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씨가 주차장에서 고 선생의 등을 쳤고, 최 씨는 새 드라이버를 꺼내 자랑했고, 세 사람은 라커룸에서 커피를 들고나왔다. 자동차 정비소를 하는 이 반장, 현장 반장인 문 씨, 수학을 가르치는 고 선생, 가맹점을 운영하는 최 씨. 한 달에 한 번 모여 치는 동호회였다.
이 반장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오늘 우리 적당히 한 판 할까요?” 동반자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봤다.
돈 이야기가 나오자, 문 씨가 바로 물었다. “얼마씩요?” 최 씨가 받았다. “반장님 또.” 고 선생은 대답하지 않고 페어웨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홀당 이천 원씩. 버디는 두 배 어때?.”
문 씨가 먼저 끄덕였다. 최 씨도 따라갔다. 고 선생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저는 패스하면 안 될까요?”
이 반장이 팔꿈치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선생님도 같이하자. 재미로.” 고 선생은 더 말하지 못했다. 이미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었다.
1번 홀까지 그들은 웃었다.
2번 홀. 문 씨의 공이 페어웨이 벙커에 들어갔다. 문 씨가 모래를 밟으며 나를 불렀다. “캐디야, 이거 박힌 거야, 그냥 놓인 거야?” 공은 놓여 있었다. 나는 그대로 말했다. 문 씨의 눈이 잠깐 내려갔다가 이 반장 쪽으로 갔다.
3번 홀. 이 반장의 두 번째 샷이 나무를 맞고 옆으로 튀었다. 그는 공 쪽으로 걸어가더니 주위를 한 번 훑었다. 그리고 발끝으로 공을 툭 밀었다. 돈이 걸리면 사람은 공보다 먼저 마음을 옮긴다.
고 선생은 4번 홀까지 파를 잡지 못했다. 그린을 놓칠 때마다 클럽을 집어넣는 손이 거칠어졌다. 평소에는 실수해도 웃고 넘기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웃지 못했다. 손끝과 어깨와 목소리까지 같이 조인다.
최 씨는 5번 홀에서 버디를 잡자, 스코어 카드를 펴들고 한 번 더 확인했다. 이 반장이 돈을 건넸다. “버디 두 배, 잘 쳤어.” 최 씨가 웃었다. 그 웃음은 카트가 다음 홀로 움직인 뒤에도 입가에 걸려 있었다. 작은 돈에도 사람은 금세 어깨가 올라간다.
6번 홀부터 이 반장이 밀리기 시작했다. 문 씨가 한 홀 가져가고, 최 씨가 한 홀 가져갔다. 이 반장의 목소리에서 웃음이 빠졌다. 말수가 줄었다. 카트가 움직일 때 그는 팔짱을 끼고 앞만 봤다. 말이 줄어서가 아니었다. 얼굴이 먼저 셈을 하기 시작했다.
8번 홀 그린. 문 씨의 퍼팅이 홀 앞 5센티에서 멈췄다. 문 씨가 공을 집으려 손을 내렸고, 그때 이 반장이 끊었다. “그거 쳐야 해.” 문 씨가 손을 멈췄다. “이게 오케이 아닌가요?” “내기할 때는 다 쳐야죠.” 문 씨가 퍼터를 다시 들었다. 5센티를 밀어 넣었다. 공은 들어갔다. 두 사람은 그 홀이 끝날 때까지 서로를 보지 않았다.
규칙은 점수에 따라 달라진다. 지고 있으면 따지고, 이기고 있으면 봐주길 바란다.
나는 카트를 몰며 백미러를 봤다. 뒷좌석 셋이 각자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한 시간 전 주차장에서 서로 등을 치던 손들이, 이제는 무릎 위에서 가만히 굳어 있었다.
9번 홀을 마치고 식당으로 가는 길. 이 반장이 “후반에는 더블로 올릴까요?” 먼저 꺼냈다. 고 선생에게 낮게 말했다. “저는 그냥 원래대로 하고 싶어요.” 이 반장이 눈을 흘기며 고 선생을 한 번 봤다. “선생님은 잃은 것도 없잖아요.”라고 선생은 입을 다물었다. 원하지 않는 사람은 늘 한발씩 밀린다.
점심때 최 씨가 화장실에 간 사이, 이 반장이 문 씨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최 씨 오늘 운 좋은 거잖아요.” 문 씨가 바로 받았다. “초반에 버디 하나 운 좋게 든 거지.” 나는 멀찍이 카트 옆에서 가방을 정리했다. 낮춘 목소리는 대개 진심이다. 잃기 시작하면, 남의 실력은 금방 운이 된다.
후반이 시작되자 최 씨의 샷이 흔들렸다. 10번 홀에서 드라이버가 오른쪽 숲으로 밀렸고, 11번 홀에서는 그린을 두 번 연속 놓쳤다. 버디 다음 홀엔 몸보다 마음이 먼저 풀린다.
이 반장은 서서히 따라붙었다. 13번 홀을 가져간 뒤 그는 다시 웃었다. “이제 좀 되네요.” 문 씨도 따라 웃었다. 웃음은 늘 이기고 있는 사람 옆에 먼저 앉았다.
고 선생은 끝까지 비켜 서 있었다. 크게 잃지도, 크게 따지도 않았다. 그냥 자기 볼을 치고, 걷고, 또 쳤다. 그런데 그의 보폭은 점점 짧아졌다. 억지로 들어온 판에선 몸부터 작아진다.
16번 홀. 문 씨의 두 번째 샷이 OB가 났다. 문 씨가 클럽으로 공 쪽을 가리키며 멍하니 서 있다가 말했다. “이야, 오늘 안 되네.” 이 반장은 손으로 입꼬리를 가렸다. 내가 아니라 네가 잃고 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웃는다.
17번 홀 그린. 최 씨의 긴 퍼팅이 홀을 스치고 지나갔다. 50센티가 남았다. 이번에는 이 반장이 먼저 말했다. “최 씨, 오케이.” 8번 홀에서는 5센티도 못 주던 사람이, 17번 홀에서는 50센티를 먼저 줬다. 달라진 것은 거리보다 스코어였다.
18번 홀이 끝나고 클럽하우스 앞에서 지폐가 손에서 손으로 넘어갔다. 이 반장은 현금을 세고, 문 씨는 얇아진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었다.
이 반장이 돈을 챙기며 말했다. “점심값은 내가 쏠게요.” 문 씨는 한쪽 입가만 잠깐 들었다 놓고 말했다. “반장님이 다 가져갔잖아요.” 최 씨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고 선생도 입꼬리를 올렸지만, 시선은 다른 데 가 있었다.
나는 카트에 가방을 싣고 버클을 채웠다. 등 뒤에서 웃음이 났다. 라운드 내내 내가 본 얼굴들과, 마지막에 서로 주고받는 웃음 사이에는 늘 긴 거리가 있다.
내기는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숨겨진 순서를 앞당긴다. 이 반장처럼 판을 주도하는 사람, 문 씨처럼 편을 찾는 사람, 최 씨처럼 따라가는 사람, 고 선생처럼 억지로 끌려온 사람. 평소에는 관계 속에 눌려 있던 것들이 돈 앞에서 먼저 걸어나 온다.
고 선생은 돈보다 먼저 하루를 빼앗기고 있었다.
처음엔 등을 치던 손이, 마지막엔 돈을 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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