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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밈 Aug 24. 2020

푸드스타일리스트는 뭔가요?

꾸밈은 어떻게 외식업 디자인을 하는 거죠?

하늘이 밉다 할 만큼 퍼붓던 비가 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어느새 처서가 오고 밤에는 제법 쌀쌀합니다.
방긋 나온 해를 보니 찜통더위도 얼마 안 남았으니 즐겨야지 생각하며 아침 햇살 속에 글을 쓰려해요.

얼마 전에 지난달 부산 특강 사진을 받았어요.


제가 참 공들이는 특강이 바로 외식업 디자인입니다.

응? 외식업 디자인? 인테리어 같은 거 아냐?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무슨 외식업?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이번 기회에 제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흔히들, 푸드스타일리스트를 이렇게 생각하세요.

음식 예쁘게 담는 사람.
비슷하지만 좀 많이 다르답니다.

cj 부침가루를 활용한 봄꽃밭전 /  프로그 오리오 종이호일 사용연출 컷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식공간 연출 능력을 바탕으로 제품의 특징과 장점을 살리는 특수 촬영(?)에 좀 더 특화된, 식공간 연출의 세부 직업입니다.

특수 촬영이라고 표현했는데 말하자면 음식의 씨즐(sizzl)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는 직업으로 쭈욱 늘어나는 치즈, 반 가르면 육즙이 흘러나오는 만두, 보글보글 끓는 찌개, 숯불 위에서  조개가 입을 딱 벌리는 순간 등을 수없는 반복을 통해서 캐치해내는 그런 작업을 합니다. 녹지 않는 빙수나 아이스크림 만들기 등등도 있죠. 그래서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가짜 음식을 만든다는 얘기들도 있답니다. 하지만, 식재료의 성질을 모른다거나 요리를 못하면 작업이 어려워요.

때문에 요리사처럼 매일 반복된 훈련을 통해 숙련되어 있지는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평균이상의 요리실력이 있습니다. 다만, 제품을 장점을 부각하기 위한 연출을 한다라고 이해하시면 빙고! 가끔 테이블 세팅을 푸드 스타일링이라고 하시거나 푸드 마케팅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신조어를 쓰거나 케이터링 푸드 스타일리스트 등 다양한 분에서 일한다고 하시는 분도 있는데 케이터링이나 마케팅은 푸드 스타일리스트와는 엄연히 다른 직업입니다.

테이블 세팅도 푸드스타일링의 바탕이 되는 공부이자 각 나라의 식문화의 표상일뿐 푸드스타일링이라는 행위는 아닙니다.

뭐 이런 것들이죠. (드라이기보다 열풍기가 요즘은 대세)

햄버거 참깨도 물엿이나 식용 본드로 하나하나 붙여요 ㅋ.

국수 묶어서 삶는 건 뭐 바이블이 되었죠.

좌) 너구리 cf 촬영          우)중국오감자cf촬영

라면 cf에서 라면을 호로록 먹는 순간을 위해 우리는 면을 60% 익혀서 얼음물에 담갔다가 똑같은 양과 길이로 커트해놓고 배우 옆에서 펄펄 끓는 육수에 젓가락채 넣고 끓어서 김이 날 때 배우가 쓸 젓가락에 걸어서 넘겨준답니다. 배우는 예쁘게 완성된 그릇 뒤에서 마치 집어 올린 것처럼 면치기를 하는 거죠. 언제 ok 될지 모르니 수십 개를 만들어 수십 번을 젓가락에 걸어 넘겨야 해요. 라면을 커트할 때도 마지막 한가닥이 쪽~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이를 다듬어야..

과자 사진을 설명하자면.. 모양이 제일 예쁜 A급을 분류하고 있는 작업 사진입니다. 모델이 손에 들고 얘기하다 먹는 장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과자의 형태를 찾는 건데 과자 한 봉지당 3~5개밖에 없기 때문에 저렇게 수십 봉의 과자를 뜯어서 고르는 거예요. B급은 하늘에서 과자가 막 쏟아지는 컷에 쓰고 나머지는 버.. 립니다. 햇반 찍을 때는 밥알도 핀셋으로 하나하나 세워둔답니다. 이런 단순 반복 노동이야말로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주된 업무 기도 해요.

이 영상을 위해 치킨 120마리가 튀겨지고 버려졌습니다.

양파 떨어지는 장면만 수십 번, 양파를 얼마나 썰었게요.

