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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밈 May 26. 2020

영화 음식 작업 일기

아가씨 - 마시는 것도 먹는 것이라면, 고판돌은...

우리는 고판돌의 최후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사실 이 영화 내에서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캐릭터는 아가씨나 숙희가 아니라 바로 이, 후지와라 백작이거든. 오늘은 그의 최후의 만찬들을 살펴보기로 했는데 사실 부검을 한다 해도 먹은 게 없어서 위에서 나올 게 없다 건 안 비밀.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악역이 분명 하지만 어딘가 안쓰러운 느낌이 드는 건,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끝내는 실패하고 마는 평범고 유치한 보통의 남자라서일까. 아가씨를 사랑하는 제 마음조차 분별할 수 없는 우리 고판돌씨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 수밖에. 당신님은 히데코를 사랑한 게 아니라 소설 속 쥘리에트를 사랑을 뿐이고 또 그것이 당신의 최후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는지 "당신은  모르실 거야~"

여자의 눈만 보고도 자신에게 넘어올지 안 넘어올지를 안다고 자신했던 이 람둥이 자신이 사랑한다고 고백까지 한 여자에게 악의 대사나 치며 탈을 사랑으로 포장했다. 기사, 성적 학대로 자살까지 생각한 히데코에게 숙희를 속이기 위해서라며 수없이 추행과 희롱을 시도하지 않았던가. 막판에는 섹스를 순식간에 겁탈로 뒤바꾸며 무슨 에티켓을 지키기라도 하는 것인 양 본인을 합리화시키는 대사를 읊는데, 책이나 야동에서 성을 배운 남자들의 무지는 지금도 유효하니 참 발전 없는 남성들의 판타지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고판돌이란 인물의 악함에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뜻은 아니고 대부분의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에 얼마나 무심하고 또 직간접적으로 동참하는지를 표현했다고 보는 게 더 자연스울 것 같다.

죽음으로 가는 티켓을 예약하는 그의 젠틀한 대사들.
해치치 않아요. 책에서 많이 봤잖아요.
여자들은 사실 억지로 하는 관계에서
극상의 쾌락을 느끼죠.
자, 이제 속옷을 찢겠습니다.

세상에. 억지로 하는 관계가 좋을 수 있겠냔 말이다. 버젓이 말로 옮겨져 더 괴기스러운 그의 주장은 지금도 많은 성인물이 활용하는 남성 중심의 성적 판타지다. 뭐 둘의 취향이 그렇고 그렇다면 동의하에 때리고 맞고 뭘 하든 상관없지만 숙희를 꼭지 돌게 한 고판돌씨의 모사품 <어부 아내의 꿈> 역시 이러한 남성 중심의 강간 판타지를 표현한다. 실제로 미국 허핑턴 포스트지에서는 ‘에로틱한 고전 미술품 14’ 중에 두 번째로 선정했고,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특별 전시하기도 했다. 이 춘화의 배경에 쓰인 글(가키 이레 かきいれ)은 섹스 중의 교성과 의태어로 채워져 있다. 에도시대의 춘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내뱉는 신음과 중얼거림은 지금의 포르노 속 여성의 자극적인 대사들과 동일하며 춘화를 보는 남자들을 더욱 흥분시키기 위한 장치라 봐야 한다.

배경에 빼곡히 적힌 글은 자극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여성을 만족시키는 섹스에서 쾌감과 능력을 확인하는’ 남자의 성적 판타지를 ‘간절하게’ 표현한 작품이 바로 이 촉수 성애물이 아닐까. 게다가 팔이 모자라 슬픈 동물, 섹스에서도 권력을 확인하고 싶은 약한 남자들이라서 그런 걸까. 다리가 많은 문어에게 여성을 범하도록 했다. 강간은 최악의 범죄일 뿐인데 당하는 여자가 오르가슴을 느끼고 결국 자기도 즐긴다는 이 터무니없는 상상이 여전히 존재하고 여성을 길들이고 교육시키는 내용이 영상물이나 성인만화의 소재로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거듭 말하지만 N번방같은 성범죄가 늘어나는 요인이 된다고 본다. 또 두 마리의 문어는 남자들의 강력한 성적 판타지 중 하나인 쓰리썸! 을 표현하기에 호쿠사이의 이 그림이야말로 남자들이 갖고 있는 성적 판타지에 극한 상상력을 활짝 펼쳐준다고 성고민 해결사 배정원 성문화센터 소장은 풀이한다. 고로, 전처와 섹스하며 처조카의 애액의 점도가 궁금한 코우즈키나 쥘리에트를 상상하며 히데코에게 뜨거운 밤을 약속하는 고판돌은 치료와 교육이 필요한 변태들이다. 다만, 히데코를 선택함으로 죽음을 불사한다는 데에서 나는 고판돌의 인격적 발전을 보았다고나 할까? 그가 배운 사랑이 그리고 표현이 그것뿐이라는데 연민을 느낀다.


이 모습에서 나는 타이타닉의 잭 도슨이 겹쳐졌다. 어쩌면 두 남자의 예술가적 영혼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고판돌이 후지와라가 되는 순간 그는 자유를 잃고 허장성세에 사로잡힌다.

