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카트 안의 밀실:캐디가 백미러로 본 것
5시간 동안 펼쳐지는 권력의 서열 정리
아무도 자리를 정하지 않았다. 김 사장이 먼저 조수석으로 걸어갔다. 배가 나와 뒤뚱거리며 살짝 뒤로 젖힌 채. 나머지 세 사람은 뒷좌석 쪽으로 흘러갔다. 말이 없었다. 눈빛 교환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됐다.
이 전무가 뒷좌석 왼쪽으로 들어갔다. 박 이사가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최 부장이 오른쪽 끝에 끼어들었다. 세 사람이 어깨를 맞댔다. 그들은 비슷해 보였다. 볼이 어정쩡하게 올라가고 입꼬리는 어중간했다. 아무도 ‘내가 가운데 앉겠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백미러를 봤다. 뒷자리 출발은 늘 어둡다. 세 사람의 어깨가 겹쳐 계단처럼 보였다.
카트가 출발했다. 김 사장은 페어웨이 쪽을 바라봤다. 시선이 움직이지 않았다. 말이 없었다. 오른손이 손잡이를 잡았다 놓았다 다시 잡았다.
뒷좌석에서 이 전무가 스마트폰을 꺼내려다 팔꿈치가 박 이사 어깨에 걸렸다. 그냥 넣었다. 박 이사는 눈을 감았다. 뒤로 기대지도 않았다. 최 부장은 산 쪽을 봤다. 입술이 한 번 달싹였다가 닫혔다.
2번 홀을 지날 때쯤, 김 사장이 내게 물었다. “오늘 바람은 어때요?” 나는 오른쪽에서 약하게 분다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페어웨이를 봤다. 뒷좌석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최 부장은 멀리 보는 척하며 어깨를 풀고 있었다.
김 사장이 5번 홀에서 드라이브를 쳤다. 공은 오른쪽으로 휘어진다. 그 순간 최 부장이 손을 안쪽으로 휘젓는다. 그래도 공은 숲으로 사라진다. 그는 클럽을 백에 꽂았다. 천천히, 소리 없이. 걸음이 짧아졌다. 골프화 앞코가 잔디를 스쳤다. 카트에 오르면서 아무도 보지 않았다. 손잡이를 한 번 쥐었다가, 놓았다.
6번 홀 티잉그라운드로 향하는 카트. 김 사장이 조수석에 앉으면서 뒤를 돌았다.
“이사님, 앞에 좀 앉으시죠. 뒤가 불편하시겠어요.”
박 이사가 김 사장을 봤다. 눈동자가 움직였다. 잠깐이었다.
“괜찮습니다. 편합니다.”
김 사장은 다시 앞을 봤다. 박 이사는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최 부장이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트가 출발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김 사장의 오른손이 다시 손잡이를 잡았다.
점심을 마치고 10번 홀 카트 앞에 섰다. 김 사장이 뒷좌석 쪽으로 걸어갔다.
“이 전무님, 앞에 앉아요. 내가 뒤에 앉을게요.”
이 전무가 김 사장을 봤다. 뒷좌석의 최 부장과 박 이사를 봤다. 그리고 조수석 쪽으로 걸어갔다. 다리는 바닥에 붙어 끌고 가는 듯 보였다. 엉덩이를 힘겹게 카트로 밀어 넣었다. 김 사장이 가운데 자리에 끼어들었다. 턱이 안쪽으로 향하고 입술은 양쪽으로 퍼졌다. 최 부장이 왼쪽으로 붙었다. 박 이사가 오른쪽 끝에 앉았다.
카트가 출발했다. 이 전무가 앞을 봤다. 양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코스 쪽으로 시선을 보내며 나에게 물었다.
“캐디님, 바람은요?”
“왼쪽에서 조금 붑니다.”
이 전무가 뒤를 돌아봤다. “사장님, 들으셨죠? 왼쪽 조금 더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 사장이 “응”하고 짧게 받았다. 이 전무는 다시 앞을 봤다.
뒷좌석 가운데에 앉은 김 사장은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팔꿈치가 양옆 사람에게 닿지 않으려 몸을 약간 앞으로 숙였다. 시선이 트이지 않았다. 조수석에서는 코스 전체가 보였는데, 지금은 이 전무의 등이 앞을 채웠다.
14번 홀로 이동할 때였다. 백미러에 김 사장이 들어왔다. 두 손이 무릎 위에 있었다. 어깨가 안쪽으로 말려 있었다. 최 부장이 목덜미를 끄적이며 말을 걸었다.
“사장님, 불편하시죠? 제가 가운데로 갈게요?”
김 사장이 손을 짧게 내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박 이사는 오른쪽 끝에서 페어웨이 쪽을 보고 있었다. 팔짱을 끼지도 않았고, 기대지도 않았다. 손을 툭 바지 앞에 놓았다.
16번 홀. 카트가 멈추기 전에 김 사장이 목과 입을 쭉 빼며 말했다.
“이 전무, 우리 다시 바꾸자.”
이 전무가 카트에서 내려 뒷좌석으로 들어갔다. 김 사장이 조수석에 앉았다. 손으로 배를 어루만졌다. 카트가 출발했다. 앞을 봤다.
클럽하우스 앞에 카트를 세웠다. 네 사람이 내렸다. 김 사장이 조수석에서 먼저 내렸다. 이 전무, 최 부장, 박 이사 순으로 뒷좌석에서 나왔다. 박 이사가 내리면서 바지 무릎을 한 번 털었다. 짧은 다리로 성큼성큼 클럽하우스 쪽으로 먼저 걸어갔다.
나는 카트를 정리하면서 뒷좌석을 봤다. 가운데 시트가 양쪽보다 조금 더 눌려 있었다. 두 사람이 거쳐 간 자리였다.
뒤돌아가는 그들에게 인사했다. 옷 주름이 구겨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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