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나주 동창 세지면 출신으로 6.25 때 아버지를 잃었다. 생활력 강하고 긍정적이던 할머니의 기질과 막내여서 이모와 삼촌이 아껴주었던 탓에 다행히도 큰 고생을 모르고 컸다고 한다. 먼저 상경한 동네 언니들을 따라 종로의 화신 백화점에 근무하며 서울에 정착했고 월급은 명동 양장점에서 옷 맞추고 구두 맞추며 플렉스 했던 멋쟁이였다. 그러다 중매로 영산포 출신 남자를 만나 그와의 결혼이라는 치명적 실수(?)를 한 덕분에 나를 만났고 나의 엄마가 그녀의 다른 이름이자 존재가 되었다.민지엄마라는 부캐의 탄생.
살림만 하던 엄마가 IMF로 인해 식당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엄마가 가사 노동까지 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뭘 해주시면 미안해서 자꾸 화부터 냈다.
"아, 내가 할 건데 왜 엄마가 치워어!"
"빨래 내가 하지 말라했지? 왜 자꾸 하는 거야? 이렇게 하지 말랬잖아, 이게 뭐야 하지 말라고!"
"어디다 뒀어? 또 버렸지? 아앜~ 왜 그래 자꾸 내 방에 손대지 말라고, 청소하지 마!!!" "아, 안 먹어 안 먹어" "아~ 괜찮다니까 왜 자꾸 줘?" 눈도 못 뜨고 있는데 입가에 들이미는 정체불명 주스에 앙칼지게 "아, 진짜 안 먹는다고" 짜증도 버럭 내고. 해줘도 지랄하는 늙은 딸에게 화도 못 내고 늘 이거 저거 챙겨주고서는 "냉장고에 꼭 넣어라" 카톡까지 보내며 전전긍긍하는 엄마가 또 보기 싫어서 화를 낸다.
엄마가 안쓰럽고 힘들까 봐 걱정되고 시키지도 않는 희생을 하는 게 화나고 자기가 좋아서 해 놓고는 나를 위해 했다 할까 봐 늘 하지 못하게 막고, 주면 안 받고 성질만 냈다. 인스타 피드에는 엄마랑은 한번도 못가본 곳들의
오늘의 장바구니에는 언젠가 선물 받아 전해드렸던 옥천 박기영 시인님의 참옻들 옻 티백을 넣고 찹쌀에 마늘 은행 인삼 대추 알뜰히 채워 끓인 삼계탕이 쏙 들어가 있었다. 얼마 전 부산 다녀오며 백화점 세일 매대에서 엄마가 입음 꼭 이쁠 티셔츠 두장과 바지를 사드렸더니 그 옷을 아침부터 입고 장바구니 가득 과일이랑 백숙이랑 밑반찬을 바리바리 싸서 주신 거다. 비싼 거 아니냐 네가 돈이 어디 있냐 (이때가 제일 찔린다. 택시비랑 술값을 아꼈으면 백 벌도 사줬을.. 흑) 걱정 걱정하시더니 손목도 약한 네가 무거워서 들겠냐고. (엄마 딸이 손목은 가늘지만 허리랑 허벅지는...ㅠㅠ) 오늘은 영상도 보내고 사진도 보내서 엄마 음식이 역시 최고라고, 너무 맛있다고 했다. 글자판 제일 크게 만들어줘도 오타 투성이 문자가 오지만
늘 가슴이 뭉클하고 애틋해지는 엄마의 글들.
아직 움직이고 희생할 힘이 있는 엄마가 내어주는 모든 것을 말리지 말고 잘 받아야지. 잘 받아주는 것도 사랑의 다른 표현인 것을 이제 안다. 찐 사랑의 표본. 엄마 사랑해.
엄마표 삼계탕을 잘 해체해서 찹쌀이 풀어지도록 다시 한번 푹푹 끓여서 오이김치랑 같이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