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부터 거의 모든 물품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있다. 각종 식재료에서 서적, 물품, 전자제품, 가구에 이르기까지 전품목에 이르다보니 만져보고 입어보고 해야한다는 옷 조차도 온라인으로 사고 있다. 온라인 의류쇼핑몰을 둘러보다 보면 같은 매장에서도 특히 비싼 가격을 받으며 좋은 품질과 소재로 따로 분류된 코너가 있는데 이름하여 ‘블랙라벨’이다. ‘블랙라벨’ 라인으로 구분된 옷들은 디자인도 디테일도, 소재도 차별을 두어 다른 옷보다 고급스러움을 강조한다.
지난 2024년은 오래전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오랜만에 죽음에 대한 충격을 피부로 느꼈던 한 해였다. 교회에서 친근하게 느꼈던 장로님이 실족사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을 때, 참 오랜만에 누군가의 상실로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 하면 친한 선생님의 남편이 심장마비로 하루아침에 고인이 되셨을 때도 충격이 컸다. 예정된 일정을 부랴부랴 마치고 강원도까지 달려가 선생님의 어깨를 안고 느껴졌던 흐느낌은 지금도 가슴아프다. 그 이후에도 아끼던 후배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유명한 배우가 죽음을 맞는 등 2024년은 죽음의 소식이 유달리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연말에 닥쳤던 비상계엄과 항공기참사를 보면서 어떤 이들에게는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일으키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더구나 최근 읽기를 마친 <죽은자의 집청소>(김완) 역시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죽은 자가 남긴 수수께끼같은 사연들과 함께 소개된 스스로의 사후를 염려하며 세상을 떠난 이들의 내용까지 죽음은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누군가의 삶을 마감시켰다. 분명한 것은 죽음은 누구도 빗겨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토록 명징한 명제 앞에서 나도 언젠가는 최후의 날을 맞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렸을 때는 마치 남의 일인양, 나에게는 결코 그 날이 오지 않을 것 같던 일이었다면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고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맞으면서 이제는 조금씩 나에게 다가올 죽음의 형태가 보이는 것 같다고 할까. 작가는 인간이 죽은 그 자리에서 삶과 존재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표현을 한다. 마치 있어도 없는 것인양 모른 척해얄듯이 익혀온 죽음은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 때 삶을 더욱 가치있게 하는 것이라 속삭인다.
마지막까지 자기 욕심을 부리다 돌아가신 원로선생님을 보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남겨질 이들을 위해 하나도 물려주지 못하고 심지어 스스로 이루어 놓았던 것도 가시고 나니 이리저리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미리미리 준비된 이별이었다면 떠나고 난 후 남은 것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양분으로 후진들을 자라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 반면에 어떤 죽음은 숭고하다. 자기의 생명이 다하기까지 누군가를 사랑하고 돕고 아끼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떠난 자리에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발벗고 나서서 그의 일을 이어갔고 그 자리엔 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성장해 나갔다. 쓰러진 나무가 썩어 만든 자양분을 잔뜩 머금은 숲에 온갖 식물과 동물이 성장하는 모습이랄까.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를 가슴에 품는다면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이 자기에게도 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기적이거나 악할 수 없다. 죽음 앞에서 사람은 한없이 낮아지고 겸손해진다. 누군가를 짓밟고 무시하고 올라가려고 버둥거리는 대신 누군가의 연약함을 돌아보고 넘어진 사람을 일으키게 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우리를 위해, 남겨질 후대를 위해 공헌하고 싶어진다. 죽음을 외면할 때와는 분명 차별화되고 삶은 훨씬 기품이 넘친다. 흔히들 죽음을 어둠의 그림자라고 말하며 두려워하고 혐오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고급스럽게 여겨지는 색 역시 검정색이다. 이제라도 삶에 블랙라벨을 붙여주어 삶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보는 것은 어떨까.
새해 첫 시작부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게 누군가에게는 거부감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감추지 않고 나누고 싶었다. 얼마전 항공기 참사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매일 죽음의 벼랑 끝에 서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저만치 앞에서 본인은 떠나지 않을 것처럼 계신 누군가를 향한 하소연도 아니다. 그저 의미 없는 삶이 아닌 보다 가치있는 삶. 품위를 지켜내는 삶을 살아가고자 작은 이유라도 찾기 위해서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 모르겠다. 다들 아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된 풋내기의 넋두리일지도 모르겠다. 영어를 처음 배운 어린 아이가 외국인이라도 된듯 의기양양한 것 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누고 싶었음을 양해해주시길. 이제라도 내 삶에 블랙라벨을 붙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