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아, 잠깐만 이리로 와 봐. ”
“엄마, 왜 속삭여~ 무슨 일이야?”
엄마 집에 갈 때마다, 열에 여덟 번은 꼭 듣는 말.
안방으로 조용히 나를 데리고 들어가신다. 헹거에 걸려있는 옷들을 하나 둘, 서랍장에 고이 개켜져 있는 옷을 하나 둘 꺼내신다.
“너, 이거 입을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맞았는데, 길이도 품도 다 너무 커졌어. 비싸게 주고 산 옷이라 남 주기도 아깝고, 너 입을래? “
“엄마, 이거 너무 아줌마 옷 아니야?” 하고 싶은 걸 꾹 참는다. 나도 빼박 아줌마니까. 이 말 대신..
“엄마, 옷 이쁘다. 디자인이 세련됐네. 우리 엄마 안목하나는 끝내준다니까!!”
그러면 엄만 입이 귀에 걸리신 채로 “입어 봐 “ 하신다.
네네 입어드려야죠. 입어보겠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들고 온 엄마 옷이 몇 벌인가.
겨울 코트 2~3벌, 오리털 패딩 한 벌, 티셔츠에 바지에 가끔은 잠옷까지. 매주 주일 교회 갈 때나 친척들, 친구들 모임 있을 때나 입으셨을까. 구매한 지 꽤 됐지만 얼마나 관리를 잘하셨는지 해진 곳 하나 없이 옷이 깨끗하다.
엄마가 자꾸만 작아지신다. 내 엄마 키가 정말 이렇게나 작았던가. 하늘만큼 땅만큼 커 보였던 엄마, 골리앗도 울고 갈 정도로 장사로만 보였던 엄마가 한 해 한 해 아니 한 달 한 달이 다르게 작아지신다. 내게 물려주신 통뼈만 빼놓고 근육도 지방도 자꾸 빠지시나 보다. 원래도 살이 있던 체질이 아니었지만 갈수록 얇아지는 엄마의 종아리를 보면 속이 아려온다.
비바람이 돌도 깎고 자연의 모양도 변하게 한다. 물 길도 바뀌고 지형도 바뀐다. 그런 세월이 70년 넘게 한 사람의 모양도 바꾸나 보다. 몇 년 새 키가 10cm나 줄었다고 하신다. 그러니 무릎 위로 올라오던 외투는 무릎 아래로, 무릎 아래에 있던 옷은 정강이 쪽으로 더더 내려온다. 길이가 길어질수록 걷는 건 불편할 것이고, 자칫하다간 넘어질 수도 있다. 옷 테의 문제만이 아니라 부상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할 터이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그런 것을 알지만…
어릴 땐 빨리 커서 엄마 옷을 입고 싶었다. 어디 옷뿐일까. 발도 쭉쭉 길어져서 엄마의 뾰족구두도 신고, 핸드백도 어깨에 척 걸치고 빨간색 루주도 바르고 싶었다. 얼굴을 하얗게 만들어주는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양볼이 붉으족족해지도록 볼터치도 하고 싶었더랬다. 그땐 몰랐지. 나만 크는 게 아닌 것을. 내가 크는 속도보단 늦겠지만 엄마가 천천히 늙어간다는 것을. 작아지고 작아지다 종내에는 사라져 버릴 거라는 것도.
그때 소원을 이제 하나씩 성취하고 있다. 커지는 옷, 신발이 내 옷에 내 발에 입혀지고 신겨진다. 알몸으로 태어난 자식 입히고 먹이는 어미는 자식이 커도 여전히 자신의 것을 주신다. 그렇게 끝내 난 엄마의 것을 받아먹고 사나 보다.
어버이날을 맞아 잠시 엄마를 만나러 갔다. 협착이 심해서인지 허리도 살짝 굽은 것 같다. 엄마랑 나란히 손잡고 걷는데 왜 지난 설보다 더 작아지신 것 같은지….
‘엄마, 오래만 살아. 자꾸 작아져도 괜찮으니까 내 곁에 오래만 있어줘.’ 이 말은 꾸역꾸역 삼키고 다른 말만 하고 왔다.
엄마를 봐서 좋다는 말.
어버이날 축하한다는 말.
이런 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