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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밈 May 12. 2020

영화 음식 작업 일기

아가씨 - 숙희의 주먹밥

자, 숙희가 코우즈키 저택에서 맨날 뭐 먹었는지 지난 글에 TMI 다 털어서 모두 너무 자세히 알게 됐을 터, 숙희의 단독 먹샷 두 씬 소개하고 다음 주인공에게로  넘어가야지. 

류 미감님과 박 감독님 너무 근사한 늬낌의 사진

실, 영화는 감독의 것이고 (결정권 자죠)
그 안에서 비주얼을 책임지는 사람은 미술감독다.
음식은 미술을 위한 소품의 한 종류이기에
미술팀의 사전 래퍼런스를 통해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음식의 상징성이나 디테일을 시각화하게 다.
꾸밈은 그래서 까다롭고 섬세하게 작업하는
감독님이나 미술감독님이랑 일하는 것이 더 좋.
뭐 하나 대강 보시지 않고 숨은 노력까지 알아주시니까.

아무리 애를 써서 가져가도 그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클라이언트와 일하는 것은 진심 맥 빠지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경하던 박찬욱-류성희 조합 세심하고 깊어서 너무 즐거웠다. 뭐랄까 연구하고 실적 내는 기분?

아가씨 아카이브에서 조진웅 배우님 인터뷰가 그래서 인상 깊었다. 작은 장면 하나, 우정 출연하는 한 장면에도 정성을 기울이는 건 배우도 마찬가지고 모든 창작자가 다 같은 거구나. 싶은 마음?

좌) 우정출연에 대한 변   우) 알아서 연구 할 분위기에 격한 동감.

신병동 장면의 음식은 간단하지만
거친 느낌이 강하게 나길 바라는 박 감독님의 의견과 삼베와 마 등으로 제작하는 의상과의 컬러를 통일성 있게 가져가기 위해 색감이 강한 잡곡은 제외하고 일본에서도 흔한 잡곡인 수수와 조, 찰보리로 결정했.
짱짱하게 잘 뭉쳐있기 위한 찹쌀도 필수!

미술팀의 래퍼런스

의상도 음식과 식기의 컬러와 질감 형태 등을 정할 때
고려해야 할 아주 중요한 요소라서 꼭 체크한다.

그러나 난관에 봉착한 것은 다름 아닌 사이즈.
연출팀에게 몇 가지 크기를 사진 찍어 보냈더니
감독님께서는 클로즈업될 때 숙희 손에 콘티처럼
넘치게 꽉 차는 느낌이 들면 좋겠다고 하셨다는..

의상 컬러와 주먹밥의 컬러와 사이즈 ㅠㅠ

남자 주먹 크기의 주먹밥은 두 공기 반의 양이 필요.

주먹밥 60개 + 여분 40개 총 100개의 주먹밥.

예상보다 갑자기 밥을 두배 더 해야 했다.

10kg의 찹쌀과 18kg의 잡곡으로 밥을 해야 하는데 대형 밥솥이 없다 보니 압력솥과 전기밥솥으로 10시간 이상 밥 짓기를 하느라 한숨도 못 자고 촬영장으로 이동했.. 밥 지옥, 이 있다면 그 밤의 꾸밈 아니었을까.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날의 공기와 밥 냄새가 뒤섞인 후끈한 공기가 떠오른다.

밥 잘 불리고 잘 지어서 배우분들 한입 먹고 버릴지언정 깨소금에 참기름까지 밑간 완료.

된장국 역시 디포리와 야채, 가쓰오부시로 육수 진하게 뽑고 집된장과 미소 된장을 은 것을 잘 풀어서 농축 장국을 만든다. 현장에서는 물만 더 부어서 간을 맞추면 되니까 이동시 음식 부피가 훨씬 줄어든다. 두부나 미역 등의 건더기보다 시래기나 우거지가 더 볼품없고 거칠어 보일 것 같았는데 일본에서 우거지는 본 적 없고 무청은 절임으로만 봐서 일본에 오래 산 지인들에게 물어봤는데 말린 무청은 다들 본 적이 없다고 하니 더욱 난감. 무 요리가 발달한 곳이니 무청은 값이 헐하게 절임용으로 팔겠지 뭐 했는데 기적의 야채 수프라는 일본 박사님 레시피에 말린 무청이 나오길래 그냥 시래깃국 끓이자 결정했다. 래기는 잘 불려서 몇 번 헹궈낸 뒤 쌀뜨물에 소금 조금 넣고 센 불에 15분 정도 삶은 뒤 불을 줄인 뒤 설탕 한 스푼 정도만 더 넣고  40분 정도 더 삶아내면 부드럽게 삶아진다. 된장국 말고 무침할 때면 사골육수에 삶는 방법도 추천. 양구 펀치볼 시래기는 겉껍질 벗기지 않아도 연하고 손질이 잘 되어 있어서 조리과정이 편한 것이 장점이다.

