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chel Jan 17. 2023

꼬므토끼

애착에 대한 이야기.

나에게 육아하면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이었는지 묻는다면 당연히 잠이다.

요즘은 수면교육이라고 해서 신생아 때부터 졸릴 때 칭얼 대면

안아주거나 달래주지 않고 눕혀놓고 아이가 스스로 잘 수 있게

교육시키는 엄마들이 많다.

지금도 잠에 예민한 우리 아이들을 보면 그때 나도 수면교육을 했어야 하나 하는 후회도 든다.

쌍둥이 낳고 얼마 안 있다 남편이 배를 타야 해서 도저히 남편 근무지로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정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친정엄마와 육아가치관이 다르다 보니 아이를 울려하는 수면교육이라는 걸

할 수가 없었다.

엥~ 울면 바로 안고, 엥~ 울면 바로 우유 주라고 하고, 엥~ 울면 바로 기저귀를 갈아주셨다.

낮에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자다가 두세 시간마다 한 번씩 깰 때는 죽을 맛이었다.

분유를 먹고 트림을 시켜 눕히면 자야 하는데 안 잤다.

그러면 또 그걸 못 봐주는 우리 엄마 아빠가 안아 재우거나

휴대용 유모차에 태우고 밀면서 재웠다.

서로 잠을 못 자니 나와 부모님도 예민해지고 투닥투닥 싸울 때도 많았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쪽쪽이었다.

쪽쪽이를 물리면 잠을 잘 잔다는 소리에 얼른 쪽쪽이를 물렸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 잠을 잘 잤다.

하지만 그때부터 쪽쪽이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다.

잠들어서 빼려고 하면 홀랑 깨서 쪽쪽이를 찾았고

그때마다 위생도 문제였고, 점점 찾는 횟수가 늘어나니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쪽쪽이 많이 물리면 구강구조도 틀어지고, 나중에 떼려면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 줄 모르니 맘카페에서 '~카더라'로

여기서 이 말하면 솔깃 저기서 저 말하면 또 솔깃해서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날로 쪽쪽이를 바로 버려 버렸다.

아이들은 난리가 났고 엄마 아빠의 비난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리고 아이들은 또 밤에 자다가 깨기를 반복, 그때마다 안고 밀고해야 잠을 잤다.

아마 그 무렵이었던 거 같다.

아이들에게 애착 물건이라는 게 생긴 것이.

당연히 워킹맘도 아니고 내가 전담으로 아이를 키우고 친정 부모님도 있었기에

애착물건 따위는 필요 없을 줄 알았다.

남들 다 사는 잴리캣 인형을 사놓긴 했지만 전혀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애착 인형 따위는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가 없겠구나 자신했다.

하지만 쪽쪽이를 뺄 무렵 첫째는 새 유모차에 딸려온 나비 베개에

둘째는 신생아 때부터 쓰던 스와들속싸개에 집착했다.

잘 때는 꼭 챙겼고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녔다.

엄마 팔이나 머리카락 같이 신체 일부에 애착을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외출할 때 짐이 늘었고, 가장 큰 문제는 자다가 없으면 찾느라 깨서 운다는 거였다.

겉으로는 잘 자는 듯 보였지만 자다가 옆에 없으면 깨서 찾고 우니

내가 그때마다 깨서 주섬 주섬 찾아서 안겨줘야 했다.

이 때문에 나는 자다가 몇 번씩 깨서 방을 더듬어야 했고 도무지 숙면을 취할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매일 옆에 드어야 하니 그것들을 빨 틈이 없었다.

밖에서 온갖 세균들 다 끌고 올 거 생각하면 진짜 빡빡 삶아도 성이 안 풀릴 것 같았다.

그러다 틈이 생겨 빨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찾고 난리가 났다.

겨우 말려 대령하면 자기 냄새가 안 난다고 울고 불고.

