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과 함께 짓는 농사
마르쉐친구들이 작년에 지구농부여행을 하며 만난 지구농부들의 이야기를 채소지에 실어 브런치를 통해 발행합니다. 격주로 연재될 지구농부들의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이번 회에서는 풀과 함께 공생하며 농사짓는 지구농부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채소지09_지구농부이야기 01 풀과 함께 짓는 농사
지구농부 INTERVIEWEE : 충남 홍성 / 풀풀농장_이연진 농부 @풀풀농장 풀과 함
풀들과 함께 농사지으면서 제 땅에서 난 것만 땅으로 되돌리고 있어요.
자연농 10년 만에 비옥한 땅이 됐어요.
“무작정 귀농”
저는 수학을 좋아하는 문학소년이었어요. 그래서였는지 삶의 이유가 중요하고 제 삶에 근거가 있어야 했어요. 환경운동가이던 아내와 결혼 후에 서울에서 살았는데 첫째 아이가 아내 뱃속에 생겼을 때 해외 영업일을 하다 보니 중국 북경으로 발령이 났어요. 삶의 기로에 선 거죠. 북경은 환경이 안 좋은 곳이라 가지 말기로 결정했어요. 그러면 아이들과 어디서 살까 생각했죠. 서울도 아니라는 결론이 났고, 그때부터 귀농을 본격적으로 준비했어요. 과정을 거쳐 결국 홍성으로 오게 됐어요.
“석유를 쓰지 않고 농사”
서울이 아니면 시골이니 귀농이고,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어떤 농사를 지을까 고민하게 되었죠. ‘석유를 쓰지 않고 농사를 짓자’가 목표였고, 홍성에 와서 트랙터를 쓰지 않고 농사를 시작했어요. 다 손으로 하니 너무 힘들었죠. 거름은 쓰지 않고, 고랑과 두둑을 만들 때도 삽을 써요. 공정한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거름을 넣는 건 반칙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렇게 하면 누가 농사를 못 짓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 쉽고 뻔한 결과로 느껴졌고, 환경적인 문제가 크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됐죠.
“자연농을 만나다.”
이렇게 저렇게 별의별 짓을 다 해봤어요. 토종 볍씨도 얻어서 토종벼농사도 시작을 했고요. 자가채종, 무경운, 무투입 등 혼자 이것저것을 해오다가 어떤 분께 우리처럼 농사짓는 게 자연농이라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그때가 2012년, 귀농 3년 차였는데 그때부터, 자연농과 관련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재미있었고, 체계가 잡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하는 것 중에 ‘이런 건 그대로 하고, 삽으로 하는 경운은 멈춰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먼저 체계를 잡고, 의미를 알고 본격적으로 자연농을 시작하게 됐어요.
“풀과 함께 짓는 농사”
처음 자연농을 시작했을 때 (2012-14) 저 밭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저기에 농사를 짓지 하고 겁이 많이 났어요. 풀이 이렇게 많은데 채소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 상상이 안됐었죠. 괭이로, 낫으로, 정밀한 것으로 한 번 더, 총 3번 해서 풀을 없앤 후 파종했어요. 정말 열심히 풀을 뽑느라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 손이 쥐어지질 않았어요. 육체적으로 힘이 들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자연농이라고 투입 없이 땅에서 계속 빼먹기만 하면 농사가 되냐 물어봤고, 마땅히 대응할만한 논리가 없었어요. 그러던 차에 2015년에 일본에 가게 됐어요. 가와구치 요시카즈 선생님 댁에 방문해 아카메 농장을 가봤어요. 가서 보니 어설퍼 보이고, 풀이 너무 많아서 풀 속에 작물이 꽂혀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가서 봤을 때는 그 농장이 그냥 텃밭 수준이고 내가 훨씬 더 농사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30년 농사 지었다는데 별 거 아니네’라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는데, 막상 돌아와서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농이 지속 가능해야 하는데, 이렇게 풀을 매면 농부도 못 견디고, 밭이 못 견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일본에 다녀온 계기로, 풀을 적극적으로 키우는 방식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콩 옆에 밀을 뿌려놓고 콩을 수확한 후에 베어서 덮어 놓았어요. 발아시키려면 습도가 유지돼야 하는데, 흙을 안 덮고 줄기로 덮어놓은 거죠.
