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의 춤은 끝나지 않았다> 리뷰
✔ 30년 동안 뉴욕시티발레단을 대표하던 발레리나가 부상으로 인해 무대 대신 수술대에 오른다. 춤추는 이에게는 치명적인 수술이지만 웬디 휠런(Wendy Whelan)은 수술대에서 내려와 다시 연습실로 향한다. “춤을 안 추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면서. 그리고 영화 <그녀의 춤은 끝나지 않았다>는 다시 연습실에 선 그녀가 무용수로서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는 모습을 담았다. 발레리나의 화려하지만은 않은 은퇴와 그 마지막을 꽤 진솔하고 담담하게.
✔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의 말에 의하면, 영화 속 웬디 휠런은 첫 죽음을 맞이하는 셈이다. “무용수는 두 번 죽는다. 첫 번째 죽음은 무용수가 춤을 그만둘 때다. 그리고 이 죽음은 훨씬 고통스럽다.(A dancer dies twice - once when they stop dancing, and this first death is the more painful.)”라고 했으니 말이다. 은퇴 무대는 첫 죽음을 맞이하는 의식이랄까. 그러고 보면 웬디 휠런도 죽음을 얘기했었다. 춤을 그만두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은퇴는 누구에게나 만감이 교차하는 중대 사건일 테지만, 두 무용가에게는 도대체 춤이 무엇이길래 그 끝을 죽음으로까지 표현할까 싶었다.
✔ 나름대로 찾은 답은 ‘무용수의 정체성’이다. 즉, 무용수에게 춤은 곧 자기 자신이고 춤에서 스스로를 찾는다. 오직 춤만 바라보고 수십 년 동안 무대에 올라 온몸을 바쳐 연주했던 이들이기에, 무용수에게 춤을 그만둔다는 것은 댄싱 슈즈를 벗는 것 그 이상이다. 더 나아가 은퇴는 자신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하는, 정체성을 재정립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그러니 춤을 그만두느니 차라리 죽겠다던 웬디 휠런이나, 은퇴는 죽음이라 말한 마사 그레이엄에게 춤은 어떤 의미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 하지만 웬디 휠런은 결국 은퇴를 받아들였고 그 과정은 매우 가혹했다. 그녀조차도 발레의 끝을 알 수 없던 그때, 수술대에 오른 뒤 타의에 의해 은퇴가 거론되고 쇠락해가는 ‘전 발레리나’로 불리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이 결정짓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웠지만 외면하지 않았고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영화는 그 당시 그녀의 복잡 미묘한 상황과 감정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마지막 무대를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 결정했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렇게 웬디 휠런은 첫 죽음을 맞이했다.
✔ 그녀의 첫 죽음은 가혹했으나 오롯이 그녀의 결정이었기에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고, 첫 죽음 이후에도 그녀는 춤을 멈추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었다. 발레단은 떠났지만 새로운 영역의 춤과 무대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은퇴 과정은 아팠지만, 발레에 국한되던 그녀의 정체성과 춤의 세계를 오히려 더 넓힐 수 있었다. 뉴욕시티발레단의 발레리나에서 <그녀의 춤은 끝나지 않았다 restless creature>의 현대무용가이자 아트 디렉터로. 그리고 발레 교사로. 춤을 사랑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그녀의 춤은 여전히 빛이 났다.
✔ 영화 <그녀의 춤은 끝나지 않았다>는 웬디 휠런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환상 속 존재만으로 보지 않았다. 대단한 발레리나였음에도 무대를 내려오는 그 순간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 은퇴를 준비하던 그녀도, 그 모습을 담은 영화의 시선도 참으로 담백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본 그녀의 첫 죽음은 참으로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 추천 포인트
#발레리나의_마지막모습을_보다
#복잡미묘한_은퇴의_단상
#찬란한_첫_죽음
I think for 30 years I thought,
“What would I do without New York City Ballet? How could I ever leave?
Oh, it’ll be the end of me. I’d rather die."
So maybe, I’m a different person than I was. Maybe I grew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