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 홀 그린. 볼은 그린 위에서 홀 쪽으로 흘렀다. 60센티미터 남은 거리였다. 공 앞에선 최 부장은 볼과의 거리를 다시 쟀다. 그는 고개를 까딱거렸다. 최 부장의 눈동자가 퍼팅라인 위에서 흔들렸다.
“최 부장, 그거 오케이!”
최 부장은 멈칫거리다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가가 양쪽으로 펴졌다. 그는 얼른 공을 집어 들었다. 선심을 받으면 넣지 않고 다음 홀로 간다. 동반자끼리의 말 하지 않는 거래다. 오케이(Concede). 공식 경기에는 없는, 먼저 건네는 호의다. 동반자가 아무런 요구 없이 내어주지만, 그 따듯한 손길 위에서 만들어 놓은 포석이다.
다음은 이 전무의 차례였다. 그의 공은 홀에서 1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이 전무는 쪼그려 앉아 높낮이를 여러 번 확인했다.
“전무님도 오케이 드릴까요?” 김 사장이 물었다. 순간 이 전무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는 “아니요, 이건 제가 쳐볼게요” 하고 퍼팅에 들어갔다.
공은 의도한 방향대로 흘러 들어갔다. 그는 ‘그렇지’라며 공을 집어 들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 전무는 왜 오케이를 거절했을까?
1미터 퍼팅은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받아들였다면 편했을 텐데.
그는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오케이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너는 이 퍼팅에 실패할 수도 있으니 그냥 넣은 걸로 해주마’라는 의미가 있다. 이 전무는 도움인데, 고마움보다 부담 거리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기가 직접 넣음으로써, 거뜬히 해낸다는 무언의 흔적이었다.
박 이사는 홀에서 30센티미터. 거의 붙었다. 아무도 오케이를 주지 않아도 당연히 들어갈 거리. 그런데 김 사장이 말했다.
“이사님, 오케이입니다.”
박 이사는 고개만 끄덕이고 공을 집어 들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웃지 않았다.
그의 고개가 조금 올라갔다. 오케이를 주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내가 너의 공을 넣은 것으로 인정해 주마.” 이 한마디에는 은근한 우위가 담겨 있다. 하지만 박 이사는 호의처럼 보이지만, 마음의 빚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오케이를 받는 것도, 직접 치는 것도, 그에게는 아무 상관 없었다.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에게 오케이는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몸짓일 뿐이었다.
마지막은 김 사장 자신이었다. 그의 공은 홀컵에서 1.3미터. 오케이를 주기에는 애매하고, 안 주기에는 좀 그런 거리였다.
“사장님, 오케이 드릴까요?” 이 전무가 물었다.
김 사장은 순간 말이 없었다. 이 퍼팅을 직접 친다는 것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오케이를 받는다는 것은···· 이 전무에게 빚을 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니, 괜찮아요. 제가 칠게요.”
김 사장은 퍼팅에 들어갔다. 공은 홀을 10센티미터 정도 지나쳤다.
실패. 다시 돌아와서 넣었다. 결국 투 퍼트.
“아, 받아들일 걸 그랬네.” 김 사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김 사장은 받을 줄 알았다. 그는 왜 오케이를 거절했을까? 자존심을 지키려다 실력까지 드러냈다.
오케이는 사람의 관계를 바꾼다. 겉으로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가늠하는 신호였다.
누가 먼저 오케이를 주는가. 누가 오케이를 받는가. 누가 오케이를 거절하는가.
그 순간마다 편한 사람이 달라진다.
오케이를 주는 사람은 여유 있게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다는 말은 짧지만, 분위기는 달라진다. 받는 사람은 잠깐 멈춘다. 웃으며 받기도 하고, 고개를 저으며 다시 퍼팅한다.
그 순간, 둘 사이의 공기가 달라진다.
최 부장은 웃으며 공을 집어 들었다. 이 전무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퍼팅 자세를 잡았다.
박 이사는 이미 다음 홀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 사장은 퍼터를 한 번 더 정리했다.
