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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Oct 20. 2024

고요한 바다에 비는 내리고

도시 스케치_삼척

추석연휴 일주일 전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여러 가지 기억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맛집을 잘 아는 친구였다. 그냥 아는 식당이 아니라 항상 주변에서 제일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던 친구였다. 가을 날씨가 제법 쌀쌀하던 때에 같이 골프 치고 막국수집에 들러서 막국수에 편육을 먹었다. 그 집에 몇 번을 같이 간 것 같은데 모든 계절이 왜 가을로 기억되는지. 그 친구와 헤어지고 해가 완전히 저물었던 가을밤에 집으로 오던 깜깜하고 차갑던 길이 자꾸만 생각났다. 마음이 따뜻한 친구였다.   


전날은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자는 걸 좋아했는데 어제는 참 귀찮은 소음으로 들렸다. 다행히 아침에 날은 개어있었다. 아직도 단풍은 들지 않았고 날은 잔뜩 구름이 끼어서 환하지 않았다. 지도를 찍으니 내가 가려는 곳은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었다. 나는 최종 목적지를 가기 전에 바다를 보고 싶었다. 


삼척에는 유명한 항구가 많다. 항구 이름을 보다 보니 익숙하고 유명한 항구는 내가 한번 가보고 그저 그렇다는 인상만 가진 항구들이다. 삼척뿐 아니라 어느 바다를 가던 유명한 항구가 있는 바다와 그 주변은 대부분 인공적이거나 상업적으로 많은 게 덕지덕지 난개발이 되어있다. 나는 자연스럽지 않은 도시는 좋아하지 않는다. 왜 여름 한철만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가보면 안다. 


유명한 항구 밑에 처음 들어보는 안 유명한 항구를 목적지로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여기라면 그래도 한가하고 덜 인공적인 항구 주변 동네를 둘러볼 수 있겠지 생각했다. 가면서 도로 옆으로 가끔씩 바다가 보였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잔잔하고 평화롭고 그 위에 구름은 만지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워 보였다. 


내 예상이 틀린 건지 항구로 가는 길은 큰 간판으로 안내표지가 곳곳에 있었다. 전설의 고향에 나온 마을이라는 곳도 있다. 왠지 이 동네가 무서워 보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운전을 하는데 항구 표지판이 나온다. 설마 하는데 정말 급격하게 우회전을 거의 180도 해서 언덕 아래로 십 미터쯤 들어갔다. 마주 오는 차가 없는 게 다행이다. 그리고 작은 골목길로 좌회전을 했다. 슬래브지붕 집들 사이를 두 블록쯤 지나 항구에 도착했다. 오는 길은 좁지만 항구의 주차장은 넓었다. 아니 텅 비어있었다.


양쪽으로 방파제와 등대가 있고 항구는 가운데 있다. 방파제에 낚시하는 사람이 하나 둘 보인다. 그 외에는 조용하다. 나는 조용히 방파제를 걸었다. 십 분도 안 걸린다. 다시 해변 쪽으로 와서 방파제의 왼쪽으로 이어진 해변에 서서 파도를 봤다. 


해변은 작다.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파도는 잔잔하고 물은 너무나 맑다. 휴가철이 지나서 인지 민박이나 펜션 간판들이 수명을 다한 듯 힘없고 쓸쓸해 보였다. 텅 비어 있는 모래사장을 그리고 그 위로 잔잔히 일렁이며 다가오는 파도를 봤다. 파도가 하얗게 거품을 만들고 조용히 사라진다. 고요한 바닷가에서 나는 더 바랄 게 없었다. 비가 다시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뜨거웠던 여름이 정말 다 지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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