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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리소 Apr 07. 2024

봄날처럼 화사하게

딸에게 보내는 사과


어제는 네 마음이 좀 무거웠을 것 같아 내내 마음 쓰이더라.

엄마가 네게 투덜거리고 나서 좀 미안했어.

우리 문제는 우리 선에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어린애처럼 너에게 투정하듯 얘기하고 말이야.

그렇단다.

어른이라고 해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철딱서니로 살아가는 어른이 많아.

부모여도 너희들에게 모범적이기보다는 그냥 인생을 조금 더 겪은 세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때가 있단다.

근데 걱정하지 마.

어제 기도하고 나니까 엄마의 무겁고 우울한 심정에 선 하나 그은 것처럼 많이 가라앉았어. 언제고 저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다시 위로 떠오를지는 모르지만 기도하면서 내 안에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고, 그게 단순히 아빠의 말 때문만은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거지.

가장 큰 이슈는 내 속에 자존감이 많이 구겨져 있었던 거야.

내가 나를 생각할 때 스스로를 효용감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지 못했어. 그런 의식 자체가 옅어졌던 거지.

글도 제대로 안 써지고 일에서도 보람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

돈의 문제만이 아니라 돌봄 일도 그렇고 가끔 하는 알바도 당당히 자존감을 갖고 가기엔 스스로에게 명분이 되어주지 못한 거지.

그래서 무심하게 툭 내뱉는 아빠의 말에 바로 걸려 넘어져서 화가 나고 너와 통화하는 중에 벌컥 나와버린 거야.



기도하면서 이 마음의 배후와 정체를 자세히 알게 되었어.

그게 오늘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란다.

모든 것의 핵심은 내 마음이야.

그걸 알고 난 후 아빠가 어제처럼 얄밉지도 않더라. 그냥 여러 가지 면으로 서툰 사람일 뿐이니까 원망스럽지가 않더라고.

사실 너도 알다시피 엄마도 그런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잖아.

그러니까 마음 쓰지 말라고.

네 일만 해도 정신없고 힘들 텐데 엄마가 거기다 짐 하나 더 얹어준 꼴이었잖아.

도움도 못되면서 염려하게 해서 미안해, 딸.

그리고 하나 더.

너와 있던 시간이 너무 즐거웠는데 거기에 대해서 한마디도 고맙다고 인사도 못했어.

그리고 용돈도.

고맙다.

엄마도 점점 나이 먹어가고 늙어져 가니까 자꾸 너와 언니한테 기대게 되는 것 같아.

아직은 우리가 너희의 울타리로 남아있고 싶은데 말이야.

자연스럽게 너네와 자리바꿈 하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우리도 우리 자리에서 잘 성장해 볼게.

그러니까 너도 우리 걱정하지 말고 서로 의논하고 대화하자.

함께 했던 시간 참 즐거웠어.

자주 그런 시간 만들지 못해도 그런 시간 만들 수 있는 지금을 많이 감사해하자.

사랑해, 딸.

다시 만날 때까지 서로 건강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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