7번 홀 그린에서 동반자들의 시선이 잠시 엇갈렸다.
김 사장과 이 전무의 공이 모두 홀에서 60센티미터 정도에 있었다. 거의 비슷한 거리.
“자, 둘 다 오케이죠!” 최 부장이 여유 있게 말했다.
김 사장은 즉시 공을 집어 들었다.
이 전무는 움직이지 않았다. “저는 한 번 쳐보겠습니다.”
조용한 긴장이 흘렀다. 김 사장은 이미 공을 집어든 상태였다. 이 전무가 혼자 퍼팅
자세를 잡았다.
김 사장은 짧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 전무의 공은 깔끔하게 홀에 들어갔다.
박수. 환호.
김 사장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같은 거리였다.
한 사람은 공을 집어 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끝까지 퍼터를 잡았다.
그 순간, 걸음을 옮기는 사람과 홀컵을 다시 바라보는 사람이 나뉘었다.
12홀에서는 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김 사장의 공이 홀에서 2미터, 이 전무의 공이 70센티미터.
“전무님 오케이죠.” 김 사장이 말했다.
이 전무는 고개를 끄덕이고 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김 사장은 자신의 2미터 퍼팅을 준비했다.
라인을 읽고, 연습 스윙을 세 번 했다. 공은···· 50센티미터를 남겼다.
“사장님 오케이!”
이 전무가 즉시 말했다. 김 사장은 공을 집어 들었다. 같은 두 퍼트였다. 하지만 그린 위의 공기가 달랐다. 이 전무는 바로 다음 홀로 걸음을 옮겼고, 김 사장은 잠시 퍼터를 내려다봤다.
라운드가 끝나갈 무렵, 나는 오케이에 대해 하나를 알게 됐다.
오케이는 관용이 아니다. 거래다.
내가 너에게 오케이를 주니, 너도 나에게 오케이를 줘라. 그린 위에서는 이런 흐름이 만들어진다. 어려운 퍼팅에서 오케이를 받으면, 다음에는 나도 비슷한 상황에서 오케이를 건넨다.
먼저 준 사람이 있고, 나중에 받는 사람이 생긴다. 하지만 이 흐름은 늘 같지 않았다.
누군가는 긴 퍼팅을 오케이 받고, 누군가는 짧은 퍼팅도 직접 쳐야 했다.
누군가는 자주 오케이를 주고, 누군가는 자주 오케이를 받았다.
그린 위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박 이사는 오케이를 주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받으면 받는 대로, 안 받으면 안 받는 대로. 오케이를 받아도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고, 직접 쳐도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에게 오케이는 하나의 선택일 뿐이었다.
왜일까.
오케이를 받아도 그는 담담했고, 직접 퍼팅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누가 먼저였는지도, 누가 받았는지도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그는 자기 골프를 하고 있었다.
18홀 마지막 그린. 네 사람의 공이 모두 홀 주변에 모였다.
김 사장 80센티, 이 전무 1미터, 최 부장 50센티, 박 이사 40센티.
“자, 다들 오케이죠! 마지막 홀이니 편하게 마무리합시다.” 김 사장이 말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공을 집어 들었다. 마지막 홀의 오케이. 아무도 퍼터를 잡지 않았다. 누구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네 사람은 함께 그린을 걸어 나왔다.
클럽하우스로 돌아오는 카트 안에서, 그날의 장면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오케이라는 작은 말 하나에, 이토록 많은 마음이 담겨 있다니.
누군가는 먼저 오케이를 건네고, 누군가는 끝까지 퍼터를 잡는다.
누군가는 웃으며 공을 집어 들고, 누군가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골프는 거짓말을 하기 어려운 게임이다.
오케이 하나에도, 그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케이는 배려처럼 들린다. “괜찮아, 그냥 넣은 걸로 해.”
하지만 그 말속에는 누가 먼저였는지, 누가 받았는지, 누가 거절했는지가 함께 남는다.
그리고 캐디는, 그 모든 순간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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