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영 Oct 22. 2023

나를 구동할 공간

핸드폰을 바꿀 때가 되었다. 

아이폰14 시리즈가 나와서가 절-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계속해서 메모리가 부족하다는 알림메시지가 뜨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시작 때 다녀온 유럽여행의 사진부터 모두 간직해오고 있는데다가 저장해둔 음악이며 때때로 확인해야 하는 문서까지 온갖 정보와 자료들이 폰 안에 가득가득 들어있다. 

어디 그 뿐인가? 일 때문에 보내야 했던 동영상이나 필요할 때마다 깔아둔 어플은 또 얼마나 많은지. 내 폰은 지금 활용가능한 공간이 거의 없다. 때문에 핸드폰은 내가 지시하는 일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메시지 전송이나 영상 전송등에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고 그나마도 구동아이콘만 보이고 전송되지 않을때도 있다. 어플이 잘 열리지 않거나 더 이상 영상을 찍을 수 없기도 하다. 새로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구동가능한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이 가득 차 있으니 움직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요즈음 나의 상태는 내 핸드폰 상태와 꼭 같다. 주 1회는 대구에, 1회는 수원에 가다보니 일주일이 5일뿐인데 그 중 이틀을 주말로 제외하면 모든 일을 3일에 마쳐야 한다. 그 중에 이틀은 무용치료 세션이 있으니 나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하루뿐이다. 물론 다른 날도 틈틈이 시간이 나긴 하지만 주중에 3회 이상은 되도록 공연을 봐야하고 무엇보다 엄마로서의 시간을 할애하고자 하다보니 시간의 압박과 일의 압박을 계속해서 받고 있었나보다. 나도 몰랐다. 그런데 깨닫게 된 일이 있다. 

핸드폰 용량이 부족해서 구동이 안 된 것처럼 나도 용량이 부족해서 부하가 걸린 일이 생긴 것이다. 전혀 그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민감하게 볼 일도 아니었고 과하게 반응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 순전히 나의 실수였다. 일상에 여유가 없다보니 나 스스로 일에 대해 소홀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염려가 자격지심을 만들어 눈덩이처럼 불려서 엉뚱한 곳으로 굴려버린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나서 후회가 밀려왔다. 부끄럽고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알았다. 지금 과부하상태라는 것을 말이다. 찬찬히 일상을 돌아보거나 정작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없이 쫓겼던 것을 깨달았다. 

일을 따라 달리다 보면 가끔 왜 하는지, 어떤 걸 하고 있는지 잊은 채 관성에 의해, 가속력이 븥은 채로 더 빨리, 더 많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릴 때가 있다.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듯 달리는 것이다. 처음엔 걸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전력질주하고 있다. 지금 내 모습이 그랬던 거라고 인정한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덜어내듯이 나를 비워야 할 때이다. 아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알기만 해도 실수는 덜어진다. 실수를 깨닫고 사과를 

작가의 이전글 무용을 판매하는 시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