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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춤추면 안돼?

by 김미영

브런치에서 멤버십서비스를 시작했다. 멤버십은 독자가 원하는 작가의 글을 유료로 이용하는 서비스이다. 어디 내놓지 못하고 그렇다고 완성하지도 못한 글들이 있어 이번 참에 내놓기로 결정하고 매무새를 가다듬어 하나의 글을 개시했다. 수입이 생긴다는 기대는 애초에 전혀 없었고 점점 게을러지는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고자, 처음 글을 쓰던 설렘을 되찾고자 시작한 것이다.

얼마후 첫 구독자가 생겼다. 소식을 들은 지인의 구독이었다. 갑자기 어떤 책임감이 밀려왔다. 이미 글을 쓰면서 보수를 받아온 나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감정이다. 처음도 아닌데 갑자기 왜 책임감이라는 압박을 받는 거지? 무언지 모를, 지금까지와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의 글은 글을 의뢰한 사람이 댓가를 지불한 것이다. 글을 누가 읽을지, 읽고 나서 어떤 기분일지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멤버십의 구조는 글을 읽을 소비자를 직접 대면하는 일이다. 도매업자가 소매업자가 되었다고나 할까. 갑자기 글을 더 열심히 써야만 할 것 같고, 잘 써야만 할 것 같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그런 글이어야 할 것 같고, 무엇보다 규칙적으로 써야 한다는 그런 부담. 나쁜 감정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와는 분명 다른 책임감이 생긴다.

얼마전 책임감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책임감을 가진다는 건 인간적인 성숙이 있어야 가능하다. 스스로 덜 자란 사람은 어떤 일에 책임감을 가지기 어렵다.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고, 어떨 땐 스스로를 희생해야 하기도 해야 한다. 때때로 하고 싶은 말을 참기도 하고, 가고 싶은 길과 반대로 가야 할 때도 있다. 나 대신 남을 세워주어야 하기도 하고, 남들이 다 쉴때 혼자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사회 속에서의 책임감이란 의무와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스스로에겐 어떨까? ‘나’와 함께 하는 ‘나’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을까? 내가 나를 책임진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게으르고 나태한 나를 들들볶는 역할이 될 수도 있다. 가령 한 없이 자고 싶은 나를 책임감을 가지고 바라본다면 깨워야겠지. 며칠밤을 샌 것도 아니고 허구한 날 잠만 자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나의 일부가 계속 자고 싶다고 투정을 부려도 일러나려고 애쓰는 게 날 책임지는 거겠지, 아니면 밥먹고나서 밀려오는 피곤에 소파에 누워버리는 거는? 마감일이 코앞인데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 넷플릭스를 켠다면, 엎드리면 코닿을 거리인데 굳이 자가용을 타려고 한다면, 후회할 거 뻔히 알면서 기어이 성질을 한 번 부리고 싶다면, 배가 아프면서도 엄청 매운 떡볶이를 시키기 위해 배달어플을 열었다면, 이미 한 봉지 뚝딱했으면서 옆에 있는 과자봉지까지 집어들었다면,,,, 날 위한 책임감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것일까?

나를 책임지기 위해선 움직임이 필요하다. 누워있는 나를 일으켜야 하고, 가려는 나를 붙잡아야 한다. 가만있는 나를 움직여야 하고, 움직이는 나를 멈춰야 한다. 나를 책임지는 건 나와 싸워야 하는 아주 성가신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움직여야 한다. 매일 조금씩의 움직임에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하나의 예로 매일의 산책이 생각을 만들고, 건강을 만들고, 마음을 만든다. 매일의 성가심이 모여 나를 만든다. 며칠전 딸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끼니 때가 되었을 때 귀찮더라도 스스로를 위해 건강한 밥상을 준비해서 먹을 수 있어야 어른이란다.” 나조차 귀찮으면 거르거나 인스턴트로 대충 떼우기도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 스스로에게 책임을 다한다는 건 그런게 아닐까?

그리고 날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 특별히 춤을 추는 것이야 말로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춤은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 건강한 관계를 만드니까 말이다. 매일매일 춤추면 안돼? 나를 책임지기위해 매일 매일 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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