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으로 배우는 소통과 공감의 방법
유난히 파란 하늘과 붉은 단풍이 어우러지던 아침.
1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수업이 시작되는 것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지만 유독 들뜨고 시끌시끌 즐거운 교실들이 눈에 띈다. 아이들은 책상 의자에 앉아 있는 대신 교실 앞쪽으로 책걸상을 모두 밀어붙였다. 그리고 평소 한 번도 벗어보지 않았던 실내화까지 벗어 가지런히 놓아두고 맨발 상태로 비어있는 공간을 신기해하며 신나게 뛰어다녔다.
“실내화 벗고 처음 다녀봐요.”
“우리 교실이 이렇게 넓었어? 교실에 책상이 없으니 너무 좋아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새로운 수업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3주에 걸쳐 한주에 2시간씩 총 6시간 동안 무용을 통한 소통의 방법을 배우고 경험한다. 그동안 친하게 지내보지 못한 친구와 짝을 맺어 보고,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갈 수 없었던 친구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가 하면, 싸우고 화해하는 방법을 몰라 서먹했던 친구의 움직임을 따라 하며 웃음꽃을 피운다. 평소 소극적이어서 눈에 띄지 않았던 친구의 새로운 장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미워하는 마음도 없이 곁을 주지 않았던 친구와도 땀 흘리며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마음의 벽을 허물어 버리고는 이내 한편이 된다.
6시간이 다소 짧게 느껴지는 시간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댄스테라피가 마냥 즐겁고 신기하다.
“요즘 아이들은 부족한 것이 없이 자란다. 부모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데다가 형제자매도 별로 없어 무언가를 양보하거나 희생할 필요가 없고 경험할 기회조차 없다. 이런 유아기를 보내고 초등학교에 와보니 선생님도 친구들도 자기가 원하는 데로만 해주지는 않는다. 교우관계도 어려운데 각종 학원이며 숙제에 쫓기는 스트레스는 아이들의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한다. 적으나마 있는 놀이시간에도 함께 부대끼고 땀을 흘리며 뛰어노는 대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으로 각자 놀기 일쑤이다. 놀이문화까지 개인적이 되다 보니 아이들은 점점 더 소통의 방법을 알지 못하게 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줄 모른다. 타인의 아픔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친구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고 왜 속상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움직임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공감능력을 길러주고 서로 소통할 수 있음으로 더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총 3회기로 진행되는 이번 프로그램의 각각의 내용을 살펴보면 1회기에는 ‘내 마음을 알아줘!’라는 제목으로 자기의 마음 상태를 바라보고 친구들과의 움직임 활동을 통한 즐거움을 경험하며 긍정적 에너지를 회복한다. ‘마음 요리하기’가 주제인 2회기에는 좀 더 적극적인 친구들과의 교류를 경험한다. 자신의 마음이 혹은 꺼려지거나, 소극적인 마음이 드는 것들을 인정하고 움직임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 친구의 움직임을 따라 하고 신체의 각 부분을 조율함으로써 다른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감정들을 스스로 조절하고 자기에게 맞는 조절 방법을 찾기도 한다. 마지막 3회기에는 ‘마음과 마음의 노래-즐거운 교실’로 서먹해진 관계가 개선된다. 함께 추는 춤들이 익숙해져 전체가 하나 되는 움직임들을 선보이고 이로 인해 전과는 달라진 분위기로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함께하기에 즐거운 교실 분위기가 이루어진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의 자기표현이 눈에 띄게 향상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던 아이들이 자기만의 춤으로 자기를 표현하기 시작한다. 리듬에 맞춘 자신의 동작을 반 친구들이 미러링 하며 반영해 주면 움직임을 통한 공감이 이루어지고 마음의 벽은 허물어진다.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아이의 또 다른 모습들도 발견되면서 외톨이로 지내던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뛰어 논다. 절대로 다른 아이는 끼워주지 않던 그룹의 아이들이 서먹하던 아이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결국에는 반 아이들 전체가 한 마음이 되어 기차를 만드는가 하면 숲을 만들기도 하고 바닷속을 만들기도 한다. 춤이기에 가능한 다양한 이미지들이 아이들의 창의력을 무한하게 자극하고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우리 반이 프로그램 전보다 얼마나 재미있어졌는지 손의 높이로 표현해보자”라는 무용/동작 치료사의 제안에 아이들이 저마다 손을 들어 올린다. 앉아서만은 안 되겠는지 일어서고 뛰어오르며 최대한 손을 높이 높이 올리는 아이들.
“하늘 높이 손을 올리고 싶은데 제 키가 너무 작아요.”
“이런 활동은 처음 해봤는데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손을 우주까지 올리고 싶어요.”
“반 아이들과 많이 친해져서 너무 기뻐요.”
“더 오랫동안 선생님과 만나고 싶은데 헤어져서 너무 슬퍼요.”
아이들이 저마다의 표현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모습들이 감동적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는 자기 이름 석 자를 소개하기도 마냥 부끄럽고 귀찮던 아이들이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알고 소통하며 움직임으로, 언어로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된 아이들의 변화가 놀랍다.
무용에는 참으로 다양한 기능들이 있다. 무용이 가진 그 기능 중 특히 치료적인 기능에 중점을 두고 사회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댄스테라피. 그들의 모습이 점점 추워지는 이때에 더 훈훈해 보이는 이유는 댄스테라피를 통해 만나는 많은 이들이 사회적인 약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일반인에게 이루어지는 다양한 댄스테라피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우리 사회에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 소외된 이들. 아픈 이들에게 선뜻 손을 잡아주며 위로할 수 있고 그들의 어깨를 두드려 격려할 수 있고 두 팔로 안아주며 마음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은 움직임을 통해 경험되는 놀랍도록 강력한 몸에 남는 감각적 기억 때문일 것이다.
머리는 잊어도 몸이 잊지 못하던 기억 혹은 트라우마를 움직임을 통해 전혀 새로운 몸의 기억으로 전환시키고 또 다른 움직임을 통해 에너지를 전환시키고 자신의 현재 모습에서 더 나은 미래의 나로 확장시킬 수 있는, 몸을 통해, 춤을 통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 그것이 댄스테라피일 것이다.
교실문을 나서는 무용/동작치료사들에게 마음껏 손을 흔들어 주던 아이들, 달려와 품에 안겨 마음을 표현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짧은 시간에 이렇듯 마음 문을 활짝 열 수 있다니...댄스테라피의 놀라운 효과를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었던 ‘행복한 소통, 즐거운 교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