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푸드인지, 킬링 푸드인지
감정이 떡이 됐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잡동사니 서랍에서 꺼내놓으니 눈물이 났다가 웃음이 났다가 한숨이 나왔다가 그야말로 떡이 됐다. 뒤죽박죽 섞인 감정과 상황을 정리하고 싶을 때 나는 떡볶이를 먹는다. 갑자기 떡볶이가 웬 말이냐고? 떡볶이 얘기를 하자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누구에게나 소울푸드는 하나씩 있을 거다. 나한테는 떡볶이랑 빵이 소울푸드다. 그런데 오늘처럼 감정이 떡이 되면, 나는 빵보다는 떡볶이를 먹는다. 매운걸 잘 못 먹어서 적당히 매콤하고 적당히 달콤하고 쫄깃한 떡볶이를 시킨다. 나는 방금 떡볶이를 주문했다. 왜 떡볶이일까?
내 감정을 쏟아낼 방법이 떡볶이뿐인 건가. 내 옆에는 신랑도 있고, 노트와 펜도 있고 노트북도 있고, 쏟아낼 방법은 아주 많지만 나는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배달앱을 켜고 떡볶이를 주문하는 방법을 골랐다.
내 감정에 충분히 빠져서 표현하지 못할 때 나는 먹는 일은 선택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웃게 되니까. 내 감정은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지만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는 일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나는 감정을 들여다보기를 포기하고 먹는 일을 선택했다.
매운걸 잘 못 먹지만 내가 먹을 수 있는 매콤함보다 한 단계 높은 매운맛을 고르는 까닭은 뭘까?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매운맛을 즐긴다고 한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닌 통각인데,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는 얘기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몸은 고통을 느낀다고 판단하고,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이 많아진다. 캡사이신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되는 원리다. 그런데 진짜 먹는다고 스트레스가 해소될까?
묵은 감정은 언제고 다시 터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배달 앱을 켜고 매운 치킨, 매운 떡볶이를 시켰던 건 아닌지,,
오늘은 가까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울다가 웃다가.. 오래 묵혀둔 이야기 속에서 여러 감정이 올라왔다. 그럴 때 충분히 느꼈다면 좋았을 텐데.. 잠시 건드려진 감정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마음과 머리에 남아서 맴돈다. 가끔은 감정을 처리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냥 자고 싶을 때도 있고 말이다. 오늘은 잠도 안 오고, 감정은 떡이 되고, 그래서 나는 떡볶이를 시켰다. 얼큰한 떡볶이에 콧물을 훌쩍이며 '아 매워' '아 맛있어' 하면서 내 감각을 쏟아 놓는다. 그러고 나서 통증을 느낀 혀에게 사과라도 하듯,,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를 한다.
그런 거 느껴본 일 있는지 모르겠다. 맛있게 다 먹은 뒤, 배달음식 포장용기를 치우는 일이 짜증 나는 경험.. 심지어 배불러서 짜증이 날 때도 있다. 나는 꽤 자주 그렇다.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다시 짜증이 나듯이,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감정을 많이 쓴 날, 나는 뭘 하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맵부심(매운거 잘 먹는 자부심)으로 매운 걸 먹으면서 풀어내는지 맵찔이(매운거 못 먹는 찌질이)인 나처럼 눈물 콧물 쏟아내며 매운 음식으로 허한 마음을 달래고 있지는 않은지.
진짜 아픈 건 마음인데, 혀가 느끼는 고통으로 내 마음 아픈 걸 들여다볼 기회조차 스스로 허락하지 않는 건지 말이다.
오늘은 내 마음속에서 슬퍼하는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가 실컷 울 수 있게 내버려 뒀어야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동안 힘들었구나. 한마디 건네고 함께 울었으면 될 걸. 그러지를 못해서 나는 떡볶이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