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eaming Surgeon Aug 18. 2020

어느 외과의사의 고민 (2)

쌀쌀맞을 것 같은 외과의사도 고민을 한다.

"수술만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환자인데, 수술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수술을 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자인데,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1편에 이어서...)


그렇게 환자를 떠나보내고, 나는 해답을 찾아야 했다.

앞으로 이러한 환자들은 간이식을 하지 말아야 할까?


그렇게 답을 찾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중에 얼마 지나지 않아 40대 남자 환자가 찾아왔다.

폐동맥 고혈압.

이미 수년 전에 간경화 진단을 받고 내 외래에 찾아왔던 환자였다. 당시에 간 기능은 많이 떨어져 있었으나 황달 외에 다른 증상이 없어서 우선 뇌사자 장기를 받기 위해 장기이식관리본부에 등록만 해 놓고 기다리던 환자였다. 그래도 더 악화되기 전에 간이식을 받자고 설득하였으나 본인의 사업이 바빠서 일단은 더 지켜보겠다고 했었다.


환자가 다시 내원했을 때는 그 전엔 없던 폐동맥 고혈압이 발생하였고, 간 기능도 더 악화되어 체중도 많이 빠지고, 복수도 차 있는 모습이었다. 간이식을 하자고 권유했던 내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스러운 눈치였다. 폐동맥 고혈압으로 숨이 차서 산소통을 차고 다녀야 할 정도였으며, 복수도 심해져서 거동도 불편한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마음이 급해져서 부인에게 간이식을 받기로 했다며 빨리 간이식을 해 주었으면 한다고 하였다.

몇 년 전만 해도 큰 무리 없이 간이식을 받을 수 있을 정도의 환자였는데....

이제는 간이식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나는 두려웠다. 다시금 간이식 후 환자를 잃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심장초음파의 결과는 그동안 내가 간이식을 했던 어떤 환자들의 결과보다 좋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 믿어요. 제가 잘 이겨낼 테니, 간이식 해 주세요."


환자에게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폐동맥 고혈압은 그렇게 무서운 병이라고....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설명하였다.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환자가 포기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진작 간이식을 받지 않은 환자가 원망스러웠다.


어쩌겠는가? 이것 또한 나와 환자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심장내과에서 새로운 신약으로 폐동맥 고혈압에 대한 임상시험을 하고 있었는데, 이 환자도 그 대상자로 등록이 되어있었다. 그래서인지, 환자의 폐동맥압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간이식을 진행해 보기로 하였다. 가족들도 적극적이어서 지방간이 있던 기증자 부인은 체중을 열심히 감량하여 짧은 시간 안에 목표치에 도달하였다.


다시금 수술 전 가족 면담.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매우 어려운 상황이고, 위험이 매우 큰 수술이라고. 그러나, 함께 짐을 나누어지자고.

그렇게 간이식은 진행이 되었고, 늘 그랬듯이 수술은 잘 진행이 되었다. 수술이 끝나고 3일 동안은 환자를 깨우지 않았다. 폐동맥압이 안정적으로 내려오고 산소포화도가 정상으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폐동맥압은 50-60mmHg로 높긴 했지만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산소포화도가 여간해서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중환자실 마취과 선생님들은 인공호흡기 떼기를 주저하였다.

이번엔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환자를 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러한 환자의 간이식 후 관리에 대해서는 교과서에도, 어떤 문헌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나는 모험을 해 보기로 했다.


"마취과 선생님, 그래도 환자를 한 번 깨워보고 싶습니다. 다시 기도 삽관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인공호흡기를 한 번 떼보고 싶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이미 이식 전에 저산소증에 적응해 있는 환자들이기에, 비록 혈중 산소 농도가 높지 않아도 환자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취과 선생님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환자를 깨워 보았다. 섬망 증상이 있어서 의식이 완전히 명료하지는 않았으나, 자발 호흡은 확인할 수 있었다.

 

"선생님, 일단 인공호흡기를 빼 봅시다."


다시 기도삽관을  준비를  놓고, 조심스럽게 환자의 기도에 있던 인공호흡관을 제거하였다. 환자의 숨이 다소 불안정하였으나, 크게 불편해하지 않고 협조가 되었다. 고농도의 산소를 공급하고 있음에도 혈액검사에서 산소 분압은 60-70 정도로 매우 낮았다. 그래도 환자는 조금씩 편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정도 산소 분압이라면 일반적인 사람은 숨이 차서 숨을 가쁘게 몰아쉬어야 하는데, 예상대로 저산소증에 적응되어 있는 환자라 그런지  불편함 없이 숨을 쉬고 있었다.


한 달 후, 환자는 부인의 부축을 받아가며 외래로 찾아왔다. 수술 후 근육이 다 약해져서 몸을 일으키기도 어려운 상태였는데, 이젠 지팡이를 잡고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선생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술만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환자인데, 수술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수술을 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환자인데,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이 환자는 위 두 문장에 모두 해당이 되었던 환자였다. 수술을 하기 좋았을 때엔, 본인이 원치 않아 수술을 할 수 없었고, 수술을 해도 살기 어려울 것 같은 위험한 상황에서야 수술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폐동맥 고혈압에 대한 아픈 상처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게 해 준 경험이었지만, 다시금 내게 동일한 상황이 온다면, 나는 역시 또 고민을 할 것이다.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수술 결정은 늘 외과의사에게 큰 부담이 된다.


"환자는 이 수술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간이식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말 한다면, 수술 후 환자의 회복에 대해서는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쉬운 결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 놓고 나면, 한동안 내가 위험 부담을 지고 수술을 해 드렸다면 혹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의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렇지만, 마지막 환자를 통해 겪은 그 감격으로 다시금 어려운 환자들의 수술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주사위의 숫자가 무엇이 나오든, 일단 주사위는 던져져야 한다.



Copyright(C) 2020 Dreaming Surgeon.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외과의사의 고민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