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초콜릿 케이크, 남은 거 있잖아? 그거 간식으로 주면 되겠네. 점심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고 오니까 남편이랑 둘이 매운 걸 먹을까? 혹은 비계가 들어간 건 너무 싫어하니까 아무래도 그건 어른이 먹지 뭐. 하루 세 번 식사를 하는데 왜 여섯 끼를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까. 홈오피스를 하는 남편이 아무리 다이어트를 한다고는 하지만, 점심도 은근히 차려내야 하는 느낌이다. 얼마 전, 조깅 메이트에게 나 오전에도 남편 토스트 내가 만들어, 하는 말에 너무나 놀라 눈이 빠질 것 같던 친구의 표정이 식사 준비 때마다 떠오른다.
혼자 살지 않는다는 말은 책임감에 관해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다. 내가 이끄는 사람들이 셋이라서 내가 건강해야 한다. 내가 멀쩡해야 하루가 멀쩡하다. 하루가 멀쩡하면 나의 사람들도 다행히 모난 데 없이 즐거워 보인다. 이런 하루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는 것. 그래서 무엇을 해 먹어야 하고 어떤 요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아무거나 먹는 메뉴 고민이 아닌, 어떻게 하루를 보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오늘 뭐 먹지? 생각하는 것, 그리고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은 절대로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엄마가 되자마자 나는 작은 어른이 되었다. 배우지도, 연습하지도 않았는데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아기에게 “엄마가 해줄게.”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했다. 이름을 불러줘야 진짜 정체성을 갖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면 나도 조금은 늦게 ‘책임 있는 엄마’가 되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정확한 발음으로 엄마라고 나를 불렀을 때부터 아무래도. 결국 앞서가던 나의 생각이 나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게다가 여기에 스스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일련의 책임감은 나를 더 책임 있게 만들었다.
결국 남편은 요리를 영영 못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아이들은 엄마에 대해 덜 독립적이며, 나는 몸이 쉽게 피곤해지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도 난 오늘 뭐 먹을까? 를 시작으로 하나부터 열 까지 내가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을 나열한다. 자, 이제 가장 먼저 커피 원두, 치실, 비타민, 냉동 만두를 사러 나가볼까?
커피는 잠깐의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