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준비하는 이른 아침.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각이라 샤워만 하고 서둘러 출발하였다.
나는 평소에 매일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큰 일을 치르는 배변습관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길러진 이 좋은 배변습관이 3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좋은 습관이 그날 사건의 원인이 될 줄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평소와 달리 아내가 출근길에 먹으라고 견과류 한 봉투를 주었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출근길에 심심한 입이라도 달랠 겸 운전 중에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브라질넛을 포함해 아몬드, 땅콩, 달달하게 말린 건포도까지…
문제는 한강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시작되었다.
“이런 오늘 급하게 나온다고 볼 일을 못 보았더니 속이 좀 안 좋네.”
아랫배가 조금씩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괄약근을 조절하여 아랫배에서 조금씩 가스를 빼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직은 참을만했다.
한강 다리를 건너고 남산터널을 통과하였다.
아늑하게 어둑한 터널을 통과하자니 마치 화장실 안으로 들어온 듯 느낀 나의 대장들이 요란하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얘들아 아직은 아니야~.'
아! 더는 참기 어려운데 어쩌지?
신세계백화점 앞 사거리 빨간불은 오늘따라 왜 이리 길게만 느껴지는가….
더 이상 가스 조절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에 다다랐다.
배는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고, 오금이 저리고, 긴장이 조금이라도 풀리는 순간이 오면 큰 사고가 곧 날 판이었다. 운전 중에?
아침 배변을 건너뛴 데다가 평소 아침을 먹지 않는데 오늘따라 견과류를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위-대장 반사가 활발한 나는 아침에 무언가를 먹으면 바로 화장실을 가야 한다.
응급이다. 초응급.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법.
두리번두리번 당장에라도 뛰어들만한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다. 출근길 도심 한복판에서 여유롭게 주차를 하고 뛰어들어갈 곳이 있을 리 만무하다.
좌절감이 밀려온다.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일단 끝까지 참아보자!’
‘안돼 아직 20분은 더 가야 하는데…’
‘일단 현상태로 사고가 터지면 병원 도착 후 어떻게 사태를 수습하지?’
'주차장 바로 위 화장실은 이 시간에 사람이 별로 없을 테니 그곳에서 처리를....'
이런 고민들을 하는 순간 차는 좁다란 소공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순간 눈앞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조선호텔로 가자.’
호텔 정문에 서있는 발레파킹 요원들이 나를 친절하게 맞이해 주셨다.
애써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발레파킹을 의뢰했다.
‘절대 급한 척하면 안 돼.’
마치 아침 회의 참석을 위해 온 듯한 표정으로 눈웃음 지으며 우아한 인사를 건네고, 부랴부랴 호텔 로비를 가로질러 화장실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은 엉거주춤한 내 걸음걸이를 보고 이내 눈치챘으리라…. 내 뒷모습을 보고 애써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없다.
화장실 변기에 안착하고 나서야 나는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어떤 힘든 응급수술이 끝났을 때보다도 큰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제야 살았어. 이런 위기를 이렇게 잘 극복하다니....'
거사를 치른 나는,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유유자적하게 차를 찾으러 갔다.
정문에서 거금 2만 원의 발렛비를 냈다.
‘이보다 값어치 있는 지출이 있을까?’라는 생각은 개뿔, ‘정말 비싼 교훈을 얻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식에게 돈보다 좋은 배변습관을 물려준다는 얘기를 중학교 시절 누군가로부터 들었다.
어릴 적 변비가 심했던 나는 그 이후로 매일 아침을 상쾌한 배변과 함께 시작하는 좋은 습관을 유지해 왔다.
좋은 습관은 하루라도 건너뛰면 안 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값비싸게 배운 하루였다.
2만 원짜리 유료화장실을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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