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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un 24. 2024

우리


우리말 중에 참 좋아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사용하는 것 같지만 들을 때마다 

혹은 입에서 나올 때마다 듣기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나를 포함한 복수의 집단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영역이 꼭 정해져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 같은 영역을 함께 해야 이 말이 성립합니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동네, 우리나라, 우리 민족까지 단위는 달라도

'나'라는 가장 작은 단위가 포함된 복수의 영역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라는 말을 살며시 들춰내 보면 이기적인 면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안에 소속되지 않은 집단에 대해서 배척하는 경향이 드러납니다.

우리 팀이 이기기 위해서 상대방을 꺾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1등을 하려면 누군가의 아이는 꼴등을 해야 합니다.

사이좋게 함께 하기 위해 우리가 되지만 

우리가 되지 못한 상대는 대결의 대상이 돼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 포함되지 못한 이들에게 폭력적일 때가 있습니다.

대결은 서로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합니다.

한쪽이 힘이 없으면 일방적으로 맞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그러한 시대를 거쳐 왔습니다.

힘 있는 나라는 힘없는 나라를 지배했고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했고 민족의 우수성을 자랑하려고

다른 민족을 죽이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아니라면 생명까지 쉽게 빼앗았던 역사를 우리는 배웠습니다.


평화의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지구촌 어느 곳에서는 갈등과 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닌 이들을 경계하고 이겨야 하는 숙명을 지닌 것 같습니다.

비교적 평화롭고 안전한 우리나라지만 그 안에서 숨어있는 갈등과 열등감이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이어지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인류 역사가 이어지는 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향한 노력은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 역시 누군가의 희생과 사랑으로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우리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 가면 어떨까요?

생각과 모습이 달라도 우리가 될 수 있다면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이해하고 용납하는 마음이 더 크다면 상대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영역을 넓혀나가다 보면 모두가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더 큰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당신의 평안을 기도합니다.

우리가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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