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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Jan 31. 2022

우울의 구덩이에 나를 밀어 넣어

잠들다

아무도 들어가라고 한 적 없는데 나 홀로 들어간다. 세상 속에서는 누구보다 느린 내가 그곳은 빛의 속도로 들어간다. 평소에는 수천 명에게 나를 외쳤는데, 그곳에 들어가는 순간 수천 명이 나를 찾아도 외면한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끝도 없는 질문들, 끝도 없는 상황들, 끝도 없는 목소리들, 끝도 없는 자아들. 끝도 없는 무언가가 끝도 없이 나를 끌어내린다. 하늘에서 바닥으로, 샹들리에에서 식탁으로, 꿈에서 현실로, 숲 속에서 도시로, 채움에서 깨짐으로, 사랑에서 슬픔으로, 나아감에서 과거로, 저항할 수 없는 중력에 떨어지듯 나 또한 떨어진다. 술에 취한 듯 휘청거리나 정신을 붙잡고 나아가려 한다. 하지만 한 발자국 나아가면 스프링을 앞으로 당겼다가 놓은 것처럼 뒤로 팡 튕겨나간다. 외면하듯 뛰어다니면 바람이 밀어낸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나에게 외친다.


도망쳐.

도망쳐.

빨리

도망쳐.


나는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 뒤로 가자니 나를 잡아먹는 자들이 가득하고, 앞으로 가자니 나를 떨어뜨리려는 자들이 가득하고, 옆으로 빙빙 둘러가자니 수많은 자아들로 가득하다. 하늘로 떠오를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빛으로만 가득한 세상에 떠오른다면 모두의 시선을 받아 나는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땅을 파고 들어간다. 지금의 나에겐 적당히란 없다. 미친 듯이 파고들어 간다. 아무도 쫓아오지 못할 때까지, 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할 때까지, 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때까지,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온 전력을 다해 파고 들어간다. 나를 찾지 못하도록 온갖 미로를 만들어낸다. 설령 내가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 그들이 나를 찾지 못하기만 한다면.


분명 나는 인간의 탈을 쓴 몸이었는데 얼마나 많이 파고 다녔던 것일까. 온몸이 범벅이가 되어 두더지 모양새가 되었다. 오히려 다행인 것일까.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테니 말이다. 나를 알아보는 자는 어쩌면 같은 두더지일지도 모른다. 그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이곳에 들어왔을 테고, 어느새 보니 두더지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서로가 어떤 모습이건 상관없다. 그저 어두컴컴한 이곳에서, 두더지가 된 이곳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서로를 보며 각자의 구멍을 판다. 구멍을 파고 있는 자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힘껏 땅 속을 판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치면 함께 춤을 춘다. 보는 이도 한 명 없겠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미친 짓도 한다. 서로 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 땅 속에 왔다는 자체만으로 충분히 서로를 안다. 그 삶이 얼마나 고단했고,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괴로웠고, 얼마나 우울했고, 얼마나 피하고 싶었고, 얼마나 행복해지고 싶었는지, 두더지가 되어버린 존재들은 안다. 그래서 별 말 하지 않고 서로 미친 척하며 노래를 흥얼거리도 춤을 춘다. 한참을 즐기다 또 각자의 구멍을 판다. 이 끝이 어딜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속에서 하지 못했던 질주를 땅 속에서 한다.


얼마나 파고 들어갔을까. 이제는 지쳐 땅굴에 기대어 본다. 조용하고 어두컴컴하니 좋다. 빛 하나 없고, 소리 하나 안 들리고, 나를 찾는 이 하나 없다. 나가는 길도 못 찾을 것 같고, 식량도 없고, 기운도 없으니 이대로 이곳에 묻히고 싶다. 그렇게 이곳에서 영원히 평화롭게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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