지금 풀이 많이 난 곳은 작년 가을에 뭔가를 키웠던 곳이고, 흙이 보이는 곳은 올봄에 채소를 파종한 곳이에요. 채소는 줄파종 해요. 거의 간격 없이 2-3cm에 한번 심고, 솎아줘요. 솎아주면서 풀도 베주고 하죠. 채소는 감자처럼 그런 식으로 하면 초반에 풀과 섞여서 어려워요. 감자랑 차원이 달라요. 20cm 정도 너비로 꽤 넓은 부분을 풀을 정리하고, 한 달 전쯤에 채소를 뿌려 놓았어요. 당근, 상추, 근대 심고, 지줏대 있는 곳은 완두콩을 심었어요. 나머지는 다 비어있어요.
“맛있는 풀”
밭에는 정말 다양한 풀들이 자리 잡고 있어요. 웬만하면 다 먹을 수 있죠. 소루쟁이는 연하고 맛있어요. 인생의 쓴맛을 보고 싶으면 지칭개를 맛봐야 된다는 말이 있어요. 지칭개 된장국, 정말 맛있어요. 쓰니까 하루 정도 쓴 물을 빼고 요리를 해야 해요. 일하다 에너지가 달릴 때 광대나물 꽃 같은 걸 먹어요. 제가 좋아하는 <아나스타샤> 책에 보면, 아침에 자기 농장을 돌면서 이런 꽃과 열매를 따서 아침을 대신하는 내용이 있어요. 꽃이니까 달큼하잖아요. 밭에 명아주, 쇠비름도 많아 겉절이나 무쳐서 먹었었거든요. 정말 신기한 게 거름을 안 넣으니까 그 두 풀이 3년 만에 전멸했어요. 얘네는 사람이 넣어준 거름을 먹고사는 애들이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작년부터 쇠비름이 이 밭에 다시 나기 시작했어요. 땅이 다시 비옥해진 거죠. 역시 10년이 지나니 자연농이 되는구나 생각을 했죠. 민들레가 많아서 꽃차도 만들었었는데 올해는 많이 없어서 차 안 만들고 그냥 키워보려고 해요. 밭에 오면 꽃이 많아서 좋아요. 요즘은 냉이, 말냉이 꽃이 한창이죠. 시골분들은 밭이 이게 뭐야 하시지만, 이런 걸 서울분들이 예쁘다며 더 잘 느끼는 것 같아요. 고정관념이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잘 받아들이시더라고요.
“풀의 생애 주기”
저쪽에서부터 번져오는 헤어리베치와 이쪽부터 번져가는 오차드그라스가 격전하기 직전이에요. 가을에 발아해서 씨를 맺는 시기가 비슷하거든요. 누가 이길 것이냐 지켜보고 있는데, 자연이 알아서 하겠지요. 오차드그라스를 사실 너무 번식력이 좋아 농부는 감당이 안되죠. 이걸 헤어리베치가 맞서고 있어요. 헤어리베치는 알아서 흘러들어온 풀이예요. 질소를 고정해주는 녹비작물이라 엄청 번성하면 최대한 키워서 8월쯤 씨가 맺힐 때 쳐내고, 무를 심기도 해요. 풀을 잘 만나는 것도 인연인데, 자연스럽게 풀이 변화(?) 되면서 왔다 가더라고요. 헤어리베치를 막아보겠다고 지금 베면 다른 여름풀이 엄청 올라와요. 지금 크는 풀을 지금 베면 더 풀 관리가 쉽지 않겠냐 생각하는데, 크는 애들을 그냥 두는 게 현명하더라고요. 다른 풀이 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이 풀들을 그대로 두었다가 7-8월쯤 자연스레 세력이 다했을 때 들어가서 농사를 지으면 돼요. 그래서 그냥 크게 두어요. 여름풀 대표적인 게 바랭이예요. 보통 밭에 득세하는 풀인데, 풀을 그냥 두고 나서부터 바랭이가 별로 없어졌어요. 날 수 없는 환경이 됐는지 자연스럽게 다른 풀이 자리를 차지했어요. 땅을 갈면 순간적으로 풀이 없어지지만 결국 더 많이 나요. 비닐 멀칭 해서 풀을 관리해주면 가능하겠지만, 자연농에서 땅을 갈면 사람이 죽어나요.