베개와 이불에 대한 감촉에 대한 애착도 있지만, 냄새에 대한 애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니 꼬질꼬질 냄새나는 애착 물건을 들고 외출을 하면 모르는 사람들은

엄마가 개을러 빨지도 않고 다닌다고 잔소리나 눈총을 받아야 했다.

한 번은 이불과 베개를 어린이집에 두고 온 적이 있었다.

아이들도 정신없이 노느라 몰랐고 나도 깜빡하고 있었는데

잘 때가 되니 아이들이 찾는 것이었다.

하. 두고 왔구나.   

어쩔 수  없이 집에 계시던 원장님까지 호출해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동화 꼬므토끼도 그런 이야기다.

주인공 트릭시가 항상 손에서 놓지 않는  토끼인형에 대한 애착!

성장하면서 애착인형과 어떻게 아름답게 작별하는지를 다루는지를 총 세 권의 시리즈로 엮어 말하고 있다.

애착물건을 목숨같이 여기는 아이들이니 공감은 이루 말할 것도 없고 내용과 그림도 참 재미나다.

3살 즈음 사줬는데 8살이 된 지금까지도 슬 들고 와서 읽어 달라는 책이다.

마지막 3권에서 주인공 트릭시는 할머니댁에 갔다 토끼인형을 비행기에 두고 내린다.

며칠 그리워하다 꿈을 꾼다. 꼬므토끼가 전 세계 어린이들을 만나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꿈.

트릭시는 그 꿈을 꾸고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그리고 우연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시 자신의 토끼를 만나지만, 씩씩하게 뒷자리 우는 아이에게 줘버린다.

꼬므토끼가 더 필요한 아이들에게 즐거운 쓰임을 받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걸 알았을까?

아니면 이젠 성장해서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지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걸까?

어쨌든 트릭시는 이렇게 꼬므토끼와 아름다운 작별을 했다.


우리 아이들도 얼마 전 애착물건과 이별을 했다.

베개와 이불은 그동안 작고 작아지고 닳고 닳고 닳아져 어디 처박아두면 눈에 잘 띄지 않게 됐는데,

여름 미국 플로리다 레고랜드 호텔에 두고 온 것이었다.

실컷 놀고 나올 때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깨달았다.

체크아웃을 한 상태라 걱정을 하면서 호텔로 달려가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였다.

이제 난 큰일 났구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며 반응을 살폈다.

열심히 찾아봤지만 없다고 한다. 이젠 정말 너희들의 애착 이불과 베개와는 작별인사를 해야 할거 같다.

너희도 이제 컸으니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랬더니 한번 '으으으~' 하더니 끝!!! 돌아오는 길에 애착물건들이 어디 있을까? 쓰레기통에 있을까?

아니면 어떤 아이들이 가지고 갔을까?를 얘기하다.

크게 찾지 않았다. 잠도 애착 물건이 없으니 더 잘 잤다.

하. 이렇게 쉬웠던가.

그동안 이걸 스무 살까지 가지고 다니면 어쩌나 대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쉽게 헤어졌다.


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참 많은 걸 걱정한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이건 안 좋다고 했는데. 다른 집애들은 안 그러는데 왜 너는...

하지만 아이들은 결코 그 걱정에 머물러 있지 않다,

속도는 다르지만 스스로 헤쳐나갈 힘을 조금씩 키우고 있다.

부모들이 너무 조급할 뿐이다.

나는 그냥 믿기로 했다.

아이들이 잘 자라 줄 거라고 혹 느리고 미숙한 것이 있더라도

언제든지 도와줄 부모가 있다는 믿음을 주기로.


책 마지막에 트릭시가 어른이 돼 결혼을 하고 아이의 부모가 된 장면이 나온다.

그때 트릭시 아빠가 보낸 선물이 도착한다.

트릭시가 애착했던 바로 그 꼬므토끼다.

트릭시의 아들은 그 토끼를 보고 좋아하고, 트릭시는 아빠의 사랑한다는 편지를 보고 생각에 잠긴다.

그래 부모의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