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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밈 Apr 16. 2022

봄김치 단상

김치에 진심인 사람, 나요 나!

엄마들이 김치 국물도 버리지 않고 요리에 쓰고,
김치 버무린 볼도 배추 겉잎으로 싹싹 닦고
그것도 모자라 싹싹이 고무 주걱으로 손마디 마디도
훑어서 눌러 담은 김치 위 배추 겉잎 위에  발라줄 때
알뜰하다,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뭘 저렇게까지" 했다.

나이가 들고 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을 갖고

김치 냉장고 광고부터 김치 제품 촬영까지

촬영용 가짜(?) 김치들을 흉내 내고 만들여

다양한 지역, 다양한 방식과 재료의 김치를 공부했고

진짜 김치만이 가지는 결과 컬러의 바이브를 알았고
어느 틈엔가  쉽게 뚝딱 김치를 담그게 되었다.

좌:의학잡지 표지 김치촬영   우:딤채 조인성님을 위한 배추꽃다발
좌:제주김치메뉴촬영 우:사극에사 김치만드는 장면연출

여기저기 구전되어오는 다양한 방법도 쓰며 실험하고 계절별로 다른 김치도 담가보고 젓갈 종류도 바꿔본다.
무엇보다 싱싱한 생새우가 나는 철에는 무조건!!

 많이 넣고 돌돌 말아 예쁜 보쌈용 겉절이를!
햇 양파, 햇마늘대, 햇대파, 쪽파나올 때쯤이면
각기 매력을 살려 김치를 담가야 직성(?)이 풀린다.

열무, 알타리, 갓, 홍갓, 오이, 무...

좋은 재료를  보면 기언코 사들고 마니..
참 질긴 고질병이다ㅡ.
그리고 나도 어느새 뭘 저렇게 까지 하던 엄마처럼

김치 양념이 아까워  따로 담아두었다 쓰기도 하고

장갑에 붙은 양념도 싹싹이로 말끔히 훑어내리고

  손에 묻은 건 쪽 빨아먹기도 한다.

만드는 과정의 정성도 물론 귀하지만 진짜 현실적으로 을 채우는 그 양념 재료비도 만만치 않으니까.

겨울의 참맛! 배추말이보쌈굴김치

고양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만난 조선파와 내 손안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햇양파를 보니 이거 이거 또 손이 근질근질해서 조금, 만 샀다. 이 바쁜 와중에 내가 미쳤지 하면서도 밤이 되자 미니 김장 준비를 한다. 깨끗이 씻고 물기를 빼는 동안 부재료 준비.

채수 재료+디포리+다시마+강화 교동도 육수 공방의 딱새우 육수 팩도 투하해서 육수를 한 냄비 끓인다. 까나리 + 멸치 액젓 반반해서 파의 양을 가늠한 뒤 뿌리 쪽에만 슬슬 뿌려 숨이 죽도록 절여준다.

양파는 절임 국물을 만드는데 십자로 칼집을 내고

액젓 + 청주 + 건고추를 넣어 바르르 끓인 뒤 칼집 사이사이에 부어주면 아삭한 맛이 오래 간다.

내어둔 해물육수에 황옥수수가루와 찹쌀가루, 쌀가루를 섞어 풀을 쑨다. 조내기(감자 빼떼기)나 황옥수수가루를 넣으면 달큰하면서 빨리 김치가 무르지 않아 좋다.

조선파 미인대회 출전만 가능! 햇양파와 토종 조선파

양념은 양파용과 조선파용을 나눠 준비하는데 기본양념을 만들어주고 세부 재료를 달리한다.

전라도 나주에서 이모가 직접 빻아준 고춧가루랑 괴산농협 태양초 고운 고춧가루를 반반 섞고 매실청 대신 오디 시럽과 제주 귤 발효액을 조금씩, 황옥 수수가루 넣은 풀도 적당히 넣어 농도를 잡는다.

얼마 남지 않아 아끼고 있는 10년 묵은 남해 멸치젓 진장을 넣는 것까지는 같다.


조선 파는 기본양념에 마늘 듬뿍, 생강도 좀 더, 조개젓을 잘게 다져 넣어 풍미를 살렸다.

마지막 남아있던 육젓도 탈탈 털어 넣고

사과 반개, 배 반의반, 청양고추랑 홍고추 같이 갈갈.

역시 대파 뿌리를 절일 때 뿌려줬던 액젓을 따라내어 양념에 섞어 맛을 보며 간을 잡는다. 조선 파는 짧고 연하고 맛이 달기에 일반 쪽파처럼 간을 잡으면 맛이가 살짝 없고 난 딱 파맛만 보려고 양파나 당근 등 다른 부재료는 일절 사절.

양파는 양파 특유의 향미를 위해 마늘을 넣지 않는데 난 넣은 게 더 맛있어서 아주 간 마늘 조금을 더한다.

간 생강도 조금, 사과 반의반에 배 쪼곰 넣고 갈아서 고춧가루를 불려준 뒤 청양고추를 거칠에 갈아 추가. 햇양파의 달큼함 때문에 단맛을 내는 재료를 많이 넣을 필요가 없고 외려 청양고추의 알싸하게 매운 맛이 양파 풍미를 살리는 역할을 한다.

꾸밈의 조그만 화분에서 잘 자라는 조선 토종 부추를 한 움큼 잘라다가 양념에 섞고 절이기 위해 양파에 부어줬던 젓갈 절임물을 따라내어 더한다.

육젓이 똑 떨어져서 아쉽지만 일단 양파 사이사이에 양념을 잘 발라 넣어주었다.

익기도 전에 맛있다!

신이나고 흥이나고 이 맛을 보여주고픈 사람들이

머리속을 막 스쳐지나가고 그런다.

아니 영어 직업명 가진 명색이 #푸드스타일리스트 인데 베이킹이나 예쁘게 만들지 야밤 내내 김치를 담그다니. 우야튼 오늘은 갓 지은 흰밥이 필수다.

오래간만에 오늘 하루는 휴식이라 더욱 행복!!


김치 만드는 재미.

요것도 같이 나눠주고 싶은 기쁨 중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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