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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밈 May 08. 2020

영화 음식 작업 일기

1. 아가씨 - 그래서 얼마야?

2007년 <모던보이>로 소위 말하는 입봉을 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영화를 사랑하는 미술 전공자인 푸드스타일리스트로서 14편가량의 영화 안에서 음식과 식공간을 꾸미는 일을 해왔다.

현장 모니터를 통해 보는 내가 차린 식탁 풍경

영화는 각 파트가 자신의 전문성을 사력을 다해 내보이며 연출가의 공감각적 표현자가 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누가 해도 상관없는 소품으로 취급받기도 하고, "그 영화에 음식이 나오나?" 갸우뚱하는 이들이 많다.

내 ~피, 땀, 눈물~ 인 작업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고작 몇 초 스치듯 화면에 담기는 요리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궁금해하던 분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더불어 드라마나 영화에서 수동적으로 일하는 후배들이 "아, 이렇게 공부하고 끝없이 부딪쳐야 하는구나" 생각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작은 소망도 있다.

프리랜서는 자기 가치를 스스로 매기는 사람들이기에 정답이 없는 직업이지만, 이제는 내 얘기가 도움이  될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브런치에 뛰어들었다.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브런치

첫 작업일기에 소개할 영화는 내 업력에 기준점이 되어준 바로 그 영화! 2015년에 만난 아가씨

나를 성덕의 길로 한발 더 이끌어 준 박찬욱+류성희 조합과 다시 께하길 소망할 만큼 맘에 남는 작품이다. 또,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이 많은 영화기도 하다.

유투버 줌인센타님 친절한 자막 감사해요~^^

아가씨는 고가의 소품들이 워낙 많아 모든 팀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촬영을 진행했고 늘 긴장상태였다.

얼마나 비싸길래?
하 배우님도 궁금해하던 이 그릇들, 과연 얼마일까?박 감독님도 관객과의 대화 때 식기 관련 질문을 받으시고 그건 전문가들이 한 거라고 답하셨단다. 주변의 지인들 모두 그릇이 얼마인지 어디 제품인지 물어봤다. 하지만 그릇을 어떻게 왜 골랐는지 묻는 사람이 없어 겸사겸사 작업 참여자의 시선으로 글을 쓰려고 한다.

우리는 보통 제작팀의 연락을 받고 영화 시놉시스와 푸드팀이 필요한 회차의 콘티와 대본 발췌본 등의 료를 받은 뒤 피드백과 함께 견적 제안서를 보낸다.

(우에 따라, 선미팅 후 자료의 수순도) 촬영 회차나 예산 등 여러 가지 세부사항을 조율한 뒤 계약서를 쓰고 일을 시작한다. 아가씨 첫 미팅 후, 미술팀이 보내준 공간 래퍼런스와 각종 사전조사 자료와 시안, 랜더링 자료들을 보며 제일 큰 걱정은 음식보다 식기였다.

<암살>로 이미 류미감님과 일한 경험이 있기에 어떤 스타일로 일하시는지는 알지만, 시대적 고증이 필요한 영화음식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식기가 특히 중요하다.

처음 래퍼런스 이미지들은 유럽의 식사 장면이 많았기 때문에 그릇들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내가 받아본 모든 아트팀 작업 중 가장 꼼꼼하다.

결국, 우리는 두 브랜드에게 협찬을 받았다.

웨지우드한국도자기. 그리고 (=my 팀)

꾸밈에서도 소장하던 앤틱 식기와 크리스털 글라스를 아낌없이 (사실, 양이 많지 않아서 헤헷) 놓았다.

부족한 것들은 이태원 앤틱 샵을 돌며 골라서 렌털 했고 명품 그릇들은 소품팀이 이미 접촉 중이었기에 그중 별로 어울리는 브랜드 라인 중 몇 종류를 골랐다.

문제는 서양 클래식 테이블 세팅에 필수품라고 꼽는 30cm가량의 #placsplate(위치 지정 접시 또는 서비스 플레이트라고도 불린다) 인 오너먼트용 접시를 백방으로 뒤져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는 크리스토플 같은 1등 커트러리 브랜드와 바카라 같은 명품 크리스털 브랜드도 손 털고 나갈 만큼 (물론, 현재 상황은 매장 재오픈 등 그나마 나아짐) 고가의 클래식 명품 아이템들(의류나 잡화말고)은 구매력이 떨어진다.

