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엄마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30년만에 나타난 엄마는 중환자실에 의식도 없이 누운 채로 인공호흡기 박동에 맞추어 숨만 쉬고 있었다. 도대체 왜 30년만에 나타난 엄마는 아들을 찾아야만 했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엄마의 장기 기증을 위해 병원까지 오게 된 아들은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3살 때 가족을 떠난 엄마라는 사람이 왜 이제서야 내 앞에 나타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정은 알 수 없지만, 30년 전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세 살배기 아들을 남겨둔 채 일본으로 떠났다. 몇 해전 병약해져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마땅히 거처할 곳도 없고 돌봐 줄 사람도 없어 어느 산골의 기도원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것이다. 함께 지내던 사람들은 평소 고인이 장기 기증을 희망했다고 하였으나, 직계 가족의 동의 없이는 그 절차를 진행할 수 없었다. 관할 경찰서의 도움으로 호적상에 있는 아들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들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엄마라고 불러본 기억도 없는 사람의 장기 기증에 동의를 해야 하는 것이 영 마뜩잖은 아들은, 의식도 없이 누워 있는 생면부지인 여자의 보호자로 나서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난감한 표정이었다. 어머니와의 만남에 대한 어떠한 감동도 없었고, 그저 이런 귀찮은 일에 소환되어 온 것이 못내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장기 기증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아들의 옆에서 조용히 전후 사정을 듣고 있던 아내가 적극적으로 장기기증을 하겠다며 남편의 등을 떠 밀다시피 동의서에 서명을 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장기기증이 이루어지면 다른 가족들이 장기 이식을 받을 때 유리한 점이 있느냐고 재차 묻는 것이었다.
그 아들에게는 4살짜리 아이가 있었는데, 태어나자 마자 진단된 선천성담도폐쇄로 수술을 받은 상태였고, 향후 간이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수술을 받은 아이들 중 많은 수는 결국 간이식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 당시에는, 가족 중에 장기기증을 한 사람이 있는 경우, 다른 가족이 장기이식을 받게 될 상황에 놓였을 때, 뇌사자 간장 선정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를 염두에 둔 아들의 아내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장기 기증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하고자 한 것이었다.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아이의 간이식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30년 만에 의식을 잃은 채 아들을 만난 어머니는 그 손자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고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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