밥 지옥을 준비중인 꾸밈. 시래기는 양구 펀치볼 시래기.

사실 영화는 편집 과정에서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준비한 모든 것이 나올 리 만무하다. 이 씬 역시 배식하는 장면 등 날린 부분이 많아서 자세히 나오지는 않는다. 근데 그럴까 봐 대충 준비했다가 예상치 못한 부분이 클로즈업되어 스크린으로 보이면 밤새 이불 킥 하게 되니까 성격상 그게 너무 싫어서 작은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가 없.

밤을 꼬박 새우고 요리조리 이동할 때도 랩핑 한 밥끼리 서로 부딪칠까 조심조심하고 현장 출동.

그리고 드디어 문제의 바퀴벌레를 만났다.

건조 대형 바퀴벌레 3마리와 더미(dummy) 2마리. 사실 바퀴벌레 끔찍하게 싫어하는데 어쩌겠나. 니트릴 장갑 야무지게 끼고 만져야지. 포인트는 1~2초 만에 바퀴벌레라고 관객들이 바로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는데 콘티에도 바퀴 반토막이라고 되어있지만

실제 반토막이 박혀 있으면 뭔지 식별이 어렵다. 준비된 바퀴가 각각 두세 마리뿐이라 어떻게 이로 베어 문 것 같은 느낌을 낼까 실수하면 안 되기 때문에 토막 내기 전부터 계획을 잘 세워야 했다. 내 이빨로 물어뜯을 수는 없으니 몸통 몇 군데 칼빵(?)을 놓고 핀셋으로 찢어 (바퀴벌레 거열형 ㅠㅠ) 거친 질감을 주는 것이 첫 번째. 날개나 다리가 보여야 바퀴라는 게 확실해 지니까 건조 상태라 잘 부스러지는 날개랑 다리를 잘 보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것이 두 번째이자 마지막 과정.

좌) 왼쪽은 리얼 바퀴 오른쪽은 더미로 만든 주먹밥, 컨펌용 2가지 준비 우)배우가 연기할때 바퀴가 움직여지면 안되니 앵글과 최대한 각도를 맞추느라 숨멎상태로 초집중한 내 모습

다른 작업들에서도 그렇지만, 류 미감님이 멋지다고 느끼는 건 늘 내가 컨펌용으로 몇 가지 제안을 하면 그 디자인에 대해 본인이 결정을 내리지 않고 느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럼 이거 감독님께 한번 보여드려 볼까요?" 하시고는 같이 가서  감독님께 컨펌을 받게 하신다는 점이다.

미와 건조로 만든 두 가지 샘플 중 감독님은 리얼 바퀴에게 한 표를 주셨다. 그리고 앵글 안에서 누구나 기억하는 그 장면이 탄생한 것이다.

콘티와 복붙같이 연출된 앵글
우리 숙희 불쌍하다, 생각했을 히데코.

자, 숙희의 "바퀴벌레 주먹밥 탄생기"는 여기까지.

차 안에서 먹은 쑥떡, 하녀 밥상, 기차 안에서의 도시락(도시락은 에키벤 특집에서), 그리고 이 주먹밥이 영화에 나오는 숙희의 식사 전부지만 숙희가 먹은 것이 또 하나 있다.

이 표정봤을때 내 맘도 저릿저릿했다. 이 배우 대성하겠다 싶었다는.

사탕, 은 숙희가 아가씨 교육을 위해 먹여주었던 달콤한 맛의 상징이지만 아가씨한테 귓방맹이 한방 맞고 나서 요 사탕을 먹으며 눈물 글썽인다. 마치, 둘이 함께 나눈 달콤한 밤을 추억하듯이 눈물 그렁허게 먹는 막대사탕. 영화 역사상 가장 슬픈 사탕 씬이 아닐까. TMI로 요 사탕은 <경성학교>에 등장했던 왕알사탕을 만든 나나니스 캔디 협찬품이다. 히데코의 목욕씬, 숙희와의 꽁냥꽁냥 씬에 등장해서 판매량이 급증하셨다는데 부, 부럽다..


다음 주인공은 뭘 정말 잘 안 먹는 코우즈키로 할지 먹방신 고판돌로 할지 고민 중이다. 댓글로다가 원하는 배우 얘기해주심 그리 따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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