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eaming Surgeon Jan 17. 2020

30년만에 나타난 엄마의 마지막 선물

아들은 엄마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30년만에 나타난 엄마는 중환자실에 의식도 없이 누운 채로 인공호흡기 박동에 맞추어 숨만 쉬고 있었다. 도대체 왜 30년만에 나타난 엄마는 아들을 찾아야만 했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엄마의 장기 기증을 위해 병원까지 오게 된 아들은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3살 때 가족을 떠난 엄마라는 사람이 왜 이제서야 내 앞에 나타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정은 알 수 없지만, 30년 전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세 살배기 아들을 남겨둔 채 일본으로 떠났다. 몇 해전 병약해져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마땅히 거처할 곳도 없고 돌봐 줄 사람도 없어 어느 산골의 기도원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것이다. 함께 지내던 사람들은 평소 고인이 장기 기증을 희망했다고 하였으나, 직계 가족의 동의 없이는 그 절차를 진행할 수 없었다. 관할 경찰서의 도움으로 호적상에 있는 아들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들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다.


엄마라고 불러본 기억도 없는 사람의 장기 기증에 동의를 해야 하는 것이 영 마뜩잖은 아들은, 의식도 없이 누워 있는 생면부지인 여자의 보호자로 나서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난감한 표정이었다. 어머니와의 만남에 대한 어떠한 감동도 없었고, 그저 이런 귀찮은 일에 소환되어 온 것이 못내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장기 기증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아들의 옆에서 조용히 전후 사정을 듣고 있던 아내가 적극적으로 장기기증을 하겠다며 남편의 등을 떠 밀다시피 동의서에 서명을 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장기기증이 이루어지면 다른 가족들이 장기 이식을 받을 때 유리한 점이 있느냐고 재차 묻는 것이었다.


그 아들에게는 4살짜리 아이가 있었는데, 태어나자 마자 진단된 선천성담도폐쇄로 수술을 받은 상태였고, 향후 간이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수술을 받은 아이들 중 많은 수는 결국 간이식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 당시에는, 가족 중에 장기기증을 한 사람이 있는 경우, 다른 가족이 장기이식을 받게 될 상황에 놓였을 때, 뇌사자 간장 선정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를 염두에 둔 아들의 아내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장기 기증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하고자 한 것이었다.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아이의 간이식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30년 만에 의식을 잃은 채 아들을 만난 어머니는 그 손자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고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Copyright(C) 2020 Dreaming Surgeon.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을 향해 가는 환자 되돌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