그러니 클래식 테이블 세팅 아이템인 오너먼트용 시는 명품 브랜드에 세팅용으로 구색을 맞춘 정도. 그나마 있는 애들도 주로 패턴이 없는 것들이어서 고심하던 중 한국도자기 프라우나 라인그토록 찾던 디테일의 접시들을 발견하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기도 했다.

선택된 웨지우드 라인 들 중 주로 쓰인 두 디자인.
구할 길이 있을까 싶었는데 아직 판매중인 한국 도자기 프라우나 라인.

아가씨의 미술은 동서양의 절묘한 조합으로 더욱  났다고 얘기한다. 류미감님 인터뷰에서도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동서양의 미묘한 조합을 이용해 주인공의 캐릭터가 드러나는 공간으로 구현하는 것이 들면서도 짜릿했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서양적인 요소 중 유럽풍을 강조할 때 흔히 보이는 화려한 프렌치 스타일보다 원작의 배경이자 19세기 미술 공예 운동의 태동지인 영국적인 클래식함을, 동양이라고 하더라도 시대적 배경에 따라 일본풍을 강조한다기보다 한국적인 소품들을 잘 배치해서 인물의 정서와 심리적 상황을 잘 드러냈기 때문일 게다.

특히 겸재 정선의 산수화와 청자, 백자, 분청 등의 도자와 나무 분재, 1930년대 천재화가 이인성의 실제 작품이 공간 곳곳에 배치되다.

16~19세기의 양식을 모두 어우르는 류미감님만의 실험적인 뉴-모드랄까? 이런 새로운 게 늘 좋.

왼)바로크시대의 테이블 세팅     우)로코코시대의 테이블세팅          

잠깐, 아가씨의 미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 양식사를 좀 설명해야... 갑분싸 죄송함

(전공자 피셜 TMI + aka.설명충) 진짜 필요해요.

16C는 르네상스, 17C는 바로크, 18C는 로코코,19C는 빅토리아 양식딕 리바이벌이 유행했다. 리고 미술 공예 운동 거쳐 아르누보와 아르데코로. 17C~18C 사이에 시누와즈리(chinoiserie)라는 중국풍 유행의 시기가 있었는데 슬쩍 일본에 대한 기심도 재되어 있었다. 이것은 후에 유럽을 뒤흔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거대한 불씨가 된다.

시누아즈리는 귀족을 중심으로 다소 소극적이나(?) 선풍적인 유행을 이끈다. 이 중국 취향을 귀족들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 주문하고 사들인 짝퉁 중국 미술품 (동양 판타지, 즉 '오리엔탈리즘' 취향으로 바로크나 로코코에 중국풍을 가미한)이라 치부할 수만은 없다.

유기적 추상 문양으로 대표되는 아르누보의 선구가 되고, 접합면을 드러낸 로댕의 조각에까지 영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래는 사진은 시누아즈리를 엿볼 수 있는 그림과 무역상인 산마로의 티 테이블 세팅이다.

좌)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 "새목걸이"    우)1710년 무역상의 티테이블

이즈음 산업혁명으로 인해 대량생산 체제에 편입된 수공예품들의 질적 하락을 우려하던 예술가들이 있었다. 그들이 모여 과거 중세의 수공예 정신으로 돌아가 장인과 길드로 이루어진 제작자가 고품질의 디자인이 가미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중심에 영국인 윌리엄 모리스다.

그들이 찬양하는 고딕의 특성에 따라 형태와 모양이 단순하고 견고하면서도 (이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유기적인 형태를 지닌 제품을 생산했다. 양 문화는 더욱더 자연 티브로 하는 작품에 열광하며 아름다운 선과 색을 유리공예 작품과 가구, 보석 건축 회화  전 미술의 영역에서 적극 표현했다.

19세기 말에 나타난 ‘아르누보(art nouveau)’라는 예술사조는 이렇게 등장 것이다.

우측 프랑스 에밀갈레의 페리에주에 디자인과 일본친구와의 교류로 동아시아의 유리중첩기술을 더한 유리공예 작품들을 보면  영국인인 윌리엄 모리스의 작품과 확연히 다른 장식성을 풍긴다.

