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는 알고 있다. 레슨이 실력과 무관한 이유

by 김정락

1번 홀 티잉그라운드. 오 대표가 드라이버를 꺼냈다. 클럽을 세우고 그립을 쥐었다.

윤 부장은 오 대표의 오른손등에서 선명한 힘줄을 봤다. 강 과장도 봤다. 한 팀장도 봤다.

오 대표의 드라이버가 페어웨이 중앙에 안착했다. 220야드.

윤 부장의 턱이 살짝 내려갔다.


골프장에 처음 나온 사이는 없었다. 오 대표, 윤 부장, 강 과장, 한 팀장.

그들은 서로 얼굴만 알지, 스윙은 모른다. 숫자는 사람을 말하게 하지 않는다. 18홀 동안 네 사람 사이에 공기는 달라진다.


3번 홀. 강 과장의 아이언이 크게 왼쪽으로 꺾였다. 공이 러프 깊이 꽂혔다. 강 과장이 드라이버를 땅바닥으로 내렸다. 헤드가 잔디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윤 부장이 팔짱을 풀고 몸을 강 과장 쪽으로 틀었다. 멈추지 않고 말했다.


“그립이 너무 강한 거 아닌가요. 훅이 났다는 건 임팩트 때 페이스가 닫힌 거예요.

그립 좀 약하게 잡아보시고, 어드레스 때 발 방향도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강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해볼게요.”


나는 카트 쪽으로 반 발짝 물러서며 입을 다물었다.

훅의 원인은 그립이 아니었다. 강 과장은 백스윙에서 오른쪽 팔꿈치가 몸에서 벌어졌고,

그 탓에 다운스윙 경로가 바깥에서 안쪽으로 틀어졌다. 클럽 페이스가 닫히기 전에 궤도가 먼저 무너졌다. 다음 홀에서 윤 부장은 강 과장의 달라진 그립을 봤다. 하지만 공의 휨은 달라지지 않았다.


4번 홀 그린. 한 팀장의 퍼팅이 홀을 1미터 지나쳤다. 그는 라인을 다시 읽으려 몸을 낮췄다.

그 순간 오 대표가 걸어왔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 서서 말했다.


“이 그린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울었어요. 처음 오신 분들은 모르시는데, 여기는 항상 왼쪽이에요.”

한 팀장이 일어섰다. 고개를 돌리며 캐디를 봤다.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퍼터를 왼쪽으로 겨냥했다. 공이 더 크게 흘렀다. 스리 퍼트.

“제가 힘 조절을 못 했나 봐요.”


그는 퍼터를 카트에 기대듯 내려놓았다. 캐디를 향해 입술만 움직였다. ‘왼쪽’


이 그린의 경사는 왼쪽에서 오른쪽이다. 내가 매일 서는 그린이다. 공이 홀을 지나치며 한 팀장은 경사를 확신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눈 대신 오 대표의 목소리를 골랐다.

오 대표는 결과를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뒤로 농담을 먼저 꺼내는 일은 없었다.


6번 홀 티잉그라운드. 윤 부장의 드라이버가 페어웨이 한복판으로 뻗었다. 230야드.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확인하며 그가 강 과장 쪽을 돌아봤다.


“봤어요! 힘을 부들부들 해야 나처럼 멀리 가요. 억지로 치려 하면 안 돼요.”


강 과장이 어드레스를 잡았다. 어깨를 한 번 내리고, 그립을 살짝 느슨하게 쥐었다.

스윙이 평소보다 느렸다. 공은 왼쪽 벙커로 들어갔다.


윤 부장이 혀를 찼다. “이번엔 너무 힘을 뺐네요.”


강 과장의 입꼬리가 내려갔다가 곧 올라왔다. 그는 성큼성큼 벙커 쪽으로 걸었다.

윤 부장이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는 ‘크~흠’ 목에서 긁는 소리를 냈다.


가르치는 사람은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다. 캐디는 알고 있다. 잘 친 샷이 나오면 윤 부장은 조금 전 말 하나를 다시 꺼냈다. 다른 말들은 잔디 위에 대기한다. 그의 말은 홀을 옮겨도 이어진다.