게다가 다 같은 모양과 크기여야 하니 양파 수십 개를 준비해도 부족할 수 있어요. 뜨거울 때 가슴살을 찢느라 손은 가벼운 화상을 늘 입고요 (만두, 소시지도 갈라서 육즙을 보여줍니다) 소스가 좌악 뿌려질 때 적절한 색과 농도도 눈으로 보는 것과 카메라 테스트가 다르고 "투명하되 걸쭉하게", "좀 더 색만 진해지고 농도는 유지해달라"는 디테일한 요구 사항까지 들으면서 일하다 보면 24시간이 모자라죠 정말. 이렇게 다시 소스를 뿌릴 때마다 그전의 모양과 똑같이 튀김도 다시 쌓아야 하니 닭 4마리는 튀겨야 예쁘게 담긴 한 마리 분량의 동일한 접시가 나오게 되죠.

왜 120마리나 튀기는지 아시겠죠? 이 외에도 염지를 안 하고 닭 껍질만 분리해서 본드로 붙이고.. 진짜 의사들이 집도하듯 핀셋을 내 몸처럼 쓰고 메스 대신 칼을 댑니다.

이렇게 기술적인 부분이 푸드스타일링에서는 중요하고 푸드 스타일리스트 개인마다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도제식으로 어시스트를 키우며(?) 일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어요. 그런데 문제점으로 대두된 것이 이런 기술적인 부분만 익히면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일 년이나 일 년 미만 어시스트하면 작은 사무실을 얻어 인스타 등으로 홍보하며 독립을 시작하는데, 독립의 시기와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충분히 능력을 쌓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한다는 점이 문제를 발생시켜요. 더 큰 일은 그것이 업계 자체의 생태를 뒤흔드는 일인지 아예 모르기도 한다는 거죠.

경력을 쌓기 위해 저가로 일해서 생기는 문제는 차치하고 그렇게 일하다 보면 좀 더 큰일들을 하고 싶고 또 열심히 하다 보면 맡게 됩니다.

그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앞서,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식공간 연출 능력을 바탕으로 한다- 했는데 식공간 연출 능력은 뭔가 궁금하실 거예요.
한마디로, 식음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을 꾸미고 목적에 맞는 다양한 연출을 할 수 있는 능력이죠.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직업이 요리사일 때
주방 설계라던가 주인공의 동선, 요리할 때의 제스처, 도구 사용법도 알려줘야 하고 식기도 고르고 메뉴도 만들어서 마치 실제 식당을 오픈하는 것처럼 만들기도 하거든요? 또는 시대극이라 고증을 통한 상차림이 필요하기도 하죠. 때문에 다양한 공부를 해야 한답니다.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 광대들 현장- 청화백자와 유기 옥 등을 섞어 세팅

이 자료는 고려시대를 다루는 영화를 위한 미술팀, 연출팀과의 사전 푸드 연출 자료들입니다.

조선 시대나 일제 강점기 영화를 맡으면 그 시대의 의식주와 관련된 문헌과 자료들을 수집하고 표현하는 일이죠.

이 바탕 위에 비로소 음식이 담기고 음식이 차려지는  한 장면을 연출할 수가 있는 것인데 기술적인 부분만 배워서 이런 확장된 일을 하는 경우가 생기면 당연히 전문가적인 지식으로 상대와 상의하며 일을 할 수 없어요. 이런 팀들과 일한 미술팀이나 연출팀은 우리를 마치 음식 배달해주는 일당 알바처럼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고 더불어 단가도 떨어트리는 상황까지 초래하고 있습니다.

현대극이나 드라마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들의  감정선과 그 장면에 나오는 음식과 식기의 질감, 컬러까지 세밀하게 고려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저와 같이 일하는 것이 까다롭고 힘들다는 미술팀이나 연출팀들도 있지만 꾸밈의 단가가 비싸더라도 음식이 중요할수록 다시 찾더라고요.

물론 예산에 맞춰 일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능력이지만, 성도를 아예 포기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한다면 자신의 직업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행동을 하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인스타 해시태그는 #푸드스타일링 으로 넘쳐나요. 식탁 위에 예쁜 식기와 함께 요리 만렙 능력자 분들이 세팅 맛있고 멋있게 하고 해시태그에 푸드스타일리스트,라고 할 때 사실 울컥하는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나이 들어 화가 많아지는 걸까요.. 끙.
타고난 센스만으로도 커버 가능한 진입장벽이 낮은 직업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참 많은 경험과 수없는 노력이 필요한 직업이랍니다. 의사 면허 취득했다고 다 의사가 아니잖아요.  인턴과 전문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 자격 취득해야 하는데 인턴하고 바로 진료 시작하는 일은 아주 위험한 일이듯, 빠른 성과보다는 길게 보면서 공부를 같이 병행하며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선배의 꼰대질이라 생각해도 진심으로 후배들에게 바라는 점이에요. 그리고 직업이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아닌 분들은 그 해시태그 쓰지 말았으면.. 푸드스타일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푸드스타일리스트는 누구나 할 수 없어요.

