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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쉐친구들 Sep 17. 2020

자연을 들여다보고 얻는 것들, 션 오닐 팜 2

[마르쉐 영국연수기_23] 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한 농부

*2019년 8월에 다녀온 이야기를 정리한 글입니다.




전편들에서 종종 이야기해온 것처럼, 마르쉐를 해오며 농부들이 요리사들을 만날때 일어나는 변화들을 우리는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단순히 매출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신뢰로 맺어지는 그 둘의 관계에는 놀랍고 폭발적인 힘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마르쉐 농부들과 비슷한 농사를 짓고있는 션이 요리사들과 관계맺는 방식에 대해 조금 더 물어보았다.  

션은 머리가 막 돌아가서 생각하고 계획한 게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뭔가가 올라와서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짓고 생활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상점에 가서 판매를 하면, 내가 보던 정말 아름답고 인상적인 작은 꽃이나 풀들을 상점에서 채소를 사는 사람들은 못 보는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 친구가 레스토랑의 쉐프들에게 션의 얘기를 해서, 쉐프들이 다같이 농장으로 방문을 왔는데, 그때 션은 그들에게 물건을 판매하는게 아니라 내가 뭘 키우고 뭘 느끼고 있는지를 쫙 보여줬다고 한다. 

션은 셰프들과 관계맺는 과정을 이렇게 이야기해 주었다. ‘첫 번째는 역에 가서 쉐프들을 데리고 농장에 오는데 쉐프들이 묻거나 말을 하지 않으면 나도 침묵해요. 농장을 다 보여주고 쉐프들이 질문하거나 말하지 않으면 나도 안하죠. 내가 먼저 뭐가 좋고 우리 사업이 이렇다 홍보하지 않아요. 쉐프들이 내가 키운 것들로 농장에서 바로 음식을 해주는데, 그냥 음식이 말하게 해요. 두 번째는 내가 생산자여서 중요한게 아니라,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퍼실리테이터(조력자, 촉진자) 역할일라고 생각해요. 자연에서 다 나오는 것들에 손을 넣어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거죠. 농부가 생산하고 요리사가 요리하고 먹고 단순한 과정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에요. 킬른과 스모킹고트 같은 슈퍼8 레스토랑이 중요한 건, 이게 ‘션이 생산한거다’라는 것보다도 여기 어딘가 자연에서, 이러한 환경에서 나온 먹을거리라고 얘기하면서 요리하고, 그런 먹거리나 재료를 굉장히 존중하고 좋은 작업을 해주는 사람들이라서 굉장히 좋아요. 특정 농부를 스타로 만들어서 홍보하는 게 아니고요.’ 


나는 우리가 만났던 농부들이 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를 스타로 만들어서 홍보하는게 아니라, 좋은 과정과 좋은 작업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좋다고. 이 농가 투어 내내, 이들의 지속가능함의 열쇠는 누구에게가 아닌 ‘관계’ 안에 있음을 보고 듣고 있었다.  

슈퍼8그룹 레스토랑, 스모킹고트와 킬른 식구들과 션

농장에는 200여명의 쉐프들이 방문했는데, 션은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요리할 것인가에 관심 있고 고민하는 쉐프들은 당연히 농장에 방문한다고 했다.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이다.  농부로서 셰프들과 소통하고 관계 맺을때 어려운 점이 없는지 물으니 션은 이렇게 말했다. ‘쉐프와 농부도 평범한 인간관계예요. 우리도 못하는 게 많은 인간들이죠. 같이 일하는 쉐프들은 그런 걸 수용하며 보통의 인간 관계를 맺는 거에요. 우리가 최고는 아니지만, 서로 그런 관계 속에서 일하는 거죠.’ 

