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인정하지 못하는 나르시즘
정 이사는 샷을 치기 전에 항상 주변을 한 번 훑는다.
나무 위치, 바람의 방향, 그린의 기울기, 동반자의 시선.
그 순서가 빠르고 익숙해서 처음 보는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나는 안다.
오늘 조는 정 이사, 류 대표, 서 상무, 백 본부장.
골프 경력은 비슷하고, 나이는 50대 전후다.
처음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자주 치는 사이도 아니었다.
첫 홀 준비를 위해 다른 방향으로 보며 몸을 풀고 있었다.
4번 홀. 정 이사의 아이언 샷이 오른쪽 깊은 러프로 빠졌다.
클럽이 땅에 닿는 소리가 둔탁했다.
그는 클럽 페이스를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바람이 갑자기 바뀌었네.”
바람은 1번 홀부터 지금까지 일정하게 왼쪽에서 불어왔다.
나는 안 보이게 슬쩍 손짓을 했다. 왼쪽으로.
5번 홀. 페어웨이 한가운데 좋은 라이였다. 거리도 충분했고, 맞바람도 없었다.
정 이사는 7번 아이언을 꺼냈다.
스윙은 크게 비틀렸고, 공은 짧게 왼쪽으로 꺾여 내려앉았다.
그는 공이 떨어진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가, 발 아래 잔디를 손으로 헤쳤다.
“여기 잔디가 결이 이상했어. 스탠스가 미끄러졌다고.”
류 대표가 뒤에서 조용히 자신의 클럽을 골랐다. 그는 정 이사 쪽을 보지 않았다.
7번 파3홀. 정 이사의 하이브리드가 오른쪽 카트 도로 경계 쪽으로 날아갔다.
카트를 세우고 공을 찾으러 걸어가는 동안, 그의 눈이 잠깐 나를 향했다.
“캐디, 거리 맞게 불러줬어? 아까부터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는 정확히 178미터라고 불렀다. 핀까지의 거리도, 앞 벙커 거리도 짚었다.
나는 입을 닫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사님.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수백 번의 그린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이 말은 사실과 상관없다는 것을.
류 대표는 달랐다. 8번 홀에서 그의 어프로치가 그린 앞 벙커에 빠졌다.
동반자들은 각자의 공을 찾아갔다. 류 대표 눈 한쪽이 찡그러졌다.
벙커 쪽으로 걸어가면서 그는 중얼댔다.
“좀 더 띄웠어야 했는데.”
공이 벙커에 들어갔다. 그는 잠깐 멈춰 섰다. 클럽을 바꿔 들고 모래를 쳤다.
공이 그린 위에 떨어졌다. 그는 벙커를 고르고 올라왔다. 다음 샷을 준비했다.
나는 두 사람을 오가며 카트를 몰았다.
왜 어떤 사람은 실패를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끝없이 이유를 찾는 걸까?
정 이사가 퍼팅 라인을 두 번 읽었다. 더 보지 않고 바로 퍼팅을 했다.
공은 홀 앞에서 오른쪽으로 빠졌다. 그린을 내려오면서 정 이사가 말했다.
“그린이 물을 먹었나 봐. 속도가 완전 달랐어.”
서 상무가 정 이사를 바라봤다. “맞아요, 저도 오늘 그린이 이상하다 싶었어요.”
퍼터 쥔 손을 멈추고 백 본부장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카트를 세우고 그린을 훑어봤다. 그린 가장자리를 지나며 발끝으로 잔디를 눌렀다.
홀 뒤를 돌아 나왔다. 그린은 오늘도 변한 게 없었다.
점심을 마친 후 13번 홀부터 정 이사는 세 번 연속 페어웨이를 지켰다.
카트 안에서 목소리가 커졌고, 동반자들에게 스윙 이야기를 꺼냈다.
“역시 힘을 좀 빼야 해. 오전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그랬나 봐.”
서 상무는 얼굴을 돌리며 찌푸렸다. 백 본부장은 귀가 가려운 듯 긁었다.
16번 홀. 정 이사가 잡은 클럽을 바꾸며 나에게 물었다.
“여기서 6번이야, 7번이야?”
“핀까지 162미터입니다. 6번 아이언이 맞습니다.”
그는 6번을 꺼냈다가 다시 내려놓고 5번을 잡았다. 공은 그린을 넘어 뒤쪽 러프에 떨어졌다.
“6번을 쳤어야 했나 봐.”
나는 고개만 숙였다.
18번 홀을 마치고 클럽하우스 앞에 섰다. 정 이사는 자신의 스코어를 확인하더니 류 대표에게 말했다.
“오늘 코스가 좀 까다로웠죠. 이 코스 그린이 원래 이렇게 빠른 편은 아닌데.”
류 대표가 가방에서 장갑을 벗으며 답했다.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제가 오늘 그린 리딩이 좀 엉켰어요.”
정 이사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스코어 카드로 내려갔다.
나는 카트에 가방을 실으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봤다.
류 대표는 맞으면 맞은 것이고, 빗나가면 빗나간 것이었다.
그들은 샷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이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어쩌면 두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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