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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May 25. 2022

적령기, 그것은 누가 정했는가

청춘

어떤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다.


청년의 가슴에는 창의와 존재의 불덩어리가 돌아다니는데, 그중에서 창의의 불꽃은 새로운 것을 열망하는 뜨거움이다. 청년은 싫증을 빨리 내는데, 그것은 새로움에 대한 갈구와 지루한 것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이는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 혁신의 모습이고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힘이 된다.

또 다른 불덩어리인 존재의 불꽃은 내가 주인임을 깨닫는 힘이다. 청년기는 굴종하지 않고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려는 의지가 가장 강한 시기다. 이런 의지와 자존심은 청년으로 하여금 도전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20대만 청년이고, 청춘이라 일컬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이 불문하고 자기 안에 젊음의 기운이 살아있다면 그것 역시 청춘이고 청춘이라 인정하게 된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 꽤 오래전부터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시도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조직 속에서 매너리즘을 느낀 일부 사람들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고 있고, 이제 막 사회로 들어온 초년생들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다양한 창업활동을 참가하고 있다. 나이에 맞게 졸업하면 취업하고, 취직하면 승진하고, 승진하면 돈을 좀 더 벌어서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고, 이러한 암묵적 사회시스템은 더 이상 젊은이의 심장을 치지 않는다.  


발달적 측면에 있어 그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에 갇혀 많은 자들이 자신의 가능성까지 가둬버린다. 그저 때가 지났다는 이유로, 너무 늦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때가 지났다는 것도, 너무 늦었다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텐가. 때가 지난 만큼, 너무 늦은 만큼 더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100세 시대인 삶 속에선 더 이상 나이에 국한되어 살면 안 된다. 80세가 되어서 새로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는가. 그들은 나이 따위가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다. 



바이브컴퍼니의 부사장 송길영 박사가 인생주기에 따른 세대별 고민을 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공통분모를 발견하였다.  바로 '시간, 돈, 나이'라는 것이다. 자기소개를 하든, 이직을 하든, 방향 고민을 하든 간에 반드시 빠지지 않는 요소가 '나이'라는 점이 인상 깊다. 사람들 안에 심어진 '나이'라는 요소는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의식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가장 이해가 쉬운 예로, 20대 중반의 나이에 명절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사업을 하고 있는 자와 취업을 한 자 중에 누가 더 격려와 칭찬을 받겠는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명절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퇴사하고 사업을 준비하는 자와 회사 내에서 승진을 한 자 중에 누가 더 격려와 칭찬을 받겠는가. 대체로 전자는 걱정 어린 마음을 내비치고 후자는 화사하게 웃으며 응원을 보낼 것이다.



사실 적령기, 즉 그 나이 때에는 이것을 해야 한다 라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누릴 것을 다 누리지만, 어떤 이는 불완전한 환경에서 태어나 세상을 살아내느라 바쁘다. 어떤 이는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지만, 어떤 이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돈을 버느라고 자신을 돌아볼 틈이 없다. 어떤 이는 잘 살아가다가 폭삭 망하는 반면, 어떤 이는 어렵게 살아가도 좋은 인연을 만나 삶이 피어난다. 어떤 이는 아무런 건강하게 살아가다가 30대에 들어 불치병에 걸리는 반면, 어떤 이는 살아가는 내내 이런저런 문제로 끙끙 앓다가 30대에 들어서야 삶이 편안해진다. 이러한 인간의 삶에 과연 '적령기'라는 것이 존재할까. 이러한 인간의 삶에 과연 '청춘의 시기'가 별도로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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