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한기로 좀 더 서늘해졌으면! 왜 서늘함은 슬픔에 가까울까? 내가 꺼리기는커녕 공들여 구하고 싶은 그런 살진 슬픔이 있다. 나는 그런 슬픔이 너무나도 반갑다. 그런 슬픔은 하찮음에서 삶을 건져준다. 이제 나의 삶은 여름 열기에 말라 쪼그라든 채 좔좔거리는 얕은 개울물이 아니라. 깊은 강물을 따라 흐른다.
- 소로의 일기, p. 305
차가울수록 정신을 모으기가 쉽다고 소로우는 들판 햇볕 속에 눕는다.
자연 속에서 그의 문장은 은혜와도 같다.
그의 감화력은 인격의 깊이에서 나온 것이므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더라도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것이리라.
서늘함이 슬픔에 가까운 정서를 가진 건 그 안에 깃든 '밀어냄'이 있어서가 아닐까?
냉정함이 손에 잡힐 듯 구현되는 감각엔 냉정과 고통이 맞물려 슬픔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슬픔을 통과한 반대쪽에는 반드시 그것을 상쇄시키는 따뜻함이 있으리라 짐작되기 때문에 살진 슬픔을 구하는 것은 일면 자기 성장을 약속받는 것처럼 기대에 차있기도 한 것이다.
대자연과 일체가 되는 그의 모습은 자기 내면의 자연인 천성을 풍부하게 꽃 피우면서 되살아난 혼을 만나는 일이다.
결국 소망대로 기쁘게 땅을 포옹하며 즐겁게 땅에 묻혔을 그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