미술 공예 운동이 기쁨 없는 노동, 즉 산업화의 단점인 소품종 대량 생산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것이라면 아르누보는 산업화로 인한 새로운 기계의 발전과 , 섬유, 유리다루는 기술적 발전을 이용해 빛이 들어오는 건축물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등 주제의 확대로 사용을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단순 장식 모방에서 벗어나, 상징주의적 형태와 패턴들에 미학을 받아들여 미술을 실용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과도한 장식성, 그로인한 랜 제작기간, 고가의 재료비 때문에 모리스가 진짜로 사용길 바라던 대중보다 되려 부르주아 계층에서 환영받게 된다. 노동에서 나온 아름다움을 노래한  공예 운동으로부터 아르누보에 이르는  양식은 이렇듯 긴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지는 못하지만 대중을 미술을 향유하는 존재로 끌어들이는 소기의 적을 달성했고 20세기 미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한국의 영화 미술에도.

조근현 미술감독의 <장화,홍련> 역시 윌리엄 모리스에게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고  아가씨의 미술적인 장치 중 두드러 아이템인 벽지 역시 그의 패턴을 참고한 것.

좌)히데코의 방과 응접실의 벽지패턴 우)윌리엄모리스의 식물패턴벽지

위에 언급했듯, 아가씨는 16~19세기의 미술 양식이 혼재되어 있으며 더불어 일본풍의 장식성도 함께 볼  있다고 했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섬유 직조 기술인 다마스크직과 다마스크 패턴(아래 사진 참조)과 윌리엄 모리스의 문양을 비교하면 그가 고 리바이벌을 원했다는 것이 어떤 부분인지 이해가 쉬울 듯하다.

앞서 첨부한 테이블 세팅 자료들 비교는 것도 좋고.

좌)르네상스의 다마스크 패턴   우)다마스크 직조 냅킨


한편으로 산업 자본가들은 일본의 공예품들이 프랑스 장식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창작의 모델이 될 으로 크게 기대했다. 1862년 런던 만국박람회와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일본의 도자기와 차, 채, 우키요에 등이 유럽에 소개되면서 일본 문화 및 예술에 대한 잠재된 관심이 다시금 증폭되었고  빠르게 대응하여 공예품 수출 무역에 앞장선 일본의 행보 덕 자포네즈리(Japonaiserie) 산됐다.

왕실과 귀족 등 소수에게 유행하던 시누와즈리보다  파급력이 더 큰 이유는 왕정과 귀족의 등의 계급 몰락에서 기인한다. 산업화로 생겨난 중산층 역시 들의 부를 새로운 이국 문화를 소비하는데 썼다. 또한 나전칠기와 새로운 장식적 도자기, 옻칠 병등에 타난 동양의 화조 문화는 그들에게 새로운  체험으로 자리 잡으며 원문화에까지 적용되었다.


 일본 취향은 계급이 사라진 시대에 인상파 화가들에 의해서 ‘포니즘’이라는 예술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바탕에는 특히 에도 문화의 습속과 취향을 그린 우키요에 일본의 목판화가 자리한다. 대량 생산이 가능했기에 서민들도 한 점씩 집에 걸어 놓고 즐겼다는 이 그림들은 작품의 수량에 따라 고급 예술이면서 한편으로는 값싼 정보매체다. 때문에 그 파지들은 도자기를 수출하는 포장재로 쓰이 의도치 않게 유럽 미술계를 화끈하게 뒤집어 놓으셨다.

덧없는 세상을 의미하는 우키요(浮世)의 뜻처럼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은 내용으로, 우키요에 화가들은 다양한 화두 자유롭고 풍자적인 작품세계 그려냈다.

원근법의 무시, 강렬한 색감 등새로운 표현 방식 사진기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시각요소를 찾아 헤매던 서구 미술가들을 사로잡았다. 우키요에를 특별히 사랑 인상파 화가로는 모네, 마네, 드가, 피사로, 고갱, 로트렉, 고흐 등이 있다. 특히 음악가 드뷔시는 자신의 관현악곡 "바다"의 악보 표지에  우끼요에 화가로 명성이 자자하던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작품의 파도를 모방할 정도였으니 당시 예술가들의 일본 문화 사랑의 척도를 가늠할만하다.


우끼요에의 장르인 춘화 역시 데코가 읽는 음란물의 시각 자극 요소로 적극 사용된다. 아래 사진의 파도를 그린 화가인 쿠사이의 "어부 부인의 꿈" 이 등장한다.