풀과 함께 농사짓는 일이 처음엔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결론은 된다는 겁니다. 대신 풀의 생애 주기를 잘 맞춰야 돼요. 풀이 왕성하게 올라올 때 풀을 베거나 제거하고 파종하려고 하면 너무 힘들어요. 풀이 어느 정도 생명력을 다한 다음에 탁탁 쳐내면 훨씬 쉬워요. 그런 흐름을 잘 타면 힘을 훨씬 적게 들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지저분해 보이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견뎌야 해요. 그걸 견뎌야 나중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겨요. 풀도 제 생을 다 하고 난 뒤에 정리하는 것이죠.
풀을 그냥 밟게 된지도 얼마 안 됐어요. 살아있는 풀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싶었어요. 지금은 밟을 수 있죠.
논밭이 풀로 가득한 농장,
논밭의 풀로도 완벽한 농사가 가능한 충만한 기쁨의 농장
풀풀농장 이름은 논밭이 풀로 가득한 농장, 논밭의 풀로도 완벽한 농사가 가능한 충만한 기쁨의 농장이라는 뜻이에요. 아내가 썼는데 거의 완벽하게 표현을 해냈다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저도 풀을 잘 몰랐어요. 보통 생각하듯 없애야 하는 존재, 두둑에는 안되고 고랑에서만 살아라 그 정도였죠. 그런데 자연농을 할수록 풀이 대단한 존재라고 느껴요. 트랙터로 경운 하면 쟁기의 길이가 30cm예요. 나머지는 그 무거운 무게로 땅을 단단하게 다지게 되는 거라, 결국 30cm 농사예요. 그런데 자연농은 사람은 경운을 안 하지만 풀이 경운을 해줘요. 풀이 3m가 들어가요. 그 직근 옆으로 잔뿌리가 나니까 풀이 깊게, 잘게 경운의 역할을 해줘요. 풀뿌리가 미생물이 살 수 있는 근거지가 되어줘서 유기물 분해도 많이 일어나고 선순환이 일어나요.
밭을 비추는 태양빛은 풀이 없으면 흙을 메마르게 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관개시설로 물을 넣어주면서 마르지 않게 하죠. 그런데 풀이 덮여 있으면 땅의 수분이 유지돼요. 그리고 태양빛을 풀들이 저장해서 내년에 또 쓸 수가 있어요. 그리고 자라서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가죠. 그런 수분 유지만으로도 땅 속의 작은 동식물과 미생물들이 살아서 완전한 생태계가 형성돼요. 인간이 최소한의 개입만 해도 유지되는 동력이 되죠. 풀이 거름이 되어주고 흙이 되어주니 그 자체로 완벽해요. 사람은 거기에 감자가 먹고 싶으면 감자를 심는 정도의, 씨 뿌리는 역할만 해요. 풀은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에 풀풀 두 번이나 이름에 넣은 거예요. (그래서 풀풀농장!)
옥수숫대 밑에는 다시 무를 심을까 해요. 닥쳐서 생각하는 편이에요. 어디에 심을까 항상 머릿속에 생각을 해요. 풀 상태도 보면서요. 씨앗을 뿌렸는데 아무것도 안 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러면 다른 걸 심을까 한번 더 뿌릴까 생각하기도 하고요.
지줏대 설치해둔 곳에 작년에는 방울토마토를 심었어요. 그다음 완두콩을 심었는데 두더지가 자주 지나가서 땅 속이 고속도로처럼 다 뚫려 있어요. 이런 곳에 심으니까 운 안 좋을 때는 발아가 거의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두더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둬요. 되는 곳은 계속되고 안 되는 곳은 계속 안 되는 거 같아요. 흐름이 있는 것 같아요. 초기에 땅콩 농사가 굉장히 잘 됐는데 이제는 잘 안돼서, 올해는 안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밭에도 땅에도 변화가 계속 있더라고요.