대한 재산을 물려받았으나 늙은 후견인인 이모부와 약혼 상태인 아가씨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3년 동안 종이와 책에 대해 공부하고 그림을 모사하는 기술 등을 익혀 서책 중독인 코우즈키의 환심을 사는 한편, 히데코와 한 편을 먹는 것 까지 성공한 고판돌은 훌륭한 사기꾼이다. 비범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제주도 출신의 머슴과 무당 사이의 자식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매음굴 잡부 노릇을 하며 15년을 살았다. 일본인 귀족이자 영국 유학생으로 사기를 칠만큼 완벽한 일어 실력 (아마도 영어실력까지) 각종 매너를 익히고 도와 타일을 섭렵한 것이다. 나의 매거진 맨 첫 글을 읽으면 우끼요에에 관한 내용을 좀 써놓았는데 같은 그림이라도 대량 생산이 가능한 목판화보다 손으로 직접 그리는 육필화가 훨씬 비싸고 구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썼다. 우리 고판돌 작가님은 그 육필화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문어 다리를 채색하던 그의 손길이 떠오르지 않는가. 필사가 가능한 위본 기술자이면서 유화와 수채화 등 서양화까지 지도가 가능한 수준인데 이는 노력으로 가능한 수준 재능이 아니다.

그럼에도 야설과 춘화로 사랑을 배운 그는 결코 이 두 여성과 인간적인 유대조차 맺지 못하고 그저 이용당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뭐, 고문에도 불구하고 초야의 진실을 털어놓지 않는, 최후까지 당당했던 상남자적 면모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변태 백작보다 조금 나은 정도일 뿐이다.

응, 태리야끼님. 이거 그 개XX가 그린거 맞아.

김대표 TMI : 고판돌의 예술성

미대를 가야 한다는(?) 엄마의 통보를 받고 나서 뭐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선택한 입시 미술은 꽤 오랜 시간 그림밖에 없는 상태로 내 미래를 제한시켰다. 장학금도 가능했을 대학에 재수를 하고 과를 바꿔서 입학하게 되자 지난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 더 놀라운 것은 대학 생활이 그다지 재미있지도 않았고 잘하고 싶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절실하게 화가를 꿈꾸며 열정을 다해 그림을 그리는 동들 사이에서 그런 내가 이상하게 느껴지고 괴로웠었다. 그리고 재능이란 것은 꾸준한 반복이 따라야만 빛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되니 더욱 그림그릴 의지가 사라지기도 했다. 더 모순적인 것은 스스로 포기했음에도 그게 뭔가 상처처럼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제와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나의 삶에 작동을 하고 있고 나는 얼마든지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각설하고, 순수 회화 그것도 한국화 전공자로서 고작 3년을 익혀 집가인 코우즈키를 속일 만큼의 기술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의 예술적 자질이 매우 뛰어남을 증명한다고 본다. 실한 노력과 재능이 빚어내 빛나는 결실이그 자신이 그가 창조한 가장 위대한 가품이기도 하다. 궐련 한대를 말아 필 때도 "아름다움을 소유하는 방식"이라며 여인의 누드크로키를 그린 종이를 이용하는 것만 봐도 그가 천상 예술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재주를 남을 속이는데 그치지 않고 최후까지 결혼반지를 낀 채 수은 담배를 마시며 아가씨와의 신의를 지키는 데에도 사용했다. 여자를 진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가여운 로맨틱 아티스트의 최후로 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허세가 생명인 부분에서는 대체적으로 잘 어울리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그는 히데코가 자신에게 맘이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물새처럼 차가운" 아가씨에게 욕망이 없어 보이자 동맹을 맺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는 영리함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런 그가 숙희를 병원에 보낸 날 아가씨가 와인잔을 들고 나타나 키스를 허락한다고 하며 술을 권하는데 이것이 미끼임을 모를 수 있었을까. 조건 붙은 키스는 싫고 자신은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며 거절키스를 원하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라며 자기를 속이지 말라도 말하지만  돌아서는 백작을 잡아당긴 건 히데코가 아닌 쥘리에트 공작부인이다. (특기: 채찍 때리기, 고통을 즐기는 가학성)

퓌잌~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입으로 채찍질하는 히데코와 흥분으로 어쩔 줄 모르는 신사들, 그리고 그 순간 사랑을 느끼는 고판돌.
고판돌 꼬시기 너무 쉬워.
효리언니는 히데코의 현신인가?
                 -  Just one 10 minutes
                       내 것이 되는 순간 -
이라고 노래하던 효리언니처럼 히데코는 말한다.

      <                          10분간,
 나를 당신의 것으로 해준다면 무엇을 주겠어요?>

히데코가 기지를 발휘해 -채찍은 말한다-의
주인공 쥘리에트 공작부인의 대사를 읊자
백작은 경계를 푸는 정도를 넘어 정신을 놓으셨다.
이것은 그가 히데코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녀가 연기한 공작부인을 사랑했다는 증명이고 나는 이 부분에서 그에게 큰 연민을 느낀다.

