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도시락 하나 달랑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소풍을 갔다. 지금은 핸드폰과 모자, 선글라스 정도 챙기면 그만이고. 30대 초중반인 나에게 소풍은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첫째가 어릴 때 진득하게 밖에 나가려면 기저귀며 물, 이유식, 간식, 휴지, 손수건, 물티슈 같은 살림살이가 한가득이었다. 아이 낮잠 시간이 규칙적이어서 낮잠 시간도 항상 계산했다. (그때 제일 두려웠던 것이 낮잠 놓쳤을 때 찾아오시는 '그분'.) 첫째 짐이 가벼워질 즈음 둘째가 태어났다. 다시 유모차에 큰 가방을 걸었다. 유모차가 마땅찮을 때는 둘째를 아기 띠로 안고 가방을 멨다. 남편이랑 같이 나가면 첫째는 남편한테 맡겼지만 혼자 둘을 데리고 나갈 때는 유모차를 밀거나 아기 띠로 둘째를 안고 짐 가방과 첫째까지 챙겼다. 그때는 차도 없는 뚜벅이라 짐을 유모차에 걸든 어깨에 매든 해야 했다. 그러니 웬만해선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원래 잘 돌아다니는 성격도 아니었고. (나는 온갖 아이들 짐을 갖고 다니는 게 정말 싫었다. 작은 가방에 내 물건만 챙겨서 나가는 게 소원이라고 노래를 부르다가 드디어 아이들이 하나씩 배낭을 멜 수 있는 유치원생이 될 때마다 넉넉한 배낭을 사줬다. 그렇게 서서히 가방 독립!)
그런 나도 가끔 귀찮음과 '그 분'을 감수하고 꾸역 꾸역 짐을 싸서 나갈 때가 있었다. 바로 동네 아기 엄마 친구들 모임이었다. 아이 영어책 읽어주는 인터넷 카페에서 지역 오프라인 모임으로 만나 금세 친구가 되었다. 마침 아이들도 모두 동갑이라 가끔 공원에서 아이들과 같이 만나 놀았다. 공원에 가면 아이들은 잘 놀았다. 집에 있을 때보다 공원에서 놀 때 훨씬 더 생기가 돌았다. 각자 개성 있는 또래 아이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누구 집에서 놀면 놀잇감을 주네 마네 하는 일이 가끔 있었는데 밖에서는 그런 실랑이가 거의 없었다. 아이들 시중들고, 잘 노는지 보고, 엄마들끼리 얘기하고, 그 와중에 먹고, 먹이고.. 좀 정신은 없어도 집에서 아이들하고만 있을 때 느끼는 고립감과 답답함이 잊혀졌다. 그래, 좀 힘들어도 이 맛에 나오지. 그렇게 나갔다 오면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기 엄마한테 소풍은 그렇게 살짝 부담스럽지만 막상 나가면 숨통이 트이는 달콤한 휴식이었다.
아이들 두 돌 때 만나 공원에서 바깥 바람을 쐬던 우리. 아이들이 중학생이 된 지금은 각각 멀리 살고 있지만 여전히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있다. 남편들끼리도 진작에 친해져서 따로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은... 동생들은 금세 잘 노는데 사춘기 아이들은 역시나 어색해한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면 데면데면 하다가 서로 편해질 즈음이면 집에 갈 시간. 매년 똑같은 패턴이다. 내년 봄에는 아이들, 남편 없이 우리 넷이서만 호수 공원 그 나무그늘에 앉아 한적한 봄 소풍을 해보고 싶다. 예전엔 아이들 사진만 찍고 우리 사진은 한 장도 못 남겼는데 그 때는 우리 사진도, 영상도 많이 남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