맵시 있차려입은 변태들 앞에서 수 성애물 따위를 낭랑하게 낭독하느라 두통에 시달리는 아가씨가 얼마나 애처롭게 느껴졌는지, 그림을 자세히 볼수록 더 딱하다. 자들이 상상하는 강간 판타지가 가득 찬 그림의 메시지가 히데코를 덮치는 백작의 대사와 연결되어진다.

물론, 두 번째 낭독 장면인 "바람 잔 밤, 방울 소리"라는 부인과 하녀의 동성애 장면을 읽을 때 히데코는 처음으로 얼굴을 붉힌다. 이모부 통제하의 도구로서 발화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신의 언어로 숙희를 생각하며 그 장면을 낭독하느라 흥분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좌)가츠시카 호쿠사이의 파도  우)드뷔시의 파도 악보 표지
좌) 유혈낭자 잔혹 우끼요에 작가인 쯔끼오까 요시토시의 작품들과 상반되는 우) 스즈키 하루노부 풍의 에도 미인과 벚꽃 풍경
그동안 이런책 읽어준거예요? 숙희 부들부들 하게 만든 그 춘화. 남성시각으로 겁탈의 순간을 합리화하는 촉수 성애물.

일본풍의 유행은 가구나 도자기에서도 두드러졌다.

특히 나전칠기는 유럽의 기존 가구 상판에 붙여져 특한 동서양의 컬래버레이션 가구 작품을 탄생시켰다. ‘나전’이 영어로 ‘Japan’으로 불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전칠기는 일본을 통해서 유럽에 들어갔고 들은 나전의 화려한 광택과 매끄러운 질감에 열광했다. 이후 나전칠기는 옻칠과 칠보 기술과 함께 아르누보 시대의 여러 작품에도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좌)1925년 자포니즘 양식인 옻칠 벽장식이 특징인 아르데코 티테이블 우)티파니의 예술파트 장인 에드워드 첸들러 무어의 작품
아가씨 첫장면에 보이는 벽장식 그림과 히데코의 방의 다양한 소품들.   저 보름달만 갖고도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끝없지만 미술 얘기만!

도자기 영역에서는 ‘이마리’라는 도자기가 유럽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리타 도자기의 주요 수출항구가 이마리였기에 그리 불렸다. 섭정 황태자로 일컬어지는 영국조지 4세는 아리타 자기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청홍색 금박으로 화려한 장식을 하는 이마리 도자기는 유럽도자 회사에 영향을 끼쳤고 금박 장식은 이후 아르누보와 아르데코를 풍미했던 오스트리아의 작가 클림트의 작품에서도 많이 표현되었다. 이렇듯 일본풍의 유행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도자, 건축, 가구 등에서 그 양식을 수용하 확장 되었고 그것이 자포니즘이다.

아리타 도자기의 시초는 임란 당시 끌려간 조선 도공 삼평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초기 아리타 도자는 조선백자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명, 베트남과 함께 도자 원천 기술 보유국이던 조선 도몰락 과정 들여다보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동양으로부터 도자기를 수입하기에 급급하던 유럽은 그들이 최초로 만든 자기인 독일의 마이센과 함께 헝가리의 헤렌드, 영국의 웨지우드와 로열 덜튼,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 프랑스의 세브르 등 왕실 도자기와 그 전통을 이은 신흥 명품 브랜드의 도자 문화를 발달시켜왔다.  서양의 수집가들에게 러브콜을 받는 도자 브랜드가 유럽에만 있을 리 만무하고 경덕진과 아리타로 대표되는 중국이나 일본 역시 굳건하게 세계에서 자신의 위상을 지키고 있다.

반면 나라의 몰락과 함께 기술자들은 집단 아사하고 도자 제작 기술이 사라진 조선을 거쳐 어렵게 들어진 우리의 대표적인 도자 브랜드들은 상황이 매우 나쁘다.

행남 자기는 아예 영화 사업으로 업종을 바꿨고, 그나마 이도 도자기나 광주요 등의 후발 주자와 화소반, 문도방 등 팬층을 거느린 몇몇 개인 작가들, CJ오쇼핑의 PB(자체브랜드)로 시작해 NB(단독)로 독립한 오덴세 정도가 틈새시장에서 생존하는 수준이다. 한국도자기도 프라우나를 내놓으며 고급화 전략을 내세웠으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이것을 그저 시대에 발맞추지 못한 경영진만의 탓으로 봐야 할까.

