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식을 하다보면 다양한 환자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접하게 된다. 오늘 이야기는 그 중 아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던 남편의 간 기증 스토리이다.
대한민국에서 시행되는 모든 장기이식은 국가(국립장기이식관리본부)의 승인을 받아야만 진행이 가능하다. 과거 장기이식관련 법안이 없던 시절 횡행했던 불법 장기 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절차이다. 장기 기증의 순수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혈연지간이 아니고서는 그 승인 절차가 매우 까다로와 급하게 이식을 받아야 하는 급성 간부전 환자에서는 비혈연간 간이식의 진행이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다.
황달과 간성혼수로 인해 급하게 간이식을 서둘러야 하는 38세 여자환자였다. 남편이 간을 기꺼이 기증하기로 해서 응급으로 승인을 받기 위해 서류를 급하게 준비하던 중 문제가 발생하였다. 남편은 오래 전 사업 실패로 신용불량자였던 상태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가 1개월 전에 다시 주민등록을 갱신한 상태였고, 몇 년 전부터 동거하던 아내와 그제야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국립장기이식관리본부에서는 환자의 간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한 시점이 혼인신고 시점과 가까운 점을 들어 남편의 기증 순수성을 의심하고 신청 서류를 반려하였다. 간성혼수가 온 상태에서 간이식을 서둘러 진행하지 않으면, 뇌부종(뇌가 붓는 증상) 발생의 가능성이 높아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가족과 의료진들은 안타까운 상황에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둘의 동거 상태가 오래 전부터 지속되었고 실제로는 부부였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간 찍었던 사진들과 주변 친구들의 증언을 증빙 서류로 제출하여야만 했다. 이식센터 코디네이터들의 끈질긴 추적 작업과 노력으로, 결국 서류가 반려된지 이틀만에 응급으로 다시 승인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젊은 여자 환자가 간부전까지 이르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사연이 있었다. 부부는 평소에 술을 좋아하여 자주 늦은 밤까지 술을 즐겼다. 그렇지만 아내의 간이 걱정되었던 남편은 한의원에서 간에 좋다는 한약을 아내에게 지어주었다. 한약 복용 후 1개월쯤 되었을 무렵부터 황달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한의원에 문의를 하였으나, 명현 현상이라며 약을 더 복용하면 좋아질 것이라 하여, 보름정도 한약을 더 지어 먹다가 증상이 악화되어 응급실로 내원하게 된 것이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병도 주고 약(간)도 준 셈이다. 간이식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환자와 남편 모두 특별한 문제 없이 잘 회복되었다. 드디어 퇴원하는 날. 환자에게 이것 저것 설명하고 주의할 사항들을 알려주었다. 환자는 조용히 내 말을 듣다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 퇴원하고 간 관리를 잘해야겠죠?"
"네, 말씀 드린 대로만 관리하시면 큰 문제 없을 겁니다." 내가 대답했다.
"그런데, 간에 좋은 것이 뭐가 있나요? 상황버섯을 좀 다려 먹을까요?"
"절대 안됩니다. 간에 특별히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간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 간에 좋다고 드셨던 그것이 간이식까지 받게 만들었잖아요~"
그렇게 퇴원하고 큰 문제 없이 외래를 잘 다니던 환자. 언제나 남편과 함께 외래에 와서 밝은 표정으로 진료를 받고 갔었는데..... 간이식 후 2년 정도가 지났을 때 였다. 그 날은 왠일인지 남편은 오지 않고 환자의 언니가 동행을 하였다. 환자는 표정이 몹시 어두워 보였다. 이상하게도 그 날따라 간기능도 떨어져서 혈액검사 수치가 좋지 않게 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약은 잘 복용했는지 물었더니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과 이혼을 하였고 이후 너무 우울하고 외로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간의 원래 주인이었던 남편이 떠나서 였을까? 의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겠지만, 남편이 떠나고 나서 환자의 간기능도 같이 떨어진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이후, 환자는 다시 힘을 내고 마음도 회복하여 표정도 밝아지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였고, 나빠졌던 간기능도 잘 회복이 되었다.
병 주고 간도 준 남편은 떠나갔지만, 지나간 사랑의 증표만은 그녀의 몸속에 계속 남아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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