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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ing Surgeon Oct 01. 2020

엄마를 위해 동시에 수술대에  올라간 두 자매

어릴 적 두 자매는 마냥 행복했다.

비록 시골에 살았지만, 농사짓는 엄마와 아빠는 늘 딸들 옆에서 딸들을 바라보며 행복해했고, 딸들은 부족함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두 자매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엄마에게는 병이 생겼다. 늘 피곤하고, 아이들과 놀아줄 힘도 없는 듯 하루 종일 방에만 누워 지내기 시작했다. 작은 일에도 짜증을 잘 내고, 몸도 퉁퉁 붓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말기신부전'.

신장 기능이 너무 나빠져서 회복이 되지 않는 상태.

이젠 신장이 소변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몸에 있는 요독을 내보내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런 경우 할 수 있는 것은 혈액투석. 이미 망가져 쓸 수 없는 신장 대신 인공신장기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일주일에 3일을 병원 투석실 침대에 누워 4시간 동안 인공신장기에 본인의 피를 돌리는 혈액투석을 시작하였다.

하던 농사일도 쉽지 않고, 예쁜 두 딸을 돌보는 것 마저도 쉽지 않았다.


한참 예민할 사춘기 시절, 엄마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느라 정작 자신들의 힘듦을 얘기할 수도 없었다. 고3 수험생 시절을 보내는 동안도 엄마는 늘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아픈 엄마.

그러는 동안 두 자매는 훌쩍 자라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고, 엄마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만 갔다. 혈액투석을 하고 있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이제는 간기능도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엄마는 원래 만성 B형 간염을 앓고 있었고, 세월이 지나 이제는 간경변으로까지 진행하게 된 것이다. 얼굴빛이 노랗게 변하고 복수 때문에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였다. 증상은 더욱 악화되어 이제는 병원에 입원하는 일도 많아지고, 일상생활을 하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그러다, 장기이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간과 신장이 모두 좋지 않아, 가능하다면 두 개의 장기를 동시에 이식받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가 될 수 있습니다."

의사의 말에 두 자매는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큰 딸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작은 딸은 아직 미혼이었다.

엄마는 딸들의 장기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두 딸을 모두 자기 때문에 수술을 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딸들의 마음은 달랐다.

"우리가 간과 신장 하나씩을 드리면, 엄마는 회복될 수 있는 것이지요?"

"언니, 내가 간을 드릴게, 언니는 신장을 드리면 되겠다."

"얘, 너는 아직 시집도 안 갔으니, 흉터를 적게 남기는 것이 좋겠어. 내가 간을 드릴 테니, 너는 신장을 드리는게 좋겠어."

자매는 그 와중에도 서로를 아껴주는 모습이었다.

"일단, 어느 분이 어떤 장기를 드릴 수 있는지 우선 검사부터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두 딸은 기증자 검사를 시행하였다.

간의 크기와 모양을 보니, 큰 딸이 간을 기증하는 것이 좀 더 유리해 보였다.




엄마는 아직도 맘이 편치 않았다. 이렇게까지 해서 내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딸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간 아프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두 딸은 동시에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을 동시에 수술실로 보낸 아빠는 초조한 마음으로 긴 수술 시간 내내 수술실 밖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12시간의 긴 수술이 끝나고서야 담당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이식받은 신장에서 소변도 잘 나오고, 간 상태도 아주 좋습니다."

수술하고 3주쯤 지났을 때, 엄마는 두 딸의 손을 잡고 퇴원할 수 있었다.




한 가족의 엄마와 두 딸이 동시에 수술대에서 수술을 하게 되는 경우가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수술을 한지도 벌써 7년이 지났다.

얼마 전, 엄마는 내 외래를 다녀 갔다.

"선생님, 요즘엔 너무 힘들어요."

"아니 뭐가 그리 힘드세요. 농사일은 좀 살살 하시구요."

"아니요, 얼마 전까지는 큰 딸내미 손주 봐주느라 정신없었는데, 작년에 둘째 딸이 또 아들을 낳아서, 제가 봐줘야 해요."


딸들에게 빚진 마음이 있어서일까? 엄마는 딸들과 손주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다.

이미 뱃속에서부터 피를 나눈 엄마와 두 딸들이지만, 엄마의 몸속에는 딸들의 간과 신장이 다시 들어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었다.

엄마 때문에 세상에 태어난 두 딸, 그 두 딸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엄마.


7년이 지난 지금도 이 분이 외래에 올 때마다, 두 자매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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