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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우연한 사고며, 예술교육가는 그 사고의 목격자다

<예술이 내 것이 되는 순간>을 읽고_

by 사유무대


<예술행위의 발생을 인식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

예술은 우연한 사고이며, 예술교육가는 그 사고(accident)의 목격자이다. 이 문장은 예술 행위가 얼마나 예측할 수 없고, 삶의 특정한 순간에 불쑥 '발생'하는지를 깊이 있게 포착한다. 예술은 때로 치밀한 계획 속에서 태어나기도 하지만, 그 본질적 순간은 대개 예기치 못한 감정의 충돌, 관계의 변화, 혹은 내면의 지각변동과 같은 '사건'을 통해 솟구쳐 오른다. 이러한 솟아오름은 일종의 '사고'로서 우리의 일상을 흔들고, 새로운 의미의 균열을 만든다. 이러한 지점에서 예술교육가는 사고 현장을 함께 목격하고, 때로는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동반자가 된다. 예술교육가는 그 우연한 사고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되, 동시에 그 사건이 한 개인에게 긍정적인 '후유증'을 남기도록 도와야 한다. 다시 말해, 예술이 단지 혼란이나 감정의 소모로 끝나지 않고, 그 여운이 삶의 변화와 성장을 일으킬 수 있도록 '의미화'하는 데 개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교육가가 예술의 발생을 민감하게 인식해야 하는 근본적 이유이다.

그렇다면 예술교육가는 이 '사고'의 현장을 어떻게 생생히 목격할 수 있을까? 그 시작은 결국 자신의 생애에 걸쳐 예술의 선험자가 되는 일에서 시작된다. 단순한 지식으로서가 아닌, 온전한 체험으로서 예술과 만나는 경험이 필요하다. 감상이든, 짧은 글쓰기나 소소한 창작이든, 예술과 만나는 다양한 접점 속에서 자신의 감각이 반응하는 순간들을 수집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이 단순한 기억이 아닌, 자신의 영혼에 잔상을 남기는 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엔 희미한 흔적처럼 지나가는 이 잔상들은, 처음에는 희미하지만 다양한 예술적 체험이 쌓일수록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퍼즐처럼 의미의 형상을 드러낸다. 이 과정은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점점 모여 별자리를 이루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흩어진 점들에 불과했던 경험들이, 시간이 지나며 하나의 이야기로, 하나의 의미로 통합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나에게 의미화되었는지를 인식하는 순간이 중요하며, 다시 그 인식과 과정을 다시 역순으로 풀어내 프로그램으로 변환하게 된다면 참여자들에게 아름다운 ‘사고’가 될 것이다.

결국, 내가 예술을 온전히 사랑해보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사랑으로 삶이 변화되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면, 누군가에게 그 사랑의 가치를 전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연애를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연애 코치를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물론 사랑의 경험만으론 교육이 완성될 수 없다. 자신의 경험담을 타인이 이해할 수 있게 번역해야 할 것이다. 예술에 대한 번역은 결국 개인적이며 주관적이다. 그러나 그 경험이 갖는 보편성과 공명의 가능성이 있기에 교육이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예술교육가는 이 미묘한 균형을 이해하고, 처음엔 적극적인 안내자로서 그리고, 서서히 참여자 혼자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삶이라는 길 위에서 자주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먼저 나의 삶의 길을 천천히 걸어야겠지.


_ 2025년 3월 교육연극연구소 사유무대 권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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