9번 홀 그린 앞. 강 과장이 어프로치 거리를 재더니 내게 눈을 보냈다.


“캐디님, 여기서 어떤 클럽이요?”

“핀까지 25미터입니다. 그린이 내리막이라 58도 웨지로 띄우시는 게 낫습니다.”


강 과장이 캐디백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윤 부장이 끼어들었다.


“아니, 거기서 웨지는 위험해요. 내리막인데 퍼터로 굴리는 게 훨씬 나아요.”


강 과장의 손이 멈췄다. 시선이 나한테서 윤 부장에게로, 다시 나에게로 움직였다.

나는 웨지를 들고 강 과장에게 “웨지가 더 안전합니다.”라고 속삭였다.


강 과장이 웨지를 내려놓고 퍼터를 꺼냈다. 퍼팅이 경사를 타고 왼쪽으로 크게 흘렀다.

그런 언저리에 멈췄다.


"속도가 애매했네." 윤 부장이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나는 스코어카드에 연필로 끄적였다. 숫자를 적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여기서 맞는 말보다, 먼저 말한 사람이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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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번 홀. 윤 부장의 드라이버가 두 번 연속 오른쪽 숲으로 사라졌다.

두 번째 공이 나무 사이로 꺾이는 것을 보며 그가 클럽페이스를 뚫어지게 보았다.

어깨가 내려앉았다. 처음으로 말이 없었다.

강 과장이 사뿐 다가갔다. “부장님, 어깨가 좀 일찍 열리는 것 같지 않으세요?”


윤 부장이 고개를 들었다. 강 과장을 봤다. 3초쯤 지났다.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가요. 한번 해볼게요.”


그 웃음을 나는 안다. 입이 올라가는데 눈이 따라오지 않는 표정.

오래 이 일을 하면서 수없이 봐온 얼굴이다. 윤 부장은 그 이후 두 홀 동안 입을 닫았다.

강 과장에게도, 오 대표에게도, 한 팀장에게도.


17번 홀. 윤 부장의 7번 아이언이 핀 1미터 옆에 꽂혔다.

공이 멈추는 순간,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어깨는 올라왔다. 고개를 돌려 강 과장을 봤다.


“자. 이렇게 치는 거예요. 보셨죠?”

강 과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클럽하우스 앞. 라운드가 끝났다. 네 사람이 악수했다.

강 과장은 살짝 웃으며 윤 부장에게 말했다.

“부장님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저도 어깨 열리지 않게 조심해야겠어요.”


윤 부장이 그의 등을 두드렸다. “그래요, 다음엔 더 잘 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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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트에 백을 실었다. 강 과장의 볼은 18홀 내내 밀리고, 빠지고, 들어갔다.

윤 부장의 말은 한 번도 그의 볼을 바꾸지 못했다.

강 과장은 고개를 숙였고, 윤 부장은 웃는 입가를 손으로 만졌다.


레슨은 골프를 가르치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필드에서는, 먼저 말하겠다는 뜻일 때가 더 많다. 누가 먼저 방향을 말하고, 누가 먼저 클럽을 권하고, 누가 먼저 라인을 짚는지.

그 순간, 그날의 자리가 조용히 정해진다.


잘 치는 사람이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못 치는 사람이 배우는 것도 아니었다.

먼저 가르치는 사람이 위에 서고, 고개를 끄덕인 사람이 아래에 선다.

오 대표가 먼저 라인을 말했다. 한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홀에서도 오 대표가 먼저 말했다. 그다음 홀에서도 오 대표가 먼저 그린을 훑어봤다.

어느 순간부터 한 팀장은 그린을 오래 보지 않았다. 오 대표가 말을 꺼내면 그때 고개를 끄덕였다.


윤 부장이 라인을 짚었다. 강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퍼트는 홀을 비켜 갔다.

윤 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보다 덜 휘네요.” 강 과장이 공을 집어 들며 말했다.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그들에게 허리 굽혀 “오늘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 골프는 말로 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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