는 삶의 기본이고 생활의 틀거리를 만든다. 분명한 이 사실을 토대로 전 세계에서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너무나 달라 보이는 방식일지라도 서로서로 영향을 받으며 세계가 조금씩 변하고 있을 거다. 우리가 하는 일도 작은 물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