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지금도 그렇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늘 바빴다. 나나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시간 나는 주말에는 종종 가까운 곳으로 같이 산책을 나갔다. (남편은 집에 있으면 아이들이랑 놀다가 결국 혼자 잠들어 버려 나의 분노를 사곤 했다. 일주일 내내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들은 알 거다. 이게 얼마나 싫은 장면인지. 피곤한 건 이해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모든 현대인들은 다 피곤하다. 그리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때가 있다.') 평일에 아이 둘 사진만 찍던 나는 남편이 아이들과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장면을 은근히 기다렸던 것 같다. 늘 있는 일이 아니라 흐뭇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이렇게 함께한 시간도 있었다'라고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서 굳이 나도 같이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모양이다. 셀카 자체도 좋아하지 않아서 더더욱 셋이 아닌 넷 사진은 별로 없다. 어쩌면 육아에 지친 내 얼굴을 굳이 남기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른한 봄 햇볕을 쬐며 산책하던 세 사람. (아니 우리 넷.) 첫째가 일곱 살, 둘째가 네 살 때. 아이들 둘 다 삼각 스카프에 마스크까지 하고 있는 걸 보니 아직 바람이 찼던 모양이다. (지금은 한겨울에도 긴 목을 휑하게 드러내고 다니는 첫째가 사진 속에서는 엄마가 하란 대로 꽁꽁 싸고 있네.)
나른한 햇살에 잠든 둘째. 심각하게 잠든 얼굴은 다시 봐도 설렌다.
다른 날 대학 캠퍼스를 산책하던 날. 역시나 남편과 아이가 같이 있는 장면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사진에 없는 첫째는 근처에서 혼자 놀고 있었을 듯. 낯선 곳으로 이사 와서 처음 맞는 봄이었는데.. 새로운 기관에 적응하고 있던 첫째도 많이 봐줄 걸 하는 미안한 마음도 살짝 든다. (당시에는 둘째의 귀여움에 반해서 첫째가 눈에 덜 들어왔던 것 인정. 그래도 중학생인 지금도 엄마가 동생보다 자기를 더 좋아한다고 믿고 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작은 생명체였구나.
캠퍼스를 걷다가 반해버린 그림 같은 한 장면. 유모차에 아기를 재우고 선글라스를 쓴 채 벤치에 앉아 전공 책을 보고 있던 분. 보통은 어린 아기 엄마들을 보면 토닥토닥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이 분은 보자마자 '와, 멋있다!'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오죽하면 도촬까지 했을까. 생판 모르는 남이지만 응원하고 싶었다. 어쩌면 대리만족이었을지도...
그래도 잘 지내고 있구나, 함께해서 다행이다 하며 잠시 숨통이 트였던, 나른한 햇빛으로 위로받았던 봄날. 이번 주말에는 그때보다 훨씬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남편 다 같이 동네 공원을 산책하고 싶다. 재미없다며 어깃장을 놓을 첫째는 간만에 맛있는 거 사오자고 꼬셔봐야겠다. 이번 봄엔 셋이 아닌 넷이 다 나오는 사진도 찍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