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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pr 15. 2024

봄의 뜰을 지나 출근하다

비 내릴 확률 100%라는데 출근길을 걷고 있는 아침 6시 반 현재까지 아직 오지는 않는다. 올려다본 하늘도 옅은 구름사이로 대기에 반사된 태양빛의 연푸른 모습도 보인다. 멀리 북서쪽 하늘로부터 짙은 회색 구름이 남동진하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있어 곧 오전 내에는 비로 환생할듯하다.


통상적인 루틴으로 전철을 타고 회사로 향한다. 월요일이어서 그런지 승객도 다소 많다. 앉을 좌석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자리도 없는 김에 중간 환승역인 회기역에서 전철을 1호선으로 갈아타고 시청역으로 가기로 한다.  한겨울을 지나 봄의 문턱을 넘는 동안 출근길 코스는 항상 왕십리역에서 환승하는 코스였다. 2호선 시청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면 바로 회사 로비와 만나기 때문에 최단시간, 최단거리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출근길 코스를 변경해 본다.


출근길 코스를 가끔 바꿔 오는 이유는 덕수궁 돌담길 아침의 한적함을 걷고 싶기도 하지만 시청 별관 청사뜰에 심어져 있는 여러 나무들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온통 꽃 천지인데 시내 한복판의 나무들은 또 어떻게 올봄을 맞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어서이다.


1호선 시청역 3-4 탑승구를 나와 계단을 걸어 올라오면 덕수궁 대한문 앞의 엘리베이터와 만날 수 있다. 통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며 보이는 돌담길과 시청 광장의 모습이 장관이다. 대한문을 오른쪽으로 보며 월대와 돌담길을 끼고 정동교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할머니국숫집이 아침 장사를 하느라 불을 밝혀놓았다. 아직 손님은 한 명도 없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길가에 까지 풍겨온다. 잔치국수 양념을 준비해 놓으신 모양이다.

돌담길 바로 앞에 시청 서소문 별관 청사들이 줄지어 서있다. 예전 법원 청사를 리모델링해서 쓰고 있는데 근래에 재리모델링을 하면서 전망대 카페를 없애버렸다. 사무공간이 부족해서 그런 이유겠지만 시민들을 위하는 행정을 한다면 전망대 카페를 재오픈하는 게 맞을 듯한데 아쉬울 따름이다. 전망대 카페에서 내려다보는 덕수궁 부감이 장관인 곳이었는데 --- 계절별로 바꿔 입는 색상의 향연은 봄, 여름, 가을, 겨울별로 개성이 있었다. 그중 한겨울 폭설이라도 내리고 난 다음날 내려다보는 덕수궁의 흰빛 처마밑은 정말 서울시내 뷰맛집의 최고봉 중의 하나였는데 --- 지금은 일부 공무원 아저씨들의 시선의 사치로 전락해 버렸다.


각설하고 오늘 아침 시청 서소문 별관 뜰에는 꽃갈이가 한창이다. 조경수로 심어진 노란색 수선화는 아직도 그 색깔을 유지하고 있으며 짙은 불은색 철쭉도 연초록 잎사이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 철쭉은 이제 막 시작이다. 햇빛이 비치는 양지와 음지에 따라 그 시간을 달리할 뿐이다. 모과나무의 연분홍색 꽃도 촌스런 새색시처럼 피어 있다.


봄의 뜰은 이렇게 색으로 채색을 하고 하루의 시간이 지날 때마다 색을 덧입혀 간다.


날씨가 벌써 여름의 초입처럼 되어가고 있는데도 생명의 온기를 전혀 보여주지 않는 나무도 있다. 배롱나무다. 한여름부터 꽃을 피우는 나무여서 그런지 나뭇가지에 새순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치 죽은 고사목처럼 말이다. 배롱나무는 꽃이 피기 시작하면 100일 동안 짙은 분홍색 꽃을 피워내기에 백일홍이라고도 불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다.


일상에서조차 자연은 항상 내 곁에 있다. 내가 쳐다보고 내려다보고 주의 깊게 관찰하면 보이지만 관심 갖지 않으면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참 오묘한 현상이다.


오후에 비가 내리면 이 길을 다시 걸어 퇴근을 해야겠다. 비를 맞고 있는 나무와 꽃들의 색깔은 또 어떻게 바뀌고 있을지 궁금하고 바람의 무게와 비의 무게를 이겨내기 위해 흔들리는 꽃잎들의 흩날림도 꽃비로 함께 내릴 텐데 흩날리는 꽃잎하나 손바닥 위에 내려놓아볼 일이다. 자연은 그렇게 흘러가는 도랑물 위의 꽃잎배들의 전설이 될 터이다. 돌고 돌아 자연의 분자들을 재조합하고 다시 분해하는 순환열차의 숨 가쁨을 엿보는 일이다. 그 속에 내가 있고 그대가 있고 우리가 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환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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