두둑 없이 그냥 평밭도 있어요. 밭이라고 말 안 하면 밭인지 모를 곳이죠. 작년에 들깨를 심었다가 지금은 호박, 오이, 참외, 단호박, 수세미, 수박 등 박과를 심었는데 아이들이 수박을 좋아해서 수박에 에너지를 많이 쓰는 편이에요. 박과들은 풀은 그대로 두고, 심을 자리만 분화구처럼 풀을 정리하고 심었어요. 띄엄띄엄 2m 간격을 두고. 4월 15일에 파종하면 5월 5일쯤, 3주 후에 싹이 나요. 이 밭도 헤어리베치가 많은데, 이 속에서 호박이 자랄 때 6월 초까지는 위로 키가 자라다가 더 커서 잎이 무거워지면 땅으로 기기 시작해요. 그 키에 맞춰서 풀을 조금씩 넓혀가며 정리해줘요. 지금 나는 풀을 최대한 그대로 둬야 밭에서 다른 풀이 날 수가 없어요. 그냥 가만히 두고 기다리면 그 생명이 다해 스러진 후 그 위로 호박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교체돼요. 작년에 그렇게 해봤는데 비가 잘 와서 설계했던 대로 100% 성공했어요. 풀이 너무 많은 밭이면 이런 식으로 호박 같은 걸 키우면 좋아요. 호박은 6월 달부터 잎이 옆으로 기기 시작하니 7월 초쯤 되면 거의 교체가 돼요. 이런 아이디어는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어요. 경험으로부터 얻는 지혜지요. 한 이웃이 작년에 이 호박밭 보면서 잘 됐다고 하셨어요. 그분도 전업농은 아니지만 본인은 로터리 쳐서 심었는데 풀을 못 잡았다며 머리를 잘 썼다고 칭찬하시더라고요.
자연농 채소의 맛이 확연히 다른 것은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제가 입맛이 덜 민감하고 몸도 아프지 않아서 그런 지도 몰라요. 아프거나 민감한 분들은 맛이 다르다는 걸 느끼세요. 거름을 안 넣으니 다르죠. 저는 맛보다는 작물의 뿌리를 보고 짐작되는 게 있어요. 「잡초의 재발견」이라는 책에도 나오는데, 풀뿌리가 깊고 굵게 들어가면 그 옆을 따라 작물의 뿌리가 들어간대요. 트랙터로 경운한 밭은 밑이 딱딱해지니까 뿌리가 깊게 못 들어가고 30cm 정도의 얕은 곳에서만 뻗치니까 다른 맛이 날 수 없죠. 자연농 채소들의 뿌리가 풀과 함께 자라며 더 깊이 내려가 미지의 세계까지 내려가니 독특한 미량원소를 많이 빨아들여서 맛의 차이를 만들겠죠. 맛을 못 느끼더라도 몸에 주는 효과도 분명히 다를 거예요. 특히 수분이 많은 수박 같은 건 확실히 맛이 달라요. 맑고, ‘이게 단맛이지’ 하는 느낌이 들어요.
>> 풀풀농장 편은 1, 2부로 나누어 발행됩니다. 곧이어 2부도 이어집니다.
[마르쉐X파타고니아의 지구농부 프로젝트]
마르쉐X파타고니아는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다시 흙 속으로 돌려보내는 '재생 유기 농업'을 응원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농업을 지향하는 농부들을 지구 생태계를 돌보는 '지구 농부'라고 일컬으며, 이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지구 농부’들의 토양을 되살리는 농업은 기후위기 시대의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지구농부여행]
마르쉐X파타고니아 지구농부프로젝트의 하나로, 함께 '지구농부여행'을 떠납니다.
지구를 되살리는 농사를 지향하는 마르쉐 농부님들과 함께, 자연재배 농부님들을 만나러 갑니다.
흙과 풀과 벌레가 같이 사는 곳에서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인터뷰집 '채소지'로 공유합니다.
* 풀풀농장의 연재 후 이어 풀풀농장 x 신비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신비원과 풀풀농장의 대화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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