새로운 재료 등은 쉐프와 농부가 서로 대화하면서 발견하고 만들어간다고 한다. 누가 우선이 아니라, 농장이 키우는 걸 써주고 쉐프가 필요한 걸 키워주고 둘 다 같이 진행된다고. 그러다 보면 어떤 쉐프가 무슨 작물, 무슨 맛, 무슨 모양, 무슨 크기를 선호하는지 등 서로 알게 되고, 그에 맞춰 농부도 제안하게 된다고.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션과 함께 하우스를 돌아보고 작은 노지 밭까지 돌아보며 처음 만났던 곳으로 돌아오는 동안 

우리의 입 속에는 다양한 잎과 허브들의 상쾌하고 맑은 향이 남았다. 션의 덤덤한 이야기들도 우리 마음까지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시간이었는데, 어마어마한 시간이 곧 다가오고 있었다! 스모킹코트의 마이클과 킬른의 김송수 요리사가 주축이 되어 레스토랑 식구들이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 

어느새 테이블 위에 간이 주방이 차려졌고, 다들 분주히 요리하고 있었다. 작은 이동식 화덕에서는 계속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냄비가 끓고 채소와 고기가 구워졌다. 이름모를 음식들이 이 농장에서 갓 따온 풍성한 채소들로 요리되고 있었다. 션이 말한, ‘음식이 말하는 것’을 우리도 들을 모양이었다. 좋은 시간을 완성하는 것들 중에 금방 요리된 신선한 음식을 빼놓을 수 있을까?! 레스토랑 멤버들의 배려로 우리도 이 엄청난 식사를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시 한번 고마워요! 송수, 마이클, 루크, 페니~!!!! 


설레는 마음으로 일부는 식사 준비를 돕고, 일부는 션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션은 한편의 시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호미에 긴 손잡이를 달아 서서 일하는데 잘 사용하고 있어요. 호미를 쓰면 뭔가 동작이 유연하고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게 되요. 그래서 호미를 좋아해요. 땅도 물처럼 흐르는데, 큰 기계로 하면서 땅의 흐름도 작아져버렸어요. 물 흐르듯이 할 수 있는 연장이 좋은데 도구가 커지면서 그게 파괴됐어요. 예전 도구들은 물처럼 흐르듯 사용할 수 있었거든요. 영국은 50년대부터 기계화되면서 손 도구가 많이 없어졌죠.’ 


‘아침에 일어나서 씨앗이 어떻게 전 세계를 도는지 생각했어요. 지구가 생길 때 그 자리에 식물과 동물이 생겨났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 것도 있죠. 예를 들어 펜넬 꽃을 벌들이 많이 먹는데, 벌을 통해 전해졌나? 소화에 좋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재미있어요. 한국과도 씨앗교환이 이루어지길 바라요. 씨앗만 교환하면 안 되고 도구와 방법 등을 같이 교환해야 해요. 씨앗 주고 자랐네 안자랐네만 하지 않고, 대화와 관계가 필요해요. 도구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거든요. 기후가 다르고 도구가 다르니 서로 이해하기 힘들 거라 많은 대화가 필요하겠네요.’

아~! 당시에는 그저 감동까지였는데, 이 글을 쓰며 다시 션의 말을 읽어보니 수염이 덥수룩한 이 아저씨 농부님,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우리는 이 예술가같은 농부가 어떻게 농사를 짓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션은 60년대 생인데 그 전에는 창의적인 록 밴드에서 기타와 보컬을 했던 뮤지션이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듣자 마자 어쩐지! 역시! 그럴줄 알았어! 등의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1995년 쯤 프랑스에 레코딩을 하러 갔는데 굉장히 작은 시골 마을이었어요. 캐러밴에서 지내며 그 전에는 본적 없는 새들이 노래하는 모습과 아름다운 나무와 풀들을 보면서 지냈어요. 도시의 환경과 정말 달랐고 정말 좋았고 신선했죠. 3년 정도 지낸 후 브리스톨로 돌아오니 도시의 삶이 싫어졌어요. 그 후 20년 정도 허브 농사를 지었죠. 식물을 키울 때 사람이 섬세해져요.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뮤지션이었다는 말 때문인지 왠지 션의 말이 노래하는 것처럼 들려서 우리는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이렇게 농사짓고 판매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어른들이 농사 짓는 거 보고 힘드니까 난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는 건 한국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지금은 기계화가 되어서 예전에 2-30명 일하던 걸 1명이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공동체 전체가 같이 하던 일을 이제 기계가 혼자 다 하다 보니 이 일은 이래저래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고 션은 말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몸과 정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먹을게 얼마나 의미있나 생각하게 되고,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 운동들이 생겨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어요. 기계화된 삶에서 다른 삶으로. 특히 유기농이나 환경운동 실천 등에 관심이 커졌죠. 유기농이 활성화되려면 농장도 필요하지만 음악 문화 정치 등이 다 필요해요. 다방면에서의 지지가 필요하고 함께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요즘은 되고 있어요.’ 