동영상이나 지면에서 씨즐을 살리는 일 = 푸드스타일링

이라는 것을 모두 알아줬으면 싶어요.

그리고 그 푸드스타일리스를 포함한 더 큰 개념은 식공간을 연출하는 식공간 연출가나 외식업 비주얼 디렉터고요.

외식업 비주얼 디렉터라는 직업은 제가 만든 건데 식문화사, 동서양의 역사, 건축사, 미술사, 동서양 철학, 가구 외 다양한 공예의 발전, 앤틱(고미술 또는 고가구), 테이블 세팅, 플라워 세팅, 도자의 역사, 요리의 역사와 발전, 레시피와 외식업 트렌드, 음식 철학, 심리와 디자인 등등 먹는 것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전문가인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 고심하며 지은 명칭입니다. 공간에 어울리는 식탁을 연출하는 거니까 그 공간에 앉아 식사를 즐길 사람들까지 같이 상상하며 디자인해야 하는 음식시각화에 가장 이상적인 직업명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공부 자료들입니다. 양복의 유입시기까지 배워요 ㅋ

한창 현장에서 일하고 시간 쪼개 돈 쓰고 시간 쓰며 공부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던 30대를 지나 이제는 조금 더 깊이 있게 식문화에 접근하고 있어요. 기호학, 음식 철학 그리고 강원도 산골 절에도 찾아가 스님께 우리 토종나물들 공부하고 절밥도 먹습니다. 제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목적에 맞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정제된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 하는 다양한 경험과 배움의 일들이죠.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 하는 취미생활이랄까요.

누구와 무엇을 어디서 먹을까 라는 단순한 문제가 왜, 어떻게를 만나며 외식업의 핵심이 되는 건데 다들 그것보다는 벤치마킹을 하고 트렌드를 쫒습니다.

누가 찾아와 주는 공간이 되야겠다, 라는 타깃에 맞춰 퍼즐 맞추듯 메뉴와 식기를 고르고 음식을 플레이팅 하는 것, 그것을 서비스하는 방식이나 서빙 동선과 고객 동선을 분리하는 것 등등 외식업은 인테리어와 메뉴, 인력 구성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수없이 많은 일들이 숨어있어요. 그래서 평당 얼마짜리가 아닌, 누구나 업주의 마음을 전달받을 수 있는 공간에서 음식을 즐기는 곳이 되도록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참 재미있더라고요.

닭 수십 마리를 한 장면을 위해 쓰고 버리는 일이 염증이 날 무렵 서서히 식공간 연출 전체로 방향을 재설정한 것이 지금은 무척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브랜딩을 겸해서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

식음을 폭넓게 공부한 식문화 전문가이자
외식업의 메뉴와 식기와의 조화와 테이블 세팅을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이 만들면 어떨까요.
메뉴 자체를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갖추고
식재료를 다양하게 접하고 경험한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만든다면 어떨까요.
요리사를 존중하고 그의 메뉴를 이해하고
홀의 전문 인력과 그 중요성을 잘 알고
객단가와 운영 문제도 함께 의논할 수 있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의 협업이 가능하다면?
꾸밈은 디자인팀과 인테리어 팀과 함께 그것을 실현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메뉴와 공간, 메뉴와 식기 사이 푸드 스타일리스트만이 할 수 있는 매장을 위한 대박 꿀팁들이 숨어있는 게 강점 오브 더 특강점.

요즘 성령의 힘(?)으로 다시 창궐한 코로나로 인해 외식업계 모두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고 있어요.

하루빨리 안정화되어 제가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고 있답니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만큼은 이제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과 식공간 연출, 외식업 디자인이라는 직업을 이해하시는 작은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푸드 스타일리스트로서 정체기나 회의를 겪고 있는 친구들이 읽어도 작은 희망과 도이 되는 글이었기를.

모두 안전하게!! 잘 지내다가 다음 글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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