숙희를 정신병원에서 죽일 살인의 계획까지 세운 고판돌을 용서할 수 없어서 히데코는 그를 이모부에게 선물(?)하는 더 큰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아닐까. 결국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숙희와 그의 본질은 이모부와 크게 다를 것 없다고 간파한 히데코에게 그는 선택받거나 사랑받을 존재가 아니었다. 게다가 "제가 아가씨를 사랑하다 어떤 참한 꼴을 당하더라절대 동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등 사망 플래그를 꽤 착실하게 쌓아놓기도 했다.

평화호텔에서도 줄곧 담배 태우고 와인만 홀짝였던 그였다. 갑작스레 와인을 들고 찾아온 아가씨의 낌새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

이때 사용된 와인잔은 협찬인지 렌탈인지 그 누구도 기억 못하는 상황이나 브랜드 제품의 디자인이 아니므로 렌탈로 결론내렸다. 아~ 이제 가물가물해. 그러나 글래스의 종류는 알 수 있다. 바로 보헤미아 글래스! 다시한번 짧게 유리의 역사를 훑고 가는 시간 되시겠습니다 ㅋ.

유리는 로마시대에 핸드브로잉(숨을 불어넣어 형태를 잡는)기법으로 대량생산 되었다가 로마의 멸망과 함께 페르시아에 전해졌다. 훌륭한 커트와 에나멜 기법으로 이슬람의 꽃이라 불리우던 유리 공예는 르네상스와 함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에서 만개하였다. 유리 기술자들은 무라노 섬에 감금되다시피 생활하며 무라노 글라스의 명성을 높였고 베네치아 풍 유리들은 패숑 드 베니스 글라스 라고 불렸다. 바카라,라는 브랜드가  무라노 글라스로 유명하다.  12~13C 독일과 체코의 보헤미안 등지의 유럽 중부 삼림지역에서는 바르도 유리라고 불리우는 녹색이 깃든 조금 더 두터운 유리가 생산되었고 이는 16~17C 말 동안 보헤미안 지역에서 베네치아 유리보다 더 튼튼하면서도 유리에 조각을 하는 그라베류 기법으로 화려함을 살린 보헤미안 유리가 전성기를 이끌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소다 유리 종류가 베네치안이라면 광학기기로 사용되는 컬리유리가 바로 보헤미안 유리다. 1673년 영국에서 납을 넣은 크리스털 유리가 개발되었고 18C후반 아일랜드의 워터 퍼드에서 발전한 유리 공예는 현재 아이리쉬 유리의 모태가 되었다. 19C 미국은 틀로 찍어내는 프레스 글래스를 개발하여 대량생산의 길을 열었다. 다양한 유리 공예들은 각 지역의 특성과 미적 감각에 따라 다르게 발전되어 왔다.
둘 다 체코의 보헤미안 글라스인데 좌)는 아르누보 시대의 앤틱이고 우)는 크리스탈렉스사의 와인잔으로 부부의 세계에도 협찬됐다.
와인잔의 종류는 너무 많지만 대략 이정도를 알아두면 좋다. 보르도와 브르고뉴의 차이까지 말하기엔 좀 힘드니깐 각자 공부하는 것으로!
모든 체코 글라스는 보헤미아 크리스탈 로고가 붙어있다.
결국 mouth to mouth로 와인을 먹이는 끈질긴 히데코의 승리

백작은  코우즈키의 지하실로 끌려히데코와의 첫날밤을 집요하게 캐묻는 코우즈키에게 "네 이놈! 그녀는 내 아내야"라고 일갈한다. 어쩌면 백작이 끝내 지켜낸 것은 남자의 물건이 아니라 연정을 품은 여인에 대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누차 얘기하지만 그는 사실 히데코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녀를 사랑했다면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고 분노하고 함께 아파했어야지 그런 어처구니없는 대사를 내뱉을 수 있겠냐 말이다.  이런 찌질함을 풍부한 표정과 특유의 능청스러운 경쾌함으로 그려낸 (초라한 면모까지 성실히 연기한) 하정우 배우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이마시는 것은 기화된 푸른 수은이다.
그토록 부와 명예를 원한 그는 맛있는 양고기 한조각 입에 넣지 못하고 아편이 들어간 와인 몇모금, 히데코의 입술, 담배, 수은으로 최후의 만찬을 한다.
네이놈 히데코는 내 아내야

아내하고 보낸 초야를 떠벌리는 놈이 어디 있다더냐.

마지막까지 그가 떠올리는것은 히데코의 붉은 입술이다.
그래도 XX는 지키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자신과의 초야에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하면서 홀로 이불속에서 자위하며 오르가슴에 이르는 아가씨를 초연하게 바라보던 머슴의 아들. 유산 현금화 하랴 위조 여권도 만들고 정신병원도 섭외하느라 분주했던 그의 마지막 음식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의 기호식품인 담배와 몇 잔의 와인.

아편과 수은.. 그를 기억해 줄 사람도 없을 것이다.

스스로의 재능으로 성취를 만들어 낸 인물인데 실력 있는 예술가로서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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