션이 이곳에서 농장을 시작할 때만 해도 동네 사람들이 낯설어하다가, 이제는 농사를 통해서 고용이 창출되는 것을 무척 놀라워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농사는 보통 가족 중심으로 일해왔는데, 가족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션은 이러한 농장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농장에서 직원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어요. 처음에 젊은이들이 일하기 시작할 때는 단순한 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죠. 서로 어떻게 일하는지 자세히 살펴보면서 그 사람이 잘하는 것이나 어떤 걸 창의적으로 하는지 등등 집중적으로 보면서 같이 일하고 있어요. 특별히 기술을 가르치는 건 없어요.사전 정보로 공부하는 것 보다 그냥 환경을 자세히 살펴보는 게 중요해요. 땅이 어떤지 풀이 어떤지 등이요. 사실 그런 걸 최근에 기록하고 있어요. 토양, 물, 온도, 터널 내 작물에 대한 이야기 등. 그걸 정리하면서 같이 공부하고 배우는 형태로, 새로운 방식으로 책을 쓰는 준비 중이에요. 농사는 경험이 필요한 일인데, 시간을 들여서 집중해서 일관되게 경험해야 해요. 그건  스스로 계속 해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생산성’이란 건 계속 많이 내야 하는 건데, 나의 철학은 자연스러운 농법을 통해 좋은 음식이 나온다는 게 기본이에요. 굳이 생산량을 높이려는 목적 자체가 없는 거죠. 그러니 화학 비료든 퇴비든 안 쓰는 거에요. 그러려면 인내심과 철학이 필요해요. 자연을 관찰하고 이해하는데 필요한 인내심이 가장 중요하죠.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생산량은 목적이 아니고 그 과정에서 결과로 나오는 것 뿐인거죠.’

농업인구가 줄고있는 것은 한국과 영국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에 반해 농부가 되었다는 이 예술가에게 이에 대한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션은 미소를 잃지 않고 다시 한번 부드럽게, 짚어주었다.  

‘농업은 힘든 일인데 젊은이들에게 그걸 먼저 하라고 하기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경험하게 해야 그걸 통해 농사를 지을지, 어떤 농사를 지을지 스스로 결정할 거에요. 그게 중요해요.’ 


긴 이야기를 마쳤고 꽤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사실 많이 아쉬웠다. 이 농부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엄청난 시간이, 지금 생각해도 허기가 훅 밀려오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음식 준비가 다 되었다!  

형언할 수 없는 동남아식 요리들이 테이블위를 가득 채웠다. 우리가 선물로 가져온 마르쉐 출점 농가의 토종쌀로 지은 담백한 밥을 기본으로, 매콤하고 짭조름하고 은근히 달다가 새콤하기도 하고 강렬한 향 뒤에 딸려 올라오는 묵직한 재료 본연의 맛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먹다가, 나는 두접시때부터 조용히 바지 단추를 풀어주었다.


션의 말대로 음식이 다  말해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말들에 화답하며 떼창을 했다. ‘화려한 맛들이 나를 감싸네, 시간이 멈추길 기도해~♬’ 

조금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묻고 먹었다. 그래도 사람마음이란 미련이 남아 떠나는게 아쉽다. 마지막으로 다같이 사진을 찍으며 우리는 각자 생각하지 않았을까? ‘언젠가 한국의 마르쉐 농부님들과 이 농부님이 교류하고 만나는 날이 올까?’ 불과 1년 사이에 전 세계의 거리가 이렇게 멀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무튼, 언젠가...

이제 이 여정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글: 마르쉐친구들 쏭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대화하는 농부시장 마르쉐를 운영합니다. 

먹거리를 중심에 두고 삶을 연결하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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