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진 연민

by 캐리소


하지만 이 부드러움, 눈물이 솟구치는 이 부드러움이 무엇에 유익하단 말인가. 이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의 기질에 불과하다. 일전에 슬픈 이야기책을 읽으면서 운 생각이 나서 쓴웃음이 나온다. 나는 쉽게 감동받는 체질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그렇다고 믿는다. 그 눈물은 단지 내 내장이 일으킨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연민의 정을 표출하는 일은 아주 드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날에는 내 머리에 오한이 든다. 나도 창자가 있다는 걸 안 셈이다. 당시 내 창자는 뒤틀려 있었을 것이다.


- 소로의 일기, p. 350.





의사소통이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내 의도와 상대의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는 것인데 그것도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왜곡되기도 한다.


소통이 어긋나서 아침부터 일정이 꼬여 버렸다.

아래층 옆집에 사는 그녀 때문에 핸드폰이 계속 시끄럽다.

그녀와 나는 위아래층에 산다는 접점 외에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는 사이다.

어제 올라와서 내 전화번호를 묻길래 알려주었다.

말하는 게 유난히 어눌하고 두서가 없어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나도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


당장 한 시간 후에 냉장고를 올려야 한다면서 퉁퉁거린다. 갑작스러운 통보라 당황했다.

주중에 남편의 차를 주차하는 자리가 바로 그 집 베란다 창문 아래다.

그런데 그녀는 어제 자기가 분명히 오늘 아침 계획을 내게 전달했다고 우긴다.

흥분한 상태로 자신의 말만 하느라 화에 먹히고 있었고,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의 잘못된 부분을 말했다.

그 말을 들고 발끈하면서 내게 해선 안 되는 말까지 한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말귀를 못 알아먹어 죄송하다'고 했다.

그녀가 내게 한 말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나도 내 시간을 계획대로 쓰지 못해서 열불이 나고 그녀도 그랬을 것이다.

소통이 안되면 오해는 당연한 결과다.


운동을 하러 센터에 갔다 그냥 되돌아 나오면서 내 감정을 본다.

서로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할머니력이 동시에 발동했던 것 같다.

거기다 염장 지르는 남편의 전화도 한몫했다.

'그러니까 잘 알아들었어야지...!'

이따 두고 보자!


이 사건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복기해 본다.

생각해 보건대 입술로는 죄송하말했지만 속마음도 그랬나?

나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참 마음에 비춰보면 아니다.

죄송하지 않았지만 냉소와 빈정으로 되갚아 준 것이다.


집까지 걸으면서 생각을 명료화한다.

오해는 오해일 뿐이고 그건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거기에 감정을 덧대어 왜곡시키는 건 불필요한 일이다. 분한 마음을 해결하고 나니 찌꺼기 같은 연민만 남는다.


차키를 찾아 내려갔더니 그녀는 전화 속에서보다 차분해진 얼굴로 화를 낸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다.


연민은 타인을 향할 때 아름답다.

그건 내 안에서 밖을 연결하는 것이고 결국은 그들 자체를 인정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한다.

나를 향한 연민처럼 부끄러운 것이 없는데... 감정은 그것에 매우 가까운 것이었다.

잠시 내가 품었던 감정을 거두면서 내 안의 구부러짐을 마주한다.


구부러진 것으로 자극하는 건 나의 창자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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