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작된 트렌드 보고서의 실체

by Lohengrin

매년 이맘때를 전후하여 다음 해를 전망하는 보고서들이 우후죽순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경제연구소들이 발간하는 경제전망 보고서들이 나오고 소비자 트렌드 및 IT핵심전략 트렌드 관련 자료들도 쏟아져 나옵니다. LLM을 기반으로 한 chatGPT 및 Gemini가 이들 보고서 결과물에 버금가는 리포트를 내놓고 있는 세상이라, 기능이 쇠퇴해 가는 느낌입니다만 그래도 아직까지 한눈에 다음 해를 예측하고 키워드로 정리해 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2026년 국내 경제전망을 1.8% 정도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수출이 둔화되겠으나 내수가 회복되고 금리인하와 재정확대 정책에 힘입어 소비가 늘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설비투자도 이어져 경상수지는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소비자물가는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데이터와 변수들을 감안하고 입력하여 슈퍼컴퓨터를 돌려 얻은 결과 수치들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전망치들은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일부의 결과치만을 보여줄 뿐일 겁니다.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경제 현상의 움직임과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산입 되는 변수들의 양과 질에 따라 전망의 방향은 미세한 조정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매년 이맘때 들여다보는 보고서 두 개가 있습니다. 매년 키워드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리고 있긴 합니다. 가트너(Garter)사에서 발표하는 '다음 해에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10대 기술 트렌드'자료와 국내에서 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입니다. 두 자료 모두, 사용되는 용어들이 낯설어 제가 매년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가트너 발표자료야 미국 회사이고 IT 관련 전문 기술트렌드이니 용어가 낯설어도 그렇다고 쳐도, 국내에서 발간하는 책조차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올해는 가트너의 기술트렌드 소개는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저의 문해력과 독해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매년 읽을 때마다 내용은 차지하더라도 '이건 아닌데'라는 강한 부정이 먼저 다가옵니다.


뭔가 있어 보이려고 의도적으로 조작된 용어의 선택이라는 억지스러움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트렌드 코리아'의 키워드는 매년 해당연도의 동물 이미지를 가져다 붙입니다. 작년에는 용의 해라 'DRAGON EYES'였고 올해는 뱀의 해여서 'SNAKE SENSE'였는데 내년에는 말의 해라 'HORSE POWER'의 첫 알파벳을 키워드로 삼아 트렌드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키워드를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범주화하는 것은 고도의 전술일 수 있으나 억지로 조성한듯한 인상이라면 쓰지 아니함만 못합니다. 매년 트렌드를 잡아내 문자로 고착화시켜야 하는 어려움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책의 심도를 읽어내지 못하고 겉만 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트렌드 코리아'에서 전망한 내년도 소비 트렌드 키워드 10개를 볼까요? 휴먼인 더 루프(Human-in-the Loop), 필코노미(Oh, my feelings! The Feeiconomy), 제로클릭(Results on Demand ; Zero-click), 레디코어(Self- Directed Preparation ; Ready-core), AX조직(Efficient Organizations through AI Transformation), 픽셀라이프(Pixelated Life), 프라이스 디코딩(Observant Consumer ; Price Decoding), 건강지능(Widen your Health Intelligence), 1.5 가구(Everyone is an island: the 1.5 Households), 근본이즘(Returning to the Fundamentals)입니다. 뭔 소리일까요? 일단 각 키워드의 속살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래야 왜 저런 키워드들을 만들어냈는지 이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결과물이니 들여다볼 가치는 분명히 있습니다.


이 내용을 담은 책이 교보문고에서 9월 말 출간된 이래, 지난주까지 7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읽어주는 독자들의 수준과 안목이 대단한 걸까요? 아니면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한 마케팅의 성공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책 한 권이 나오려면 적어도 6개월 이상 준비를 하는 게 보통일 겁니다. 그렇다면 이미 올해 초부터 자료 수집 및 원고작업이 시작되었을 텐데 올해의 추세가 반영되기도 전에 글이 써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결국 전망이니 트렌드니 하는 보고서는 모두 실제 현상이나 흐름의 반영이 아니라, 미리 규정지어 놓고 현상이 그렇게 따라가도록 만드는 지침이 아닌가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트렌드는 이어짐 입니다.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전혀 새로운 단어와 의미가 등장해 세월을 치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추세에 대한 방향일 뿐인데 보고서들은 마치 해가 바뀌면 전혀 다른 개념이 등장해 세상을 지배할 것 같은 표현을 합니다. 세상은 분절된 레고블록을 쌓고 부수듯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흙으로 형상을 빚어내듯 진화되고 변형될 뿐입니다. 그만큼 결과를 예측하고 확정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 하는 교묘한 인간심리가 마케팅과 결합되어 상업화된 것이 전망보고서인 듯합니다. 미아리 점쟁이처럼 대략 감으로 때려잡아 두리뭉실하게 말해놓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곳에 따라 눈과 비가 내릴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고' 등등 해석의 영역으로 퉁쳐놓는 교활함을 보는듯해서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막연함을 줄이고자 온갖 데이터들을 집어넣어 엔트로피를 최소화하는 기법을 쓰기도 하지만 세상 만물의 움직임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툭툭 뛰어들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누가 뭐라고 한 마디 하면 팔랑귀 휘날리며 듣게 되고 '그렇다더라'라고 하며 따라가게 됩니다. 점쟁이와 역술가들이 먹고사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미래는 어차피 아무도 모릅니다. 미래가 현실이 되고 나서야 알 수밖에 없습니다. 트렌드가 궁금한 것은 변화의 방향성은 눈치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치를 잘 채고 잘 잡아야 합니다. 엉뚱한 늪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빼꼼히 겨울을 마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