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설레는 계절. 다들 봄을 이렇게 얘기한다. 어릴 적 나에게 봄은 설렘이라고는 1도 없는 '심란한 계절'이었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낯선 계절, 안정감 없는 계절이 봄이었다. 한참 심란하고 어수선한데 세상은 봄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모양새라니. 3월은 1년 중에 제일 싫은 달이었다. 새 학년이 되어 낯선 아이들과 낯선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 거리였다. 반 아이들 성격을 파악하고, 누구와 친하게 지낼지 가늠을 해야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이미 각각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과 다 같이 한 반이라도 되면 더 피곤했다. 누구랑 점심을 먹고 특별실에 같이 가야 할지 눈치 싸움을 했다. 학교는 또 왜 그리 추운지 날씨는 늦겨울과 비슷한데 봄이라고 난방도 틀어주지 않았다. 매년 몸도 마음도 한껏 움츠러드는 시간이었다. 진짜 봄이구나 싶을 때가 되면 다행히도 잘 맞는 친구들과 친해져서 잘 적응했지만 긴장했던 마음이 말끔하게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았지만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반 아이들과 봄 소풍을 가는 것도 별로 달갑지 않았다. 남들이 예쁘다고 하는 연두빛 나뭇잎은 그저 심란한 색이었다. 나는 초여름이 다 되어서야 이제 편해졌다 느끼는, 새로운 인간관계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이였다.
내 기억에 제일 아름다웠던 봄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원하는 대학에 무사히 입학했고, 너무나도 좋은 과 동기들과 선배들을 만났다. 고등학교 때 그림자처럼 드리워져있던 압박감과 열등감이 모두 사라졌다. 그전까지는 새로운 반 아이들 사귀는 게 그렇게 부담스러웠는데, 대학교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이 어찌 그리 재미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점심, 저녁 약속을 잡아 밥 먹고 술 마시면서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중요한 일과였다. 나름 진지하고 심각한 얘기, 턱이 빠질 듯 웃긴 얘기로 대동단결했던 과 사람들이 내 새로운 세상의 전부였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원 없이 즐기던 그 해 봄, 그 많은 추억 중에도 제일 선명하게 기억나는 한순간은 언젠가 본관 앞 잔디밭에서 보낸 공강 시간이다. 빈 강의실이나 노래방을 가기엔 햇빛이 너무 아까운 날이었다. 친한 여자 동기들 몇 명과 본관 앞 넓은 잔디밭으로 나갔다. 작은 나무 그늘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 명은 가방을 책상 삼아 다이어리를 쓰고, 둘은 이어폰을 나눠끼고 음악을 듣고, 또 한 명은 졸리다며 아예 가방을 베개 삼아 드러누웠다. 깨끗한 잔디밭, 편하게 시간을 즐기던 친구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교정을 둘러보던 나. 이게 내가 기억하는 '눈부신 봄'의 한 장면이다. 몇 년 전 그 때 같이 있었던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적이 있었냐며 웃었다. 남들은 기억도 못 하는 평범한 순간을 나는 왜 그 봄 최고로 빛나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아름다운 봄'을 처음으로 진하게 느껴서인지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몇 년 전 다시 찾은 그 자리
어릴 적 스산했던 봄의 기억이 너무나 강해서 나에게 봄은 설레거나 기다려지는 계절은 아니다. 특히나 올봄은 유난히 반갑지 않다. 벌써부터 극심한 미세먼지가 답답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겨울에 붙은 살 때문에 두꺼운 옷을 벗는 것이 꺼려진다. 봄가을 청바지를 다시 입을 수 있을지도 확인해야 하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있다. (남들이 다 벗고 싶어 하는 마스크도 나에겐 맨얼굴과 부스스한 머리까지 당당하게 만들어주는 만능 아이템인데... 설마 이 봄에 마스크를 벗고 다녀도 되는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매년 봄이 20여 년 전 빛나던 봄처럼 마냥 신나고 재미있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하루쯤은, 짧은 한순간만큼은 그때 그 공강 시간처럼 쨍하게 빛나는 봄날 한 장면으로 남기를 기대해본다. 겨울옷을 벗기 싫은 나에게도, 봄을 기다려온 다른 이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