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위염, 역류성 식도염, 과민성 대장 증상, 허리 디스크, 터널 증후군,
현대인들은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질환을 똑같이 누리고 있습니다.
고통도 일상이 되면 습관이 됩니다.
시간이 흐르니 그런 부분들이 크게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걱정은 들지만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다 보니
질병과 내가 물아일체가 된 듯 그러려니 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불면증은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나아지질 않습니다.
개선되기는커녕 불면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결국 약을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이불을 덮는 순간이 가장 두렵습니다.
잠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무너져 내리면 삶이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이어집니다.
정신적 질병은 외롭습니다.
누구에게 이런 증상으로 토로해도 좀처럼 공감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서 그런지 삶에 대한 엄살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정말 힘들었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에 말하지 않던 고통을 고해성사하듯 고백했습니다.
어머니는 염려가 담긴 목소리로 이렇게 위로해 주셨습니다.
“평범하게 먹고, 자는 것만 잘해도 인생은 행복한 거야.”
전화를 끊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몸이 고장 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습니다.
먹고 자고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것보다 일이나 사회적 관계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살았습니다.
이게 맞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인생을 거꾸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인생에 가장 행복한 일은 뒤로하고 불행을 위해 한 걸음씩 걷고 있었습니다.
알아채고 난 뒤에는 고치기 힘든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 고통을 가볍게 여기다 밀려드는 큰 고통에 후회한들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인생의 방향 전환을 이끕니다.
후회로 남지 않게 경험을 통해 성숙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따금 불치의 병을 고백하며 삶에 대한 애착과 간절함을 고백하는 글을 만납니다.
이 작은 질병에도 '죽겠네'라는 고백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데
매 순간 온몸을 에워싼 고통에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만나고 나면
약을 먹지 않았을 때는 못 느꼈을 감동과 응원의 마음이 샘솟습니다.
이제 진짜 행복을 위해 힘을 내야겠습니다.
더 많이 더 높이가 아니라 지금 내 몸을 평안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각오를 다지고 난 뒤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조금씩 늘어가던 수면제와 진정제가 9개까지 늘었었는데 6개월 전부터 5개로 줄었습니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불안을 진정시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벗겨지지 않은 욕심의 비늘이 나의 겉모습과 생각의 여유를 막아섭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상상 속에서 하고 싶은 일 하나가 생겼습니다.
꿀 잠자고 난 주말 아침, 차 한잔 마시며 아내와 담소를 나누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 같은 것 말고 그냥 소소한 잡담으로 시간을 때우고 싶습니다.
이전에는 아까웠던 시간이 지금은 나의 꿈이 되어갑니다.
삶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진짜 행복을 찾기 위해 나를 더욱 사랑하기로 합니다.
먼 미래의 내가 아닌 바로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