순백색 우유빛깔의 본차이나를 자랑하는 한국도자기, 청자 빛의 은은한 울트라 파인을 생산하는 행남 자  옛 디자인을 요즘 다시 레트로라고 찾고 있지만 이미 사라져 버리면 다시 만들 수가 없는 것이 문화 아닌가.

청와대에 납품하고 나라의 공식 행사를 책임지던 도자기업계 대표 브랜드들의 몰락은 전통과 실용 경계에서 헤매는 우리 공예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하다.

좌)조선 백자를 닮은 초기 이마리 자기.    우)광주요의 청화수복문 백자
오늘의 주제는 "그 그릇 얼마예요" 였는데
식기 셀렉 과정을 설명 하려다 보니 아가씨 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들을 덧붙이게 된 것이 그만 엄청 긴 글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찬찬히 읽다보면 미술의 바탕 위에 그릇과 음식이 자리하는 것을 조금은 이해되었으리라 믿, 믿..슙니~다.
암튼지간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그릇 얘기로 되돌아와서 다행이다.

웨지우드의 식기들과 한국 도자기의 프라우나 라인, 유기와 칠기로 차려진 영화 속 식탁들은 다음 편에서 씬 별 설정에 따른 디테일한 음식 이야기로 이어진다.

시대적 양식과 패턴을 잘 드러내는 식기는 컬러 네이비나 짙은 와인 컬러, 골드 컬러 등 클래식한 색상을 선택했고 유기 역시 한국적인 화려함을 드러내는 질감과 상이기에 냉면을 먹는 야식 장면에 사용되었다.

오늘은 아가씨의 미술과 식기 및 소품이 얼마나 잘 매칭됐는지 아트팀과 소품팀, 푸드팀의 노력을 마지막 진으로 남기며 정답을 발표할까 한다.

하배우님, 접시류는 1만원~ 50만원까지 다양한데 앤틱들도 많아서 값을 매길 수가 없는 게 문제예요.

하인으로 일하며 받은 첫 달 월급으로는 헤링본 맞춤 양복을 샀던 고판돌의 클래식한 더블 블레스티드 양복, 야식을 먹는 자리지만 유카타 같은 평상복이 아니라 나가기 위에 하카모를 덧입고 그위에 하오리까지 (계절상 단젠은 아닐 듯) 제대로 갖춘 기모노, 어깨허리치마에 좁은 소매통, 짧아진 치맛단 등 활동성을 고려한 개량 한복에 앞치마를 두른 하녀, 사각사각 소리가 들릴 듯 한 초록색 실크의 씨스루 오브숄더 드레스는 하녀의 도움 없이 입을 수 없는 단추가 마흔 개쯤 척추뼈를 따라 달려있다.

기모노, 양복, 한복, 드레스가 어우러진 의상처럼 들이 서있는 공간 역시 모든 소품이 다국적이다. 주인공들 뒤로는 겸재 정선의 그림이 걸려있고 벽난로 위에 부조로 드 브라켓의 볼드한 식이 둘러져있고 그에 어울리는 화려한 골드 촛대가 좌우 대칭 한쌍. 웨인스코팅으로 벽체를 장식한 단단한 원목 몰딩과 조화를 이룬 육중한 마호가니 식탁 질감과 색감. 클래식한 무게감과 대비되는 윌리엄 모리스 풍의 패턴 벽지와 좌우 대칭으로 기둥에 달려있는 벽등. 르네상스와 바로크와 관통하면서 19C의 장식미술 훌륭하게 조화된 이 공간에 타,탁월하게 고혹적인 아가씨가 들어서면서 만찬 장면은 휙 지나가고 만다.

아가씨 아카이브에 나온 자료에서 범동양적이라는 표현이 등장함

에서 웨지우드의 르네상스 라인을 썼다.

한국도자기의 서비스 플레이트를 같이 사용했는데

웨지우드 라인이 컬러감 때문에 더 돋보인다.

어때요?
잘 선택한 것 같나요?

앞으로 이렇게 정교한 영화미술 안에서 또 음식을 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고통스러운 기쁨이 주어질까.

오른쪽 테이블 세팅은 보자마자 어느 장면인지 눈치챘을 분들도 있겠지만 아껴뒀다 추후 공개해야지.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진짜 반을 쓴 것 같다.

음식 얘기는 이제 시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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