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데는 참이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시기와 형편, 상황들이 딱 맞아 떨어져야 한다. 무용평론가로 쉴새 없이(라고 말하면 조금 찔릴 정도의 게으름도 중간중간 있었지만) 달려오던 어느날 너무 내가 소모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브레이크가 걸린 적이 있다. 공연을 쫓다보면 나도모르게 일주일에 두세번만 보기로 한 횟수가 네 다섯번을 넘어 주말이면 연거푸 두세 작품을 보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가 하면 밤새 글을 쓰느라 밤새기를 밥먹듯이 했다. 그런데 그렇게 쓴 글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버리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잔뜩 움켜진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처럼 치열하게 쌓아놓은 것들이 돌아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던 느낌. 그래서 만들게 된 것이 탄츠위드였다.
탄츠위드라는 이름을 만들기 위한 고심부터 어떤 콘텐츠로 채워넣을지 생각하면 설랬다. 독자공모를 통해 독자들의 닉네임인 탄탄이도 만들어졌고 카카오톡 채널을 만들어 한 사람, 한 사람 탄탄이들을 불러 모았다. 처음10명이 모였을 때, 50명, 100명이 되었을 때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졌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고 내가 싣고 싶은 글을 싣고 내가 소개하고 싶은 사람들을 소개했다. 같은 시간, 같은 노력이 들었지만 소모되기보다는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사이 탄츠위드를 통해 위로받는 이들도 생겨나고 탄츠위드 덕에 무용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생기고 그래서 공연을 보기도 하고 춤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이들도 생겼다.
나의 또 다른 일은 무용치료사이다. 무엇이 본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글쓰기와 춤추기, 춤나누기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의 글은 무용치료사로 사람들과 춤을 추는 일, 춤을 보는 일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10년을 무용치료사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유아부터,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을 만났고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났고, 학교의 선생님들, 병원의 간호사들, 정신과 병동의 환우들, 소년원 아이들과 군부대 군인아저씨(아저씨라 쓰고 조카라 읽는다, 이제는 자식뻘, 딸의 친구들이 벌써 군대를 가니 시간이 이토록 빠르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과 파킨슨 환자들, 노인들, 학부모 등 정말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동안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물론 때때마다 두려움과 긴장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세션이 끝날 때쯤이면 누구보다 즐거웠다. 그런데 대부분의 만남이 지원사업에 의존한 것들이라서 지속적인 만남이 어려웠다. 그런 만남이 반복되면서 아쉬움이 커졌고 또다시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몸마음무용연구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때때로 만나고 싶다는 사람, 춤추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진행하는 수업에 참여시킬 수 없어 아쉽기도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수업들을 마음껏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최선을 다했지만 끝나고 나면 그들에 대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그래서 난 지금 욕심쟁이처럼 내꺼를 시작한다. 남의 것에 불태워지는 나를 이제는 아껴주고 싶다. 탄츠위드도 내꺼로, 몸마음무용연구소도 내꺼도 만들고 싶었다. 내 마음대로가 하겠다는게 아니라 내꺼로 더 세심한 애정을 마음껏 부으려고 하는 것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몸마음무용연구소가 어느새 한 달이 되었다. 좋은 기회를 얻어 서초동에 있는 연습실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평소 꿈꾸던 많은 것들을 실현하고 있다. 무용치료 개인세션부터 다양한 세션들이 진행되고 있다. ‘나를 위로하는 나, 나를 위로하는 춤’, ‘낙엽밟는 소리, 몸소리’, ‘터치, 촉각의 움직임’ 등의 워크숍들이 진행되었고 감정조절을 위한 그룹세션과 크리스천을 위한 움직임 묵상, 건강한 노화를 위한 ‘리본댄스’, 장애인 아동을 위한 ‘헬로마이바디’ 등 그룹세션이 진행되었다.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나 감사했고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들이 재밌었다. ‘읽기와 춤추기’, ‘걷기와 춤추기’, ‘사진과 춤추기’, ‘뜨개질과 춤추기’, ’몸으로 읽기’, ‘움직임 묵상’ 등 춤추기 시리즈도 계속해서 진행하려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때로는 실망을 하기도 좌절이 되기도 했지만 이 모든 과정은 나를 더 성장시키는 요소가 될 거라 믿고 있다.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키워가고 완성시켜가고 풍성하게 되어가는 중이라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은 두려움이라는 큰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다른 외부적인 요소들이 다 갖춰지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나를 방해하는 나, 내 안에서 안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과 스스로를 낮추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콤플렉스, 그냥 원래 하던 것이나 잘 하고 있는게 더 나은 거 아니야 하는 의심. 나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바로 나이다. 그런 나를 딛고 무언가를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시작하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 해가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 2024년은 유독 도둑맞은 기분이다. 그래도 찬찬히 생각해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해낸 일도 있고, 하지 못한 일도 있고, 계획했다가 아직도 미뤄둔 것도 있다. 탄탄이들은 어떤 한 해를 보냈는지 궁금하고 또 올 한해 탄츠위드에 큰 에너지를 쏟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든다. 바라기는 탄탄이들이 마음먹었던 것, 생각했던 것,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해낸 절반의 성공